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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씨 가족 "게임은 가족 사랑의 촉매제"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5.11.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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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순기능이 또다시 증가될 전망이다.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10~20대 유저층이 게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우리네 게임 산업의 현실이 아니던가. 자연 이들의 취향에 맞춘 게임들만이 집중적으로 개발, 유통되며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주류 연령대 유저들은 더욱 게임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고정관념에 불과했던 것일까.

‘게임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김영우(52)씨 가족. 이들은 게임을 통해 단절됐던 세대 간의 벽을 무너뜨림과 동시에 가족애를 다지는 촉매제로까지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이뿐일까. 아니다. 친족들과의 화합을 다질 뿐만 아니라 게임대회에까지 출전할 만큼 게임을 대하는 모습과 애정 또한 남달랐다. 세상이 온통 빼빼로 홍수 속에 초콜릿 빛깔로 물들었던 지난 11월 11일. 게임의 순기능을 타고 가족애를 더하고 있는 김영우씨 가족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의정부시로 향했다.

아버지 편 | 가족 간의 대화 단절, 게임 앞에 속수무책
“게임을 빼놓고 저희 가족을 이야기할 수는 없죠(웃음).” 약속한 장소. 밝은 미소로 맞는 김영우씨의 손에 이끌려 집 안에 들어서자, 동서 내외와 부인, 아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 찰나, 그 사이를 못 참고 ‘스타크래프트’ 게임방송에 심취한 김영우씨. 이미 채널이 고정된 것으로 보아 집 앞으로 마중 나오기 전까지도 게임방송을 시청하고 있었음이 분명했으랴. 물론 관전평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사실 김영우씨 또한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 1997년만 해도 그 역시 게임에 빠진 아들을 만류하기 위해 회초리를 들었고, 야단치기를 수십, 수백회 되풀이했다. 하지만 아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대화만 점차 줄어들었다. 도리어 고리타분한 아버지상으로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다. ‘왜일까. 왜 그토록 게임에 빠져 지내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만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했던가.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기 위해 게임 입문을 결심한 김영우씨.

“도통 아는 것이 있어야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게임 매체를 구입하고 방송을 볼 때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죠. 그래도 일단은 대화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지켜봤는데, 웬걸요. 막상 해보니 제가 왜 그토록 못하게 했던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게임에 흥미를 느낀 김영우씨.

그는 아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대신 그 동안 궁금했던 게임 관련 질문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아빠는 그것도 몰라’라고 회답할 것 같았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신이 나 설명하는 아들을 보게 된 아버지 김영우씨. 함께 게임을 즐기자, 아들과의 단절됐던 벽은 사라졌고, 이해를 넘어 이제는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렇게 게임과 보낸 지난 8년. 이제는 스스로 게임 산업의 오프라인 전도사를 자청하며, 주변 지인들에게 게임을 권유하며 오늘도 새로운 전략 짜기에 여념이 없다.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무지(無知)일 뿐이죠. 기성세대들도 이제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 게임하게 해주세요’라는 자녀의 말은 결코 묵살할 게재가 아니니까요.” 처음에는 한 대였던 컴퓨터를 또다시 구입해 이제는 아들과 함께 팀플레이를 즐긴다는 그는, 이미 게임을 통해 제 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다. 밤늦은 시각. 또다시 TV를 힐끔 쳐다보는 김영우씨. 그 사이 또 새로운 전략이 궁금해진 게다.

어머니 편 | 게임은 이 시대가 발명한 가족화합의 열쇠
함께할수록 즐거움이 커지는 법이라고는 하나, 그 즐거움의 원천이 잘못된 것이라면 분명 만류하는 것이 우리네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김영우씨의 부인 윤순노(46)씨에게 있어 게임은 ‘악의 축’일 뿐이었다. 공부에 빠져도 모자랄 판에 게임 삼매경에 빠진 아들을 보게 되자 걱정이 앞서길 수차례. 더욱이 혼쭐을 내주겠다고 호언했던 남편마저 게임에 매료되자, 게임에 가족 모두를 빼앗긴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 집에는 애가 두 명’이라며 노골적인 반대 입장을 펼쳤지만, 오히려 게임과의 인연이 더욱 깊어져가는 부자를 보며 분개한 윤순노씨.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쟁을 선포했죠. 침묵시위로 일관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 나중에는 밥조차도 차려주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TV채널까지도 게임 방송이 수놓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함께 PC방을 찾으며 집에도 늦게 들어오더군요.”

격분한 윤순노씨는 한 동네에 살던 친언니에게 긴급구조를 요청한다. 가족회의가 열렸지만 제대로 설득시킬 수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던가. 윤순노씨는 언니 윤옥노(49)씨의 지원을 등에 업고, 게임의 역기능을 파헤치기 위해 관련 매체를 교과서로 삼고 게임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물론 그 사이에도 게임을 통한 부자간의 정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렇게 2개월 남짓. 단판을 짓겠다는 심정으로 제 2차 가족회의를 개최한 윤순노씨.

하지만 당시 가족회의가 이들 가족의 운명을 바꿔놓을 줄은 그녀 역시도 몰랐다. “그토록 잘 알면 한번 대결해보자고 하더군요. 게임에서 지면 정말로 이별을 고하겠노라면서 말이죠.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잖아요. 저도 공부한 것이 적지 않아 한 달 뒤 진검승부를 펼치기로 약속했죠.” 어릴 때부터 ‘악바리’로 소문났던 윤순노씨. 결코 패배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기필코 큰 코를 눌러주겠다는 마음으로 게임 공부에 박차를 가했던 그녀. 하지만 윤순노씨와 부자간의 승부는 끝내 펼쳐지지 않았다. 그 사이 게임의 즐거움에 그녀 역시도 심취한 까닭이다. 그렇게 8년. 이제는 게임 가족의 대모답게 가족들을 이끌고 e스포츠 경기장을 찾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고까지 말하는 그녀 앞에, 게임은 로또 복권 이상의 행운이었다.

아들편 | 게임 통해 깨닫게 된 가족 사랑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워하죠(웃음). 게임을 이해해주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함께 즐길 줄 아는 혜안을 가진 멋진 부모님이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저는 정말 행운아죠.” ‘스타크래프트’ 배틀넷 전적 4,700승 1,200패의 화려한 전적을 가진 아들 김인수(20)군. 실상 마니아 중에서도 골수에 속하는 그답게 내공 또한 상당하다. 의정부시에서 주최한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는가 하면, 온게임넷 챌린저리그에 참가, 4강에까지 오른바 있는 실력파. 현재 강원도에 위치한 한림대에 재학 중이지만, 결코 부모님과 떨어져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매일 게임을 통해 가족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밤 12시가 되면 더 이상 게임을 즐기지 않죠. 아쉬움이요? 저를 믿고 함께해준 가족들이 있는데 더 이상 무슨 바람이 있겠어요. 뭐, 솔직히 말한다면 한 가지 아쉬움이 있긴 하죠. 최근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보다는 이모, 이모부(백운상, 51)랑 더 많이 게임을 즐기시더군요. 저랑 하면 쉽사리 이길 수 없으니까 그런 것 같은데, 조금은 시샘이 나요.” 그의 말이 이어진다.

“부모님이 게임하는 여자 친구가 아니면 사귈 생각조차 말라고 하시는데 조금은 걱정이 앞서네요. 아마도 고부간의 갈등마저 게임으로 이겨낼 심산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게임을 통해 확인한 가족 사랑 앞에 오늘도 환한 미소를 짓는 김인수군. 그는 부모님의 후원을 등에 업고 오늘도 프로게이머의 꿈을 활활 불태우고 있었다. 이들 가족은 가족 간 화합을 넘어 이제는 동서 지간 대화의 창구로까지 게임의 순기능을 확장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배틀넷 전적만큼이나 더욱 깊어지는 이들의 가족 사랑. 하지만 이 역시 시작에 불과하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게임을 권하고 있어 곧 이들 주변에는 게임을 통해 풍요로움을 얻게 될 수많은 이웃들이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김은진 기자|ejui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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