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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표현의 자유와 제조물 책임

  • 정리=김상현 기자 aaa@khplus.kr
  • 입력 2023.12.2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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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라는 단어는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필자가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 자주 문제로 나오던 단어였다. 게임이든 영화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은 콘텐츠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던 일본어의 잔재와 일본식 표현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르고 쓰더라도 콘텐츠 속에 녹아있는 메시지가 모르는 사이 시나브로 녹아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남성 혐오 표현이 발견된 것이 문제가 되어 서비스 회사의 사과와 영상 제작사의 사과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페미 검증’의 허상이라거나, 도가 지나치다거나, 확인 결과 해당 이미지를 그린 사람이 남자라며 이번 논란 자체가 문제라는 식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 문제와 관련해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있으나, 필자까지 그 문제를 다루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현재의 관련 논란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문제를 좀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이 문제가 정말 페미니즘의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사전적 의미의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여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활동이다. 요즘처럼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고자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남성을 혐오하는 것이 페미니즘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표현이 페미니즘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페미니즘에 대한 사상 검증이라고 근거 없이 전제한 다음, 사상 검증을 비판한 것은 틀린 비판이다. 이 표현이 페미니즘이 맞는지부터 따져본 다음에 할 이야기이다.

둘째, 남성 혐오의 문제를 남녀 갈등으로 규정하고, 남자가 그렸으니 남성 혐오의 표현이 아니라는 식의 논점을 흐리는 주장이 많다는 점이다. 남성이 페미니스트일 수 있듯이, 남성이 남성 혐오를 할 수도 있다. 자기혐오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그린 이미지이니 괜찮다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없다. 한국 사람이 그린 그림에 욱일기를 넣어도,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를 표현한 친일 표현이며, 문제가 있다.

셋째, 만들어진 콘텐츠는 산업적으로 제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흔하게 작품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확하게 작품은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산업적 창작물인 콘텐츠는 수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그 안에 창작자의 의도와 생각을 넣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결과물을 위해 비용을 투자한 사람의 목적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현대의 콘텐츠는 대부분 다양한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협업의 결과물이다. 특정 참여자의 의도와 메시지가 다른 참여자의 동의 없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 법에는 ‘제조물 책임법’이라는 것이 있다. 제조자가 만든 상품의 결함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제조자가 “과실 여부에 관계 없이”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이 문제가 제조물 책임까지 갈 문제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과실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심리적, 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표현을 걸러내는 것은, 제작자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며, 그 메시지를 동의 없이 표현한 창작자가 있다면 그 창작자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 그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다.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제작한 창작물은 창작자만의 소유물이 아닌 상품이고, 제품이다.

흑인들이 역사적 피해자였다고 해서, 그들이 백인을 비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고, 과거에 사회적 억압을 받았다고 해서, 지금 이슬람 교인을 비하하고, 억압하는 것을 옹호할 수 없다. 남성 혐오의 표현을 남녀평등 활동의 일부로 정의하고, 이를 남녀 갈등 문제로 결부시키는 것은, 자신들의 비열함을 포장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일은 비난받아야 한다. 창작자가 자기 비하를 한 것이거나, 창작한 제작사에 고의가 없었다는 것으로 비난을 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의 생계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빠르게 대응하려고 한 회사를 대상으로 쉽게 과잉 대응이라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인기 신작 게임에서 극우 표현 논란이 이슈화 되어 담당자가 퇴사하고, 대표이사가 사임한 일이 있었다. 수십 명이 수년간 수십억의 개발비를 들여서 개발한 게임을 그렇게 게이머들이 외면했다. 그러나 그 손실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표현의 자유는 그 표현을 통해 발생한 결과를 창작자가 책임질 때 가질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이번 이슈에 관한 기사를 쓴 기자들도 벗어날 수 없는 문제이며, 지금 글을 쓰는 필자 역시 벗어날 수 없는 문제이다. 표현의 자유로 이야기하려면, 창작자의 비용으로, 창작자가 손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남의 돈으로 급여를 받고 일을 하면서, 공동 제작하는 창작물에 동의 없는 자신의 메시지를 몰래 넣으면서, 표현의 자유라는 포장으로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양아치 짓을 하는 사람은 이제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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