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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나는 ‘검열의 망령’

  • 경향게임스
  • 입력 2004.01.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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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기억이 가물거리는 오래 전 일이 돼 버렸지만 영화에 대한 사전심의와 가위질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어떤 영화든 국내에 상영되기 위해서는 사전심의를 받아야 했고 연령제한과 함께 문제시(?)되는 장면은 가위질로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 제도는 결국 영화계의 거센 반발과 여론의 동조에 힘입어 일단 표면적으로는 상당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등급제’라는 이름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제대로 국내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등급심의기준에 맞춰 스스로 몸을 사려야 하는, 이른바 ‘자율검열’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자율검열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문화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성’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다는 점이다. 한없이 자유롭고 막힘 없는 사고를 펼쳐야 할 영화제작자가 영화의 질과 작품성을 걱정하기에 앞서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아니 좀더 직접적으로는 등급심의에서 용납될 수 있을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창조물에 집중하기보다는 최근의 등급심의 경향과 심사위원의 개인적 취향까지 탐문해야 하는 상황은 문화산업에 있어서는 ‘재앙’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영화와 같은 제도 하에 관리 받고 있는 게임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오래 전부터 게임에 대한 등급심의는 게임계의 ‘뜨거운 감자’로 작용하며, 많은 게임개발사들이 등급심의에 적당한 게임을 만드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와 달리 게임의 주 소비층이 미성년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게임에 대한 등급결정은 게임의 성패까지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게임개발에 있어 최우선 과제는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 이전에, 타깃 연령층에 맞는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게임이 앞서게 되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생기 넘치는 기획들에 대한 언급조차 하기 싫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틀을 깨야 할, 꿈꾸는 사람이어야 할 게임개발자가 자꾸 심의라는 틀 안에 갇히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청소년에 대한 일정수준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고, 필자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견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청소년에 대한 보호가 단순한 ‘선혈묘사’를 배척하는 것에서부터의 보호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위한 ‘텔레토비 동산’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프로테스탄트’적 삶의 21세기형 실천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논의를 약간 벗어난 얘기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최근에는 컨텐츠에 대한 심의를 넘어서 과금방식이나 사업모델에 대한 심의까지 영역을 넓히는 모양이니 ‘사회정의’까지 사업 영역이 너무 방대해 지지나 않나 싶다.

이런 상황에서도 게임 산업은 매년 ‘21세기 주요육성산업’으로 꼽히며 매번 정부차원의 대규모 지원책이 발표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꼼짝못하도록 손발을 묶어놓고, 게임 한번 잘 만들어보라고 등 떠미는 격이라고 할까. 이래서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열린 사회는 부패하지 않는 법이다. 통제와 관리로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는 발상은 우리 사회의 자기정화기능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 합리적인 사고와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보장되는 사회와, 그 열려있는 사회에 대한 적들은 누구인지, 다시 한번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박성준 | 코룸 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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