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게임이용장애’ 일방적 도입, 근거 불충분·과잉 의료화 우려

  • 여의도=정우준 기자 coz@khplus.kr
  • 입력 2019.05.28 14:10
  • 수정 2019.05.31 15:46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에 대해, 실제 게임산업 종사자와 게임이용자들과 소통해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공유하는 장이 마련됐다.
 

사진=경향게임스
사진=경향게임스

이와 관련해 5월 28일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과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 전영순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팀장, ‘G식백과’ 김성회 크리에이터가 참석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사진=경향게임스
사진=경향게임스

먼저 최승우 정책국장은 WHO가 성급하게 진행한 ‘게임질병화’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제기돼지 않은데다, 질병분류 이후 연구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주장도 현시점에 근거가 없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다.
내성이나 금단증상 등 중독 진단에 필요한 핵심 조건이 배제되면서, 진단기준의 신뢰성이 낮다는 점도 우려를 자아낸다. 실제로 다양한 전문가들은 현재 ‘게임이용장애’ 진단기준에서 게임 대신 다른 단어를 넣어도 이용장애가 성립할 수 있다고 문제제기한 바 있다. 또한 ‘게임이용장애’과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충동장애 등 공존질환 구분이 어렵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이와 함께 도입 이후 산업적 피해와 오용 사례 등 부작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충분한 공감대나 합의 없이 도입될 경우 약 8만 명에 달하는 게임산업 종사자들에게 낙인이 찍혀 고용 위축과 산업 축소가 예상되며, 범죄 처벌 경감이나 병역 면제 등을 이유로 ‘게임이용장애’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등장할 수 있다.

특히 최승우 정책국장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나갔다. 제72회 WHO 총회에서 미국이 체계적인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반면, 복지부 대표는 관련 부처 간 이견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도한 ‘게임이용장애’ 치료 가능성을 들어 질병코드 도입 지지발언을 일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복지부 주도로 추진 중인 민관 협의체에 대해서도 공정성이 배제된 만큼 문체부와 함께 불참을 예고했으며, 범부처간 합의를 이끌어낼 국무조정실의 관심을 요청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WHO 총회에서 의결된 사항이더라도 매년 10월 개최되는 WHO FIC(보건의료분야 표준화 협력센터)를 통해 ICD 조항 수정 및 삭제가 가능하다”며, “이미 조항 삭제 전례가 있는 만큼, 전 세계 게임 협·단체들과 연계를 통해 2022년 발효 전까지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국내 도입에 필요한 KCD 개정을 준비하는 타당성 검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의견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사진=경향게임스
사진=경향게임스

지속적으로 WHO에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강경석 본부장은 그간 콘진원의 연구를 통해 확보한 ‘게임이용장애’ 도입 문제점 지적 근거들을 다수 공개했다. 먼저 “게임은 문화다”라고 밝힌 강 본부장은 찬성측 주장과 달리, 게임 자체가 근본적으로 중립적인 물질이라고 강조했다. 마약이나 도박과 달리, 과도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적절히 이용하면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더불어 최근 많은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과잉 의료화 측면도 문제를 제기했다. 콘진원이 매년 11만 명의 초·중·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과몰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게임과몰입 비율은 전체 조사대상의 3% 미만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 간 게임이용자 패널을 추적 조사한 결과에서도 꾸준히 게임과몰입을 유지한 청소년은 1.4%에 불과했다. 이를 바탕으로 게임과몰입 문제는 가정과 학교에서 1차적으로 해결하고, 마지막 단계로 청소년 상담시설이나 게임과몰입힐링센터 등을 통한 문제해결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강 본부장은 “KCD 도입으로 청소년들이 낙인효과를 통해 사회적인 편견에 직면할 수 있다”며, “실제 자녀가 ‘게임이용장애’로 정신질환 판정을 받을 경우, 어느 부모님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향후 커다란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경향게임스
사진=경향게임스

이에 대해 실제 현장에서 게임과몰입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전영순 팀장도 공감대를 표시했다. 전 팀장은 “문제가 있다고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들께 단순하게 게임중독이다 말하기는 곤란하다”며, “게임 자체만으로 중독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케이스는 굉장히 드물다”고 말했다. 
특히 게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에 대해, 충분한 연구나 사례가 부족한 상황에 ‘게임이용장애’가 도입된 점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게임과몰입힐링센터 연구 결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게임 중독 현상은 대인관계 문제나 가족관계의 친밀감 부족 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지녔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즉, 게임중독이 게임 자체의 문제인지, 이용자의 특질이나 환경으로 인한 문제인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뒷받침돼야한다는 의미다. 더불어 전 팀장은 “지나친 게임 이용에 대해 보호자나 사회가 우려하는 지점은 통제 가능성”이라며, “오히려 통제시간의 중요성보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충분한 통제 기회를 주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경향게임스
사진=경향게임스

마지막으로 김성회 크리에이터 역시 “현재 ‘게임이용장애’를 비롯해 게임을 둘러싼 부정적 이슈들이 신생 놀이문화가 거쳐 가는 신고식”이라며, “다만 과도한 신고식은 신생 놀이문화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게임산업이 돈을 많이 벌고 인기가 좋으나 만만하게 보이기 때문에, ‘게임이용장애’로 대표되는 과잉 의료화나 과잉 입법 등 이권을 노리는 여러 단체의 움직임이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김 크리에이터는 언론과 업계의 역할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강력범죄나 이슈와 게임을 연결시키거나 인과관계마저 혼동한 보도들이 이어지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이 강화됐다는 지적이다. 위기를 맞이한 게임업계도 사행성 게임 개발지양 등 나쁜 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따끔하게 받아들여야한다고 꼬집었다. 김 크리에이터는 “위기를 통해 업계가 자성하고 게임다운 게임을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이정도 게임이 탄생했다는 작품을 기성세대에게 자랑할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경향게임스=정우준 기자]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