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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질병화, 보여주기식 대처 아닌 실효책 ‘절실’

과학적 근거 부족, 산업 위기 초래 ‘우려’ … 문체부·협회 중심 콘트롤 타워 운영 ‘과제’

  • 정우준 기자 coz@khplus.kr
  • 입력 2019.04.03 11:52
  • 수정 2019.04.0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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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정식 등재 여부가 판가름나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늑장 대처를 놓고 게임업계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WHO의 게임질병화 움직임이 본격화된 이후, 게임업계는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로 인한 후폭풍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명해왔다. 대표적인 문제점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인한 시장 규모 위축과 종사자 수 감소로, 더 나아가 국내 게임산업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가 예고된 수순임에도, 지난 1년 동안 공동 연구 추진 정도를 제외하면 위기대응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정부의 대응이 다소 미온적이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국내에서는 게임의 중독 위험성을 문제 삼는 일이 빈번했던 만큼, 정식 등재 논란 이전부터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준비할 시간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지금이라도 정부 중심으로 업계, 학계 등 전문가를 모은 대책위를 신설해 체계적인 대응방안 논의와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게임질병화 논란을 떠나 시장 생태계를 위협하는 사회 전반의 우려를 가라앉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5월 20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되는 WHO 총회(World Health Assembly)의 핵심 안건 중 하나는 ‘게임이용장애’다. WHO는 지난해 6월 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정식 등재했으나, 이를 둘러싼 관련 업계와 의학계 전문가들의 반발로 인해 안건 처리를 1년 유예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총회에서는 벌써부터 회원국들 간의 열띤 논쟁이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도 ‘게임이용장애’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미 작년 연말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WHO 결정을 적극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정치권에서 게임사에 중독예방치유부담금을 부과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예고된 ‘빨간불’
WHO가 게임질병화를 적극 추진함에 따라, 업계 종사자나 의학·사회학 전문가 등 게임산업 관계자들은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에 대한 반론을 꾸준히 제기했다. 
가장 대표적인 쟁점은 현재 지지집단 사이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진단기준의 모호성 문제다. 모호한 진단기준으로는 일반적인 게임 이용자와 게임과몰입 이용자를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잘못된 약물 처방 가능성과 병적 기록으로 인한 낙인 효과도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이는 올해 초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팀이 공개한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간 발표된 국내외 논문 671편에서 학술적 합의 부재로 인해 각기 다른 개념의 ‘게임중독’정의가 16개나 발견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오랜 기간 게임과몰입 환자의 추적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도 위험요소로 지적된다. 윤 교수팀의 자료에서도 ‘YIAT(영의 인터넷 중독 테스트)’를 비롯해 게임중독 여부 확인 척도가 변할 때마다 유병률 연구에서 각기 다른 결과가 도출됐으며, 전체 논문 중 직접적으로 환자 치료 사례를 기반으로 한 연구도 3.4%에 불과했다. 청소년 게임 과몰입군 55%가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 결과와 달리, 모바일게임의 중독성에 대한 연구 데이터가 거의 없다는 점도 근거 부족을 입증하는 지점이다.
 

▲ 국내 연구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 후 국내 게임업계의 매출 감소 폭과 종사자 이탈율이 빠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서 게임산업을 바라보면, 게임질병화에 따른 위기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다. 게임이 중독물질 중 하나로 규정되면 부정적 사회 인식이 증가하고,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 강화로 이어져 국내 매출과 해외 수출에 막대한 타격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이덕주 서울대 교수와 한덕현 중앙대 교수는 ‘게임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에서 정식 등재 이후 국내 게임산업 전반에 약 10조 원 규모의 경제적 위축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사산업 비교유추 연구는 한국 게임시장 손실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약 5조 1,057억 원에 달하고, 지난 2011년 도입된 셧다운제 규제를 비롯한 유사영향요인 비교유추 역시 국내 시장 위축 규모가 2025년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했다.
더불어 ‘게임중독’ 오명으로 인한 종사자 이탈은 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손꼽히는 일자리 문제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게임이용장애’ 미등재 시 2025년까지 약 37,673명까지 증가하는 것과 비교해, 정식 등재 이후 최대 1만 명 가량 적은 28,949명의 종사자만이 게임산업에 남아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허무하게 놓친 ‘골든타임’
2018년 상반기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 논란이 불거지자,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외 전문가들과 과학적 검증 데이터 확보를 위한 공동 연구를 추진했다. 일명 ‘3N’으로 불리는 엔씨소프트, 넷마블, 넥슨 등 국내 대형게임사들이 출자한 ‘게임과몰입 질병코드화 대응사업’에 3년 간 총 8억 5천만 원의 예산을 편성했으며, 미국·호주·영국 등 해외 연구진과 공동으로 게임과몰입 진단기준 마련을 위한 공동연구 및 심포지엄이 진행 중이다. 한콘진 역시 올해 초 게임과몰입 관련 연구 보고서를 공개한 데 이어, 3월 19일 ‘2019 게임 과몰입 국제 공동연구 용역’ 관련 입찰 공고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국내 게임산업이 직면한 최대 위기 상황을 앞두고, 업계 내부에서는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콘트롤 타워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 지난해 초부터 WHO가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를 추진하려는 신호가 감지됐음에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업계 의견 수렴을 통해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공동 연구도 2020년까지 종속적 추적 조사가 필요한 만큼, 한 달 후인 WHO 총회까지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청문회가 진행 중인 박양우 문체부 장관 후보자가 “게임질병화를 국내 실정에 맞게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 문화체육관광부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 속에, 박양우 장관 후보자마저 ‘게임질병화’ 도입 가능성을 제기하며 논란을 야기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각 정부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문체부의 역량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실제로 문체부는 셧다운제·확률형 아이템 등의 규제 완화나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 반대 이슈에서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과 여전히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한 지난 1월 문체부·외교부·복지부와 한국게임산업협회로 구성된 정부 방문단도 WHO 집행위원회를 방문했으나, 반대의견 전달 외에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한 전문가는 “국내 게임산업을 붕괴시킬 수 있는 위기가 직면한 상황에 관련 부처 간 정책 기조가 충돌할 경우, 정부의 효과적인 지원사격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정부-업계-이용자 ‘힘 모을 때’
오는 5월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정식 등재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주무부처인 문체부와 대표 협·단체인 한국게임산업협회, 소비 주체인 이용자까지 콘텐츠산업 수출 역군이자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게임산업의 위기 최소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우선이자 핵심 과제는 역시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이다. 윤태진 교수팀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해외 논문의 68.6%와 국내 논문의 86.9%는 게임중독과 게임과몰입의 개념을 전제하고 이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반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을 제시하는 입장은 16.7%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즉, 다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정부나 게임 관련 협·단체, 게임사, 학계 등이 사례 중심의 추적 연구를 바탕으로, 정교한 분류와 구체적인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해나가는 과정이 요구된다.
 

▲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 반대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정부와 업계가 함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에 힘써야 한다. 현재 한콘진이 자녀와 학부모, 선생님들의 게임 이해도를 높이는 일환으로 진행 중인 ‘게임 리터러시’ 교육이나, 한국e스포츠협회가 매년 5월 개최하는 ‘가족e스포츠페스티벌’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외에도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각 정부부처가 게임사와 이용자와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향성을 합의하고 일관된 정책 기조를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전문가는 “규제 강화 기조 속에서 ‘게임이용장애’ 정식 등재 다음은 결국 중독세 부여”라며, “문체부와 한국게임산업협회를 중심으로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등 산업 존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야한다”고 지적했다.

 

[경향게임스=정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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