[창간특집①] 게임 질병 분류 ‘이제 그만’ … 피켓 든 산업계

2025-11-19     안일범 기자

지난 2019년 세계 보건기구는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안(ICD-11)을 발표하면서 게임이용장애 질병 코드를 부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국내에서는 이 법안을 기반으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코드에 게임이용장애 코드 추가 여부를 두고 찬반 양론이 격렬히 대립했다. 게임계, 의료계, 법조계, 학계는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합의점을 찾으려 하나 쉽게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게임이용장애란

WHO 공식 진단 기준에 따르면 게임 이용 장애는 게이머 중 극소수에게 발생하는 장애로 판단된다. WHO 기준에 따르면 게임을 하면서 행동 패턴이 변화하는데, 개인적·가족적·사회적·교육적·직업적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만큼 심각해야 하며, 일반적으로 최소 12개월 이상 분명하게 나타나야 할 때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바통은 정부로 넘어간 가운데, 정부는 ‘친게임 정책’으로 방향성을 공고히 하며, ‘게임 이용장애’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이어 ‘게임이용장애’는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등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질병화 논란’은 한풀 꺾인 모양새다.

반면 정부는 ‘부작용’이 있다면 이를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육성하는 것으로 단서를 달며 향후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초점은 ‘사회적 합의’를 향하게 됐다.

의료계 ‘진단·치료’ 기준 마련해야 vs 산업계 ‘근거 부족’

보건복지부를 필두로 의료계는 게임 이용장애 분류군이 중독에 소속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게임’을 중독 물질의 일환으로 보고, ‘치료’ 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입장 차이가 명확하며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증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코드를 도입해 연구하고 치료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침이다. 2021년 국민건강실태조사를 인용하며, 전체 청년 중 18%가 고위험군으로 타 국가 대비 2배 이상 높아 준비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중앙대학교 병원 한덕현 교수는 게임의 재미 요소의 가능성을 기반으로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료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중앙대학교 한덕현 교수는 중독성 자체를 의문시한다. 그는 “술과 같은 물질은 내성이 생겨 갈수록 더 많이 먹도록 유도하는 반면, 게임은 계속해서 같은 게임을 더 많이 하도록 하면 게이머들이 질려서 그만둔다”며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중독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게임 업계는 ‘낙인 효과’가 있음을 주장하며,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산업 전반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간 8조 8천억 원 규모 피해, 12조 3,623억 원 규모 총생산 감소가 발생할 것이며, 8만 39명이 취업 기회를 잃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코드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발간 연구 보고서

법조계는 대체로 중립 입장이거나 반대 입장이 강한 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진흥과 규제가 정면 충돌하는 법안으로, 현재로서는 찬반 이분법을 벗어나 입법적 정비를 통해 점진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중립 연구 과정을 거쳐 조율하는 안을 마련했다. 이와 함께 헌법적 권리 침해(표현의 자유, 낙인 등)를 초래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시하는 분위기다.

정부, ‘게임은 중독물질 아니다’ 강조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15일 크래프톤 펍지 성수를 방문한 자리에서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문화 산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게임은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중독’이 발생하는 것은 “게임이 재미있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라며, 오히려 이를 활용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문화 산업으로서 게임 육성 강조하는 정부 

이어 10월 21일 기획재정 국정감사에서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은 “ICD-11 분류를 지정하되, 게임 이용장애는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다시 등재하는 것으로 하자”는 취지의 질문에 긍정하면서, ICD-11 도입과는 별도 사안으로 다뤄지게 됐다. ICD-11이 국내에 공식 도입될 ‘KCD 10차 개정안’은 오는 2026년까지 논의가 계속될 전망이다.

산업 진흥과 규제, 균형 찾기

핵심 쟁점은 게임을 단순 질병 프레임으로 볼 것인지, 진흥과 규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다. 문체부 최휘영 장관은 사회적 합의를 전제한 논의 구조를 강조하며, 진단 기준, 보호 체계, 산업 영향까지 포함한 정교한 정책 설계를 주문했다.

정부는 ‘진흥’과 ‘자율’을 축으로 게임 산업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는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게임이용장애 관련 보건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도 남긴다. 실제로 질병코드 도입에는 과학적·사회적 정당성 부족, 표현의 자유·문화 향유권 침해 우려가 존재한다.

▲더불어민주당 게임 특위 2기 출범

산업 진흥 측면에서 국내 게임 업계와 정치권 모두 게임을 미래 핵심 콘텐츠 산업으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더불어민주당 게임특위 2기는 “게임 산업 진흥과 이용자 권익 강화”를 목표로, 규제 완화와 지원 정책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결국 주요 기관들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의 친게임 정책 강화와 함께, 게임이용장애 코드 도입 논의는 2026년까지 연기될 전망이다.

문화·예술 산업 도약기 ‘지원’ 기대

한국 게임 산업이 직면한 최대 쟁점은 ‘게임 이용장애’ 등재 논란이다. ICD-11 등재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에 부정적 낙인을 남길 수 있는 심각한 사안으로 업계는 인식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게임이 질병으로 등재될 경우 산업 전반이 위축되고, 창작 환경과 이용자 권익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정부는 게임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전문가들은 단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정책 설계와 제도 마련 과정에서 구체적·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계 관계자는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등재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산업과 이용자의 권익을 동시에 보호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자율 규제와 이용자 권익 보호, 사회적 신뢰 확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창의적 콘텐츠 개발, 안전한 게임 환경 조성, 사회 공헌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러한 산업적 노력도 정부 정책과 맞물려야 효과를 발휘한다고 평가한다.

▲지스타2025 굿게임상을 수상한 젬젬테라퓨틱스 김정은 대표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게임 개발자로서,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고자 게임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핵심은 협력과 균형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업계의 자율적 노력과 함께 정책적 기반을 강화할 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문화·예술적 가치와 산업적 잠재력을 동시에 인정받는 미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게임 질병 등재 논란은 더 이상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정부와 산업이 함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