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무거운 TRPG 형식을 벗어난 게임도 많이 등장하고 ‘영웅전설’류의 귀여운 이미지도 등장하며 RPG팬의 저변은 넓어졌지만, 여전히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지루하고 느린 진행이 단점으로 꼽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RPG게임의 판도와 개념을 아예 완전히 바꿔버린 게임이 바로 ‘디아블로’ 입니다.
기존 RPG의 전략성을 고려한 느린 전투 대신, 아케이드 게임을 하는 듯한 빠른 진행과 감각적인 전투를 내세운 ‘디아블로.’ 당시 가히 혁명이라고 할 만큼 큰 충격을 던져준 게임입니다.
‘레벨업을 하고 아이템을 모은다’ 라는 RPG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만 집중한 ‘디아블로’는 어려운 퀘스트와 시나리오, 전략성을 포기한 대신 레벨업과 아이템수집의 재미만 극대화시키는 것을 택했죠. 그 결과 흔히 ‘대량학살’ 이라 부르는 호쾌하고 파워 넘치는 전투와 끝도 없이 확장되는 부가옵션과 레어 아이템들이 등장하게 된 겁니다.
‘디아블로’의 이런 시도는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RPG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RPG의 개념마저 뒤흔든 ‘디아블로’의 성공은 이후 정통RPG와 ‘디아블로’형 액션RPG로, RPG의 개념이 양분될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RPG의 정통성을 해치는 진지함이 부족한 액션게임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결국 게임은 게임성을 바탕으로 게이머들이 판결하는 게 아닐까요. 액션RPG라는 새로운 장르의 대두와 함께 정체되고 있던 정통RPG에 ‘발더스게이트’ 같은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디아블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거기다 몰려드는 몬스터를 한방에 쓸어내는 ‘디아블로’ 특유의 재미는 사실 누구라도 놓치기 아까운 거니까요. 이런저런 뒷말에도 불구하고 ‘디아블로’ 시리즈의 후속편이 기다려지는 이유로는 충분할 겁니다.
박성준 | roco@esof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