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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부당한 전횡” vs “검찰 이기주의”

  • 이석 객원기자 suki@ermedia.net
  • 입력 2007.05.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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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검찰 마찰로 비화된 게임업자 A씨 사건



한 게임업자의 사건으로 촉발된 검찰과 법원의 ‘힘겨루기’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법원이 3번이나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해당 기관인 청주지검과 청주지법 측은 현재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검사 개인의 시각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통신망에는 현재 관련 내용을 토로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사건 담당 검사가 연판장을 돌린 이후부터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판사의 부당한 구속영장 기각’,‘영장 담당 판사의 전횡’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당분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 게임업자 A씨 전국 328개 지점 통해 460억원 매출 ‘대박’
● 법원, 구속영장 3번이나 기각… 담당 검사 내부통신망에 항의
● A씨 태국 도피 전력 있어 내부통신망 통해 논란 가중


사건은 작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 구속영장에 따르면 게임업자 A씨는 ‘놀짱 OO’라는 도박 프로그램을 개발, 지점 모집에 나섰다. 이들의 역할은 상당히 유기적이었다. 동업자인 B씨는 소본사를 통해 총판을 모집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총판인 C씨는 다시 지점을 모집했다. A씨의 경우 이렇게 모집된 전국 328개 지점에 도박 프로그램이나 게임머니를 공급해 주는 역할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불과 한 달 만에 460억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도박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큰 규모”라면서 “이들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R사를 통해 전국 328개 지점을 관리해 왔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서울 R사는 자체 보유한 서버 10대를 통해 총판이나 각 지점에 필요한 게임머니를 보내준다. 지점에서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손님들에게 나눠준다. 물론 게임머니는 1만원 당 1만점씩 자신의 아이디에 충전해 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서 손님들은 지정된 아이디로 접속하기만 하면 된다.

검찰은 “판돈의 9%를 딜러비로 떼어 이중 1.5%는 총본사 및 소본사 이익으로, 1.5%는 총판, 4%는 지점 이익으로, 나머지 2%는 잭팟 비용으로 사용했다”면서 “A씨는 이 같은 사행성 PC방의 총본사 운영자이기 때문에 구속 수사가 불가피했다”고 지적했다. 


- 원격 서버 통해 전국 328개 지점 관리


심지어 A씨는 태국으로 도피해가면서까지 사업을 진행해 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수사 압박이 거세지자 A씨는 서버 3대를 구입해 태국으로 건너갔다”면서 “이곳에서 직원들을 불러 또 다른 사업을 논의했을 정도로 죄질이 나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법원이 최근 검찰의 구속영장을 또 다시 기각한 것. 이번이 세 번째다.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영장 청구 기각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A씨는 이미 한 차례 해외로 도피한 전력이 있다. 지난 2월 인터폴에 검거돼 우리나라로 압송되지 않았다면 현지에서 또 다른 사업을 진행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때문에 검찰은 법원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담당 검사인 청주지검 박찬록 검사는 지난 11일 검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도박 프로그램 제공 회사 대표와 직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3번째 청구하였다가 기각됐다”면서 “밤을 새워 생각하고 생각해도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분노가 치밀어 이 글을 쓰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구속영장 담당 판사가 무슨 생각으로 구속영장을 보고,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면서 “구속영장은 판사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사안이 검찰과 법원의 갈등으로 외부에 비쳐지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토로했다. 그는 지난 4월 2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사건이 검찰과 법원의 마찰은 아니다. 사실을 놓고 합당한 것인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라면서 “일단 추가 수사를 통해 법원에 구속영장을 재청구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주지법 측도 이번 사안이 ‘마찰’ 혹은 ‘힘겨루기’ 식으로 비쳐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청주지법 정택수 공보 담당 판사는 “얼마 전 청주지검에서 유감과 사과 의사를 보내왔고,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청주지검 측과 합의했다”면서 “실체를 떠나서 옳은 방법은 아닌 만큼 의견 표명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 검찰 내부통신망은 지금 논란 중


그러나 현재 검찰 내부통신망에는 관련 사실을 성토하는 글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검사는 “관련 사례를 모아 대법원과 언론에 이의 제기를 해야 한다”면서 “근본적으로는 너무 개괄적으로 되어 있는 형사소송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검사도 “부당한 영장기각에 대한 블록 방법이 없는 현실이 아쉽다”면서 “언론에 사건을 공개해서라도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통상적으로 수사 중인 사건을 언론에 밝히기를 꺼리는 검찰의 관행을 감안할 때 파격적인 제안이다. 그 만큼 그 동안 쌓인 게 많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참에 형사소송법을 개정, 항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검사는 “선배 판사가 기각한 사안을 후배 판사가 기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느냐”면서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검찰이 사건을 항고하면 대법에서 관련 사안을 검토할 수 있는 항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법원 측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영장은 항고 대상이 아니며, 이번 검찰의 반발은 명백한 ‘검찰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모 게임업체 법조 브로커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본지 262호 참조) 당시 검찰은 사건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모 변호사의 구속영장 신청을 여러 차례 기각했고, 경찰은 법원에 재항고를 했지만 결국 기각됐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당시 검찰은 경찰의 재항고 신청을 기각한 법원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이번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기관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검찰과 법원 ‘힘겨루기’ 어디까지(?)
        <<<사이드스토리

“의원 화장실 갈 때 쫓아가 법안 정당성 설명”


한 게임업자 사건에서 비화된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 양상은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검찰은 그 동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영장 항고제 도입을 적극 옹호해 왔다. 지난해 말 벌어졌던 론스타 사건의 잇따른 영장 기각 이후 이 같은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최근 대검을 중심으로 구속 관련 법규정의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검에서는 현재 관련법 개정을 위한 자료 수집 차원에서 일선청의 부당한 영장 기각 사례를 매월 보고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검은 이를 기반으로 법개정을 위한 공청회 개최, 제도 개혁을 위한 국민 홍보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의 이 같은 움직임에 거부감을 내비치고 있다. ‘불구속 수사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법원은 조건부 석방제를 주장하고 있다. 불구속 재판 원칙과 피의자 인권 보장을 위해 공탁이나 보증금 등 금전적 조건과 주거지 제한 등을 통해 불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검찰은 법원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부담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 같은 양 측의 시각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국회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두 사안을 포함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양 측은 개별 의원을 상대로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의원들이 잠깐 화장실 간 틈을 타 관련 내용의 정당성을 홍보했다”면서 “그러나 검찰과 법원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 구속영장 항고 제도와 조건부 석방제가 이번 회기 내에 통과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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