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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랍 브라이덴베커 온라인테크놀러지 부문 부사장] 고객상담원이 블리자드 부사장 됐다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10.07.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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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것 개선하면서 큰 아이디어 얻어 …
- 아래로부터 건의가 회사의 핵심 동력


랍브라이덴베커를 처음 만난 것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국내 기술 발표현장에서다. 배틀넷2.0이라는 굵직한 물건을 들고 나타나 시스템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진행했다. 그는 배틀넷2.0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결제 수단 및 시스템 연동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낯설다. 블리자드의 부사장들인 크리스 멧젠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랍팔도는 ‘커맨드앤컨커’시리즈를 비롯해 주옥같은 게임들을 각각 개발한 바 있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어색한 상황이다. 그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대뜸 “어떻게 블리자드에 입사하게 됐냐”고 물었다. 무슨 개발팀에서 핵심 개발을 담당했거니 생각했는데, 이 사람의 답변이 걸작이다. 아타리나 NES(패밀리), 애플PC 게임이 좋아서 무턱대고 입사했단다.


블리자드가 이제 막 패키지를 팔고 ‘워크래프트’를 알리기 시작한 때가 그가 입사한 시점이다. 그런데 그 때 담당 받은 보직이 고객상담원이다.


“막 입사할 당시 컴퓨터조차도 없는 환경에서, 고객이 뭔가를 주문하면 받아 적는 것이 제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전화 상담과 주문 확인을 6개월동안 하자 그는 슬슬 열이 받았다. 컴퓨터 한 대 정도는 놔두고 입력하면서 쓰면 좋으련만, 여전히 책상앞에서 연필로 받아적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 고충이야 알만하다. 난데 없이 그는 사장에게 상담을 신청한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제가 좀 더 나은 주문 방식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리고선 6개월만에 그는 프로그래머 보직을 받게 된다. 그러나 난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쥐뿔도 모르는 그가 뭔가를 만들 수 있을 턱이 없다. 


“무조건 쫓아다니면서 물었습니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전 아무것도 없었지만 동료들은 마치 ‘천재’나 ‘신’과 같은 능력들이 있었으니까요. 처음엔 귀찮아 하더라도 끈질기게 물으면 잘들 가르쳐 줬습니다”


사실 서양 비즈니스 문화에서 이런 환경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직장 내에서도 한두 명의 동료들만 친구로 갖는 것이 이쪽 문화다. 어떻게 그렇게 했냐고 물었더니 블리자드는 다르단다.


“그 시절 블리자드는 아주 작은 개발팀이었고, 모두가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들 친구와 같았습니다. 함께 놀고, 함께 웃고, 함께 생활하고, 맥주를 마시고 여기저기 어울려다니는 친구들이었죠. 그렇기에 더더욱 웃으면서 물어볼 수 있었고, 잘 가르쳐주는 친구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사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끈질긴 물음 끝에 그는 결국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주문 시스템을 보다 간결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토록 지겹게 받았던 주문 전화 대신 온라인 상에서 패키지를 구매하도록 제작했다. 덕분에 연필과 지우개 신세는 면했지만, 그 다음 할 일이 까마득 했다.



▲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랍 브라이덴베커 온라인테크놀러지 부문 부사장


[더 넓게 생각해 보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 또 불편한 게 생기기 시작했다. 고객의 주문을 받는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미수나, 허수 주문에 열받기 시작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론칭하는 시점에서 한 번에 수백만개씩 쏟아지는 주문을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고객지원팀이 해야하는 일들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또 다시 그는 사장을 찾아간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번에도 온라인 상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생각했습니다만, 좀 더 편한 방식을 찾아보고자 했지요. 쿠폰이라던가, 다양한 주문 시스템을 통해 월 결제를 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배틀넷 2.0의 시스템이 연동된 상태다. 모든 게임의 결제 시스템을 한 데 묶어야 하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월 결제나 쿠폰 시스템, 그리고 보안까지도 책임져야 한다. 아마도, 이번에는 물어볼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십수년의 세월동안, 어쩌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본인에게 물어야할 형태일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과연 그는 괴물과도 같은 이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생각인 것일까.


“작은 것부터 해나가야지요. 불편한 점이 있으면 그것을 개선하면서, 다른 작은 것들을 풀어나가고, 그렇게 하다보면 더 큰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놓치지않고 바꿔나가는 것이 해답입니다.”


그의 지론은 작은 것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큰 것만 보려고 하면 결국에는 너무 힘들어 해결하지 못할 일들만 쌓아놓고,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그것은 프로그래머들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간 그는 분명히 배틀넷 2.0을 붙잡고 씨름할 것이다. 또 누군가를 찾아가 질문을 할테고, 결국 만들어낼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또 뭘 할지가 궁금했다.


그의 답변이 걸작이다. “글쎄요. 전 딱히 세워놓은 계획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처럼만,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웃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진정 행복하다는 표정이 엿보였다. 아마 그는 5년 뒤에도 역시 사장을 찾아가 “이봐! 이건 어때”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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