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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인터뷰 - 아이엠씨게임즈 김학규 대표] “게임이 끝나면 남는 것은 추억, 어떤 추억을 심어줄지가 우리 역할”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2.11.22 16:41
  • 수정 2022.11.2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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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그렇다면 게임은.

“MMORPG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게임이 왜 재미있을까’하는 질문을 종종 해봅니다. 결국엔 게임 안에서 남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 같아요. 적이든, 친구든, 길 가다가 잡담을 하던 사람이든, 신세 한탄을 함께 나눴던 사람이든 함께 했던 시간이죠.”

▲아이엠씨게임즈 김학규 대표
▲아이엠씨게임즈 김학규 대표

아이엠씨게임즈 김학규 대표는 게임이 남기는 재미를 추억이라고 봤다.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던 추억. 게임을 즐기는 그 시간이 바로 추억이 된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면 결국 김학규라는 게임 개발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일을 하는 게임 개발자다. 

김학규 대표는 올해로 28년차 게임 개발자다. 지난 1994년 데뷔한 이후 ‘라그나로크’, ‘악튜러스’, ‘그라나도 에스파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등 굵직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 성공과 함께 특유의 팬덤을 구축해 스타 개발자 반열에 올랐다. 국내 게임계를 대표하는 유명 인사 중 한명이 됐다. 번번이 파격적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 새로운 게임을 창조하고자 노력한 개발자기도 하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게임 개발자로서, 또 게이머로서 살아온 그가 느끼는 게임 개발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사로 담아 봤다. 

기억의 가치, 행복에 투자하는 게이머들

“사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그러니까 화면 속에서만 보이는 존재에다가 많은 시간과 돈을 넣어야만 하는 가치가 있는가 하고 묻는 분들이 많죠.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해 보다가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면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억이 맛 때문일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물론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면 평범한 것을 먹어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더 특별한 것, 더 맛있는 것을 남았다면 더 기억에 남겠지요.”

김 대표는 이를 ‘기억의 가치’라 설명했다. 추억은 하나같이 소중하지만 ‘더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실제로 게이머들에게 물어보면 ‘더 제미있는 게임’을 즐기고자 투자를 한다고 하니 넓은 의미에서 그의 해석에 공감이 간다. 

“그렇다면 이제 제작자로서 할 일은 따로 있겠죠. 게임을 즐기는 분들에게 더 소중한 추억을 드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발했던) 과거 게임들을 돌이켜 보면 결국 제가 했던 일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일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면서 추억을 쌓을 기회를 제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봐요.”

과거의 추억 보단 새로운 도전하고파

실제로 그가 선보이는 게임들을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애틋한 감정이 몰려 들어온다. 게임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시절 살았던 삶들에 대한 기억들이 함께 물밀 듯이 몰려드는 체험을 기자는 종종 한다. 유독 그 녀석이 ‘라그나로크’를 좋아했다. 어쩌면 인터뷰를 보는 독자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엄연한 나의 삶으로 때로는 떨쳐버리기도 싶곤 하지만 고이 접어서 책상 서랍 안에 집어넣고 가끔 튀어나오면 반갑게 마주하기로 했다. 김 대표 역시 반가운 기억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중 몇몇은 다시 꺼내서 몇 번이고 돌려 보고 싶은 기억들도 있다. 김 대표가 만들었던 게임 중에는 지금 다시 나와도 많은 이들이 사랑해 줄 작품들이 있을 법 하다. 일례로 ‘악튜러스’는 어떨까.

▲ 그라비티 악튜러스
▲ 그라비티 악튜러스

“얼마 전에 어떤 BJ가 ‘악튜러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깨는 방송을 하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 부분을 계속 보고 있으니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스킵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추억 보정이 좀 들어가겠지만 이야기, 감성 그런 부분들은 지금 봐도 좀 다른 게임에는 없는 무언가가 느껴지기는 하지 않나 싶습니다.”

기자 역시 이 부분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게임성 자체는 사실 ‘그란디아’와 같은 게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서 비난이 있었지만 게임이 보여주는 감성 그 자체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것일 듯하다. 이 게임 오프닝 곡은 지금 들어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다시 나와주면 되지 않을까. 

“리메이크요? 사실 권리관계가 많이 나눠져 있으니까(힘들죠), 지금 만든다고 하더라도 같은 게임성이 의미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요즘에야 엔진도 좋고 기술도 많이 늘었고, 당연히 예전보다 잘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죠. 그런데 그때는 젊을 때니까. 이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건지 모르고 그냥 해보자 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쉽지 않죠). 나중에 뭐 혼자서, 인디게임처럼 만들 수 있게 되는 시간이 온다면 모르겠는데, 그래도 한 번 해봤던 도전이니까. 다른 방향으로 도전해 보지 않을까(생각해 본다).”

신시장을 향한 끊임 없는 도전

엄밀히 말하면 김학규 대표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온 인물이다. 전작보다 좀 더 나은 시도를 계속하고 색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치를 완성해 내고자 하는 경향들이 게임상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이는 가끔 시대를 앞서 나가기도 한다. 일례로 ‘그라나도 에스파다’에서는 혼자서 캐릭터 3개를 움직여서 일종의 자동 사냥을 구현하는 시스템도 만들어 냈다. 이것이 ‘그라나도 에스파다’가 2006년에 출시됐으니 벌써 16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 아이엠씨 게임즈 그라나도 에스파다
▲ 아이엠씨 게임즈 그라나도 에스파다

“MCC 시스템이라고 하죠. 이 시스템을 처음 기획했던 것은 혼자서 파티 플레이를 하는 듯한 뉘앙스를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유저들이 원하는 원하는 재미 중 하나는 ‘뭔가를 완성하고 싶다’는 목표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로 제시한 시스템입니다. 벌써 십몇 년 동안 계속 개발하고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시스템입니다. 이걸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도 또 준비하고 있고요. 지금으로서는 말하기 이른 단계이지만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 2’에 준할만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실험은 일어나고 있다. 아이엠씨게임즈와 김학규는 여전히 앞을 향해 전진한다. 최근에는 ‘트리 오브 세이비어 M’을 정식 출시하고 크로스 플랫폼 시장을 노리기도 한다. 

“퍼블리셔를 통해 모바일 게임을 발매해 보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 모든 프로세스를 경험하는 것은 처음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준비하면서 걱정도 많이 했는데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잘 나와서 다행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항상 가슴 설레지만 또 두려운 부분이 있죠.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 IP를 다시 만들어서 하다 보니까 원작에서 완전히 동떨어져서도 문제고, 너무 똑같아도 또 안되는 부분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플랫폼도 다르고 유저 성향도 다르다 보니 그 부분이 제일 힘들더라고요.”

‘트리 오브 세이비어 M’은 장시간 동안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몇 차례 변화했다. 유저들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수집하면서 수정 과정을 반복했다. 이를 통해 추구하는 게임성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반영해 수정 키도 하고, 인터페이스가 개편되는 등 다양한 변화들이 진행되기도 했다. 여러 시도들이 있었던 셈이다. 이 같은 시도들이 있었던 이유는 유저들의 니즈를 파악해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PC버전을 즐기는 유저들의 성향과 모바일 버전을 즐기는 유저들의 성향이 조금씩 다 다릅니다. 대중의 취향이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뜻인데, 유저층이 넓어지다 보니까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PC 쪽 유저들은 상대적으로 탐험을 원하고 다양한 곳을 방문해 보기를 원하는데 모바일에서는 그런 요소들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 PC 쪽 유저들은 모르면 물어보고 도전해 보고 하는데, 모바일에서는 역시 그런 부분을 원하지 않았죠. 그래서 처음에는 자동으로 만들었는데, 또 중간에는 CBT 때 자동을 풀어서 테스트해 보기도 하고 매번 테스트마다 반응이 다 달랐어요. 그것이 가장 큰 고뇌였습니다.”

▲ 아이엠씨게임즈 트리 오브 세이비어M
▲ 아이엠씨게임즈 트리 오브 세이비어M

엄밀히 말하면 PC버전은 소기의 성과를 냈지만 또 다른 형태로 멍에를 안겼다. 워낙 많은 버그가 나오면서 ‘버그 게임’이라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일종의 밈이 되면서 오히려 이 버그들을 즐기는 분위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다. 이런 상황이 연장되면서 모바일 게임에서도 인식이 나쁠 수 있다. 

“짊어 저야 할 숙제죠. 사실 너무 욕심을 부린 경향도 있어요. 자유도 있는 게임,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하다 보니 나오는 문제점들입니다. 어느 정도 선까지 기능을 제한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계속 이어나가도록 만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이건 한 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 두 가지, 세 가지 계속 덧붙이고 조합하도록 만들다 보니까 개별로는 잘 동작하는데 뭉쳤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식이었어요. 수정을 계속하면서 안정화가 되기는 했지만 죄송하죠. 특히나 콘솔 패키지 게임들의 경우에는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MMORPG 같은 경우에는 결국 유저의 손해가 되니까 쉽게 웃고 넘기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모바일 게임에서는 이러한 버그들이 발행하지 않도록 정말 주의 깊게 다루고 수정하고 해서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크로스 플랫폼 시대, 다양한 니즈 만족코자 노력해야

김 대표는 다년간 PC MMORPG를 개발해온 사람으로서 유저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 보니 게임에서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재미를 주고자 하고, 함께 하는 재미를 만들어 주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모바일에서 유저들이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제 고착 상태가 시작되는 셈이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또 한 쪽에만 올인하다 보면 서서히 빠져나가는 유저들이 압박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은 대표가 내려야 한다. CEO는 그래서 괴롭다. 

“자연스러운 방향성이라고 봐요. 크로스 플랫폼 시대가 오면서 겪어야 하는 일종의 성장통이죠. 예전에도 사실은 PC로 게임하다가 이동할 때 모바일로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자주 나왔습니다. 콘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휴대용 하다가 콘솔 하다가 하는 아이디어들이 있었죠. 이제는 ‘일상화’가 되는 상황입니다. 설사 모바일게임 전용으로 발매했다 하더라도 에뮬레이터를 통해 PC로 게임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당연한 흐름입니다.”

즉 이 시장에 맞춰서 대비를 해야만 앞으로도 성장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문제는 김 대표가 언급했듯이 각 플랫폼마다 유저들의 성향이 다르다. 이를 공통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확장해 보면 게임성에 대한 문제도 있다. 누구도 마땅한 해답을 내리기 어렵다. 이 시대를 대비해 국내에서도 여러 시도들이 잇따른다. 이제는 PC 모바일을 넘어 콘솔까지 멀티 플랫폼이 시도된다.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도약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나온다. 문제는 해당 게임성이 글로벌 시장을 향해 있느냐라고 보면 이는 그리 긍정적인 일은 아닐 수 있다. 

“사실 그 부분은 해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MMO 인가 아닌가의 문제라고 봐요. 콘솔 게임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인상이 있듯이 해외 유저들도 MMO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공식이 있죠. 즉, 장르 자체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기자 역시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갖고 시장을 바라보는 듯하다. 콘솔 게임의 틀이나 PC 게임의 틀, 모바일 게임의 틀을 정해놓고 시장을 바라보면 당연히 어딘가 어색할 수밖에 없는 듯한 분위기다. 김 대표는 이 틀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게임의 재미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떤 게임이든 재미를 보장하고 잘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며 나머지는 그다음 이야기라는 이야기다. 우문에 현답이다. 

“세계관을 설정하고 세상을 보여주고 이런 것들을 질문하시는 부분들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필수냐고 질문하신다면 그것은 다음 문제에요. 저는 한 쪽이 다른 쪽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다고 봐요. 처음에는 세계관 이런 거 안 읽고 지나가는데 2회차 하면서 길도 어느 정도 알고, 캐릭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좀 더 보이고 이런 경우들도 있죠. 처음부터 이런 것들을 강제로 진행하도록 만들지 않는 점이 중요하다고 봐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게임 세계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사람들이 함께 만나 웃고 떠드는 세계. 누군가는 사냥을 통해, 누군가는 PvP를 통해, 누군가는 함께 앉아 잡담을 하면서 함께 교류하고 친구가 되고, 때로는 적이 되면서도 어떤 형태로든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는 게임이 그가 바라는 것인 듯하다. 일종의 세상을 닮았다. 앞으로도 그의 세상은 게임에 담길 예정이다. 

언젠가 ‘라그나로크’포스터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러 가자”라는 문구를 봤던 기억이 있다. 두 캐릭터가 손을 붙잡고 먼 곳을 바라보는 그림이다.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던 기자는 동방에다가 이를 붙여 놓고 매일 같이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나도 언젠가는 ‘또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이제는 기자로서 ‘만드는 일’은 할 수 없지만 ‘전하는 일’은 할 수 있을 듯하다. 김학규 대표가 만들어갈 또 다른 세상을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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