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히라바랴시의 게임대학 <제26회>] 비즈니스 모델의 역사

  • 경향게임스 khgames@khgames.co.kr
  • 입력 2009.05.11 09:28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게임을 만든 아버지의 위대한 공적
 
맨하탄 계획에 참여했던 윌리 비긴보섬 박사는 과학을 평화에 이용하는 일환으로 게임 개발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1958 년 세계 최초의 게임이 탄생되었습니다.


박사의 전문지식은 전자공학 외에 물리학, 방사선학 등 다방면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중에서 과감하게 게임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하고 또 완성 시켰습니다. 우리처럼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결단을 존경해 마지 않습니다. 만일 윌리 비긴보섬 박사가 없었다면 게임의 탄생은 더욱 늦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사는 오늘날 게임의 초석을 세운 인물입니다.


또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윌리 비긴보섬 박사의 헌신적인 행동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원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게임은 처음에는 개인의 작품이 아니었다. (중략) 게임이 태어났을 때, 제작자는 미래를 위해서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오늘날 게임의 번영은 발명자의 혜안과 관용 덕분이다.’


윌리 비긴보섬 박사가 재직했던 부룩헤이븐 구립연구소에서는 발명품 전부에 대해서 특허를 취득하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러나 박사는 특허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박사는 이미 20 개 이상의 특허를 가진 전문가였지만 게임에 대해서는 특허신청을 보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박사는 게임의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박사가 세계 최초의 게임의 특허를 가지면 그 권리는 국가에 귀속되어 버립니다. 박사가 국립연구소의 과학자인 이상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박사는 앞으로 새로운 게임을 만들 때마다 정부에 신청서를 제출한다거나 정부의 특허권이 너무 강해 다른 사람이 게임 개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특허신청을 포기하여 자신과 국가의 권리가 게임에 미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연산 결과를 표시하는 데 디스플레이를 사용한다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생각해내는 개념조차도 기본 특허를 낼 수 있고, 또 ‘특허, 특허’하며 아귀처럼 무리 지어 다니는 컴퓨터 세계인 까닭에 비긴보섬 박사의 결단은 한없이 존경스럽다.’


윌리 비긴보섬 박사는 게임의 작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제 2, 제 3 의 게임을 만들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게임을 창작하는 전문가가 태어나 아주 새로운 오락이 성장할 것을 예견했던 것입니다.


박사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에는 실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박사의 추종자는 예상 밖으로 일찍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게임이 태어나고 나서 약 3 ~ 4 년 후 무대를 옮겨 지금까지 맨하탄 계획에 과학자를 많이 보냈던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두 번째 게임이 개발된 것입니다.


이 항목은 비즈니스 모델이 테마이지만 게임은 아직 비즈니스가 되지 않았습니다.


협력 : AK커뮤니케이션즈(www.amusementkorea.co.kr)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