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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 업계 무관심 속, 벼랑끝에 선 게임학과

  • 안일범 기자 nant@kyunghyang.com
  • 입력 2007.03.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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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 전국 70개 대학에서 학업을 마친 게임학과 학생 3,000여명이 학사모를 썼다. 하지만 이들 중 오직 30%만이 게임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 중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입사한 이는 10% 남짓한 실정이다. 수년의 세월을 오직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정을 불태웠지만 그들에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내년 2월, 또 다시 수 천명의 게임학과 졸업자가 학사모를 쓸 예정이지만 정부와 업계의 무관심 속에 그들의 앞날도 까마득하기만 하다.

- 게임학과 취업률 30% 수준, 게임 대기업 인력 중 3%미만이 게임학과 출신
- 교육 전문성 부족, 실습실 지원 미비… 학생들 게임 하나 못 만들어 보고 졸업
- 정부, 매년 앵무새 사탕발림 정책, 내년 취업률 더욱 악화될 전망

게임학과 학생들의 비참한 현실
지난 2004년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게임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A씨(27세,남). 모 전문대 게임학과에 입학해 2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게임 기획자 지망생으로 평점 4점대가 넘는 우수한 성적에 5개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공모전 입상과 같은 실적이 없다는 것이 유일한 결점이다. 지난 2006년 2학기부터 지금까지 취업을 위해 게임회사를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게임 회사들은 입사를 허락하기는커녕 면접을 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고 학과에서 인정받는 ‘수재’였지만 취업의 문턱에서부터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A씨는 “학과에서 그나마 톱클래스에 속했고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해 쉽게 취직할 줄 알았다”며 “그 동안 공부했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돼버린 셈”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이어 “지금 게임학과 졸업생 대부분이 취업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게임 개발자가 되려면 게임학과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게임학과 취업률 30%미만
A씨가 밝힌 게임학과의 현실은 거짓이 아니었다. 2006년 게임학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게임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중 게임학과 출신은 8%에 불과하다. 게임 전문 인력 양성의 메카라고 부르짖는 각 대학들은 자존심을 철저히 구긴 셈. 게임학회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2007년도 취업률은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이 현상은 해결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각 대학 게임학과가 밝힌 게임 업계 취업률 역시 극히 저조했다. 대부분의 학과가 30%미만의 게임 업계 취업률을 기록했고, 심한 곳은 총 정원 중 단 2명만이 게임 회사에 취업했을 정도. 그나마 게임학과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호서대와 청강문화산업대가 50%를 넘겨 자존심을 세운 것이 고작이다. 일부 대형 업체들이 밝힌 바도 별반 다르지 않다.


▲ 국내 모대학 게임학과의 전경

전체 직원 중 NC소프트(2%), 넥슨(1%), 웹젠(1.2%), 구름인터렉티브(3.3%)의 인원만이 게임학과 출신이다. 이러한 현상은 게임 업계의 특색과 연관된다. 게임을 개발 및 서비스하기 위해서 필요한 프로그래밍, 그래픽디자인, 마케팅, 운영 등은 게임학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업무다. 예를 들어 서양미술을 전공한 이들은 포토샵, 일러스트 등의 툴을 익히기만 하면 일반 게임학과 출신과 별반 다를 바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또한 게임 마케팅 업무의 경우 오히려 마케팅 관련학과 출신의 인력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게임 업체는 2천여 개에 불과하다. 매년 3천명에 달하는 게임학과 졸업생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있고, 여타 관련학과의 인원과 아직 취직을 못한 이들까지 합치면 그 경쟁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게임학과를 졸업하는 이들은 ‘레드 오션’속에서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게임학과 출신이 가지는 장점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타 학과에 자리를 내 주고 있는 형편이다. 게임학과생들의 취업률이 저조한 반면, 게임 전문 교육 학원들은 졸업생의 90% 이상이 게임 업체에 취업하고 있다. 같은 교육기관이지만 게임학원이 오히려 훨씬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고 있는 것. 게임 전문 교육학원인 코리아 컴퓨터 아트 교육원 김정진 팀장은 “게임학과들이 가르치는 내용과 실무에 필요한 내용이 달라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게임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업하지 못해 학원을 찾아 다시 교육을 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라고 밝혔다. 결국 게임 전문 교육기관을 표방하는 게임학과들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 국내 모대학 게임학과의 실습실

무늬만 게임 전문 교육기관
실상을 들여다본 게임전문학과는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 호서대학교 게임공학과의 김경식 교수는 “게임학과들이 개설된 지 5년 남짓해 전문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 인력이 드물다”며 “현직 게임교수는 대부분 기존 컴퓨터학과를 맡았거나 디자인을 교육하던 이들”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게임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비전문적 지식을 가진 교수들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게임 교육과정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고, 결국 학생들은 학과 과정만으로는 게임을 개발할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게임학과 중 전문 실습실을 보유하고 있는 학과는 10여 곳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 프로젝트의 경우 팀 단위로 작업이 진행된다. 이 팀원들이 모여서 작업할 공간이 없다는 것은 프로젝트의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H대학의 게임학과 재학생이라고 밝힌 B씨(22,여)는 “게임 개발팀을 구성해 게임을 개발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실습실조차 배정되고 있지 않는 상태”라며 “얼마 전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탔던 작품도 팀원의 자취방에서 모여 개발해낸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이어 “학과에서 실습실 등을 적극 지원해줬다면 프로젝트를 좀 더 완벽하게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D대학의 경우 지난 2006년 게임학과에 재학한 100여명 중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본 학생은 불과 15명(3팀)에 지나지 않았다. 이 대학을 졸업한 J씨는 “지난 2년 동안 실제로 게임을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졸업 작품을 만들었다”며 “졸업 작품 수가 다음해 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까닭에 게임성이나 작품성 보다는 개발 작품의 숫자에만 급급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게임 제작에 성공한 세팀 모두 강의에 참여하지 않은 채 독학으로 개발에 매진해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며 “아무 쓸모없는 졸업장만 달랑 한 장 얻었을 뿐, 애초에 게임학과에서 공부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정부 대책 불발, 대안은 없다?
지난 2006년 3월 문화관광부는 2006년도 문화산업분야 전문인력양성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문화컨텐츠 관련학과의 특성화 지원을 통해 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미리 준비하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취지 하에 진행됐다. 이를 통해 각 게임학과의 프로젝트 실습, 커리큘럼 개편, 산학 연계를 지원할 예정이었다. 그 일환으로 문화관광부는 업체와 학과간의 만남을 주선했고, 업체의 인력이 학과에서 강의를 하도록 주선하는 역할을 했다. 정부 기관 또한 학과의 취업난을 인지하고 있고 이를 개선하겠다고 했던 것. 하지만 취재 과정동안 만나본 게임학과의 학생들은 이러한 정책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고, 업체의 강의 또한 전무했다고 입을 모았다. 게임학과의 교수들도 정부의 실효성 부족한 정책에 비판을 가했다. 경동정보대학 게임애니메이션과의 임은복 학과장은 “지난해 정부에서 한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제대로 된 대안 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그냥 돌아간 것이 전부”라며 “정부는 실질적인 대안 마련 보다는 요식행위에 급급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 게임학회의 김경식 학회장은 “문화관광부와 정보통신부에서 학과를 위해 지원을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질적인 지원은 전혀 없었다”라며 “게임학과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대로 된 정책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문화관광부 신종필 사무관은 “업체들이 게임학과 출신 인력의 능력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게임학과가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문화관광부는 게임학과가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말은 이미 지난 2005년부터 문화관광부가 언급해 왔으나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내년에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문화관광부의 신종필 사무관도 “정책의 효과는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업체는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취업에 대해 문화관광부가 직접적으로 인원을 채용하라는 식의 강요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게임학과나 문화관광부는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인 개선 의지 필요
게임 사업은 차후 대한민국을 굳건히 다질 차세대 산업이다. 이미 정부는 IT와 관련된 전 분야를 국책 사업으로 지정,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밝혔다. 허나 그 기반을 담당하는 인재 양성 부분에서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각 분야의 게임 전문가들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게임전문가 박창식 씨는 “서로 수익 올리기에 급급해 책임 회피만 한다면 결국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상태로 가다가는 해외의 개발 인력을 수입해야 할 지경에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는 것. 박창식 씨는 그 대안에 대해 “업체와 정부, 학과 모두가 한 발씩 양보해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한다”며 “업체는 ‘학과의 인력이 수준 미달’이라는 말 대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교육을 시켜 필요한 인재로 키울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학과는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며 “개발자 출신의 인력과 같은 전문적인 교수를 초빙하거나 직접 발로 뛰면서 업체가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야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전시행정에 급급하기 보다는 ‘전문 교육자 인력양성’이나 ‘게임학과 출신자 의무 고용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마무리 했다. 나무를 키워 숲을 이루고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씨앗을 뿌리고 새싹에게 물과 거름을 줘야한다. 허나 씨앗만 뿌린 채 요행을 기대하며 방관하고 있다가 열매가 떨어지기를 기대한다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정부와 업계 모두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서 숲을 일궈야 할 때다.

중국의 게임 인력 취업은?
중국은 게임 산업관련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그에 따라 정부가 직접적으로 ‘863계획(하이테크기술연구 발전계획)’을 실시, 게임 인재 육성 사업에 나섰다. 지난 2004년부터 지속적으로 게임학원을 개설, 매년 5천명 이상의 신규 인력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학원에서 수업을 받은 이들은 1년 정도의 교육기간을 거치면 85%이상의 인력이 게임 개발업체에 인턴 과정으로 취업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다시 복귀해 수업을 받게 되고 이는 취직이 될 때까지 반복된다. 교육기관과 업체가 협력해 진정한 인재육성을 책임지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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