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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게임은 공학과 예술 사이의 끝없는 갈등

  • 정리=김상현 편집국장 aaa@khplus.kr
  • 입력 2021.12.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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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811호 기사]

필자는 대학에서 신소재 공학을 전공했다. 물론 대학생 시절 많은 시간을 게임을 즐기는 데 사용하였고, 성적이 그다지 우수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공대생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인문 계열 수업에 관심이 많아서, 다수의 인문 계열 수업을 신청하다 보니 더더욱 성적이 좋지 못했다. 특히 문학 관련 수업이나 연극, 영화 관련 수업은 따라가기 힘들었다. 생소한 용어, 낯선 수업 방식 때문에 수업에 대한 이해도 어려웠지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과제를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들에게 여러 차례 과제를 공대 수업 과제처럼 작성하지 말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 시절의 필자는 공대 수업 과제처럼 작성하지 말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필자가 과제물을 받아보니, 그때 교수님들이 이야기한 공대 과제라는 말이 크게 와닿는다. 필자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대부분 게임 기획을 공부하는 학생이지만, 게임 기획을 이해하기 위해 수업을 신청한 일부 프로그래밍 전공 학생들이 있었다. 같은 과제를 제시해도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은 많은 경우 표시가 난다. 공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정답이 없는 과제를 요구했음에도 정답을 찾는 형태로 과제를 작성하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게다가 서술형 과제에 번호까지 붙여가며 순차적인 증명을 시도하는 과제물을 보면 학생 시절의 내 과제물들이 생각나 재미있기도 하다.

공학은 정답을 찾는 학문이다. 공학에서 정답을 모를 수는 있지만, 정답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가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정답은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예술은 정답이 없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무엇이냐는 문제처럼 개인의 인식 차원에서 답이 있을 수는 있지만, 무엇이 정답이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가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일 수도 있다.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은 정답이 없는 것을 디자인하여, 정답이 있는 공학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게임은 예술과 공학의 중간에 존재하는 복합 콘텐츠의 성격을 가진다. 많은 경우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작팀은 이 사실을 간과한다. 제작 파트 사이의 많은 갈등은 이런 차이의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예술의 영역을 디자인하는 사람에게 정답을 요구하거나 공학의 영역을 구현하는 사람에게 정답이 없는 구현을 요구하면 제작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사람은 이런 차이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야 제작 스탭 사이의 갈등을 조율할 수 있다. 종종 PD가 게임 제작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정답이 없는 게임에서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0’에는 어떠한 수를 곱해도 ‘0’이다.

이중반룡 그는?
게임 유저로 시작해서 2001년 게임 기획자로 게임업계에 입문했다. 야침차게 창업한 게임 회사로 실패도 경험했다. 게임 마케터와 프로젝트 매니저를 거치며 10년 간의 실무 경력을 쌓았다. 이를 기반으로 게임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분야 투자 전문가로서 수 년째 일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살려 대학에서 게임 기획도 강의하고 있는 그는 게임문화 평론가를 자처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박형택)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향게임스=김상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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