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질병화 논란 ‘순기능’효과로 맞불 ‘주목’
게임질병화 논란 ‘순기능’효과로 맞불 ‘주목’
  • 정우준 기자
  • 승인 2019.06.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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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의학·문화’ vs 국내 ‘산업실태’ 연구 방향 판이 … 전문가 “인식 개선 우선, 다방면 게임 가치 재고 필요”

[지령 755호 기사]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국내 도입 여부를 두고 찬반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게임의 순기능에 대한 연구사례가 꾸준히 등장해 눈길을 끈다.
그간 국내에서 주로 인용된 게임 관련 데이터는 콘텐츠 수출산업 규모나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등 산업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만 대중이 일상에서 체감하기 힘든 내용인 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인식개선을 위한 요소로 ‘게임의 순기능’에 주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돼왔다.
실제로 게임을 주제로 한 해외 연구사례는 환자의 치료 및 재활, 인지능력 향상 등 의학적 측면과 학업 성취도 증진과 부교재 활용 등 교육적 측면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즉, 게임을 단순히 하나의 산업으로 파악하기보다, 사회문화적 요소로서 게임의 긍정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토대로 게임 요소를 비게임 분야에 적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연구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즐거움을 전달하는 대중문화의 한 부류이자, 뛰어난 몰입감을 활용한 치료 및 교육 도구로서의 가능성이 크다”며, “단순히 게임의 산업적 가치만을 강조하기보다, 업계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순기능 연구와 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게임 담론은 부정적인 영향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게임 과몰입으로 일상생활을 무너졌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명확한 상관관계 없이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의 학업성적 하락과 수면권 상실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평가받으며, 게임은 ‘셧다운제’ 규제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반면, 아쉽게도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콘텐츠 수출의 효자 산업이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 정도가 긍정적인 평가로 손꼽힌다. 이는 곧 지금까지 하나의 매체로서 게임 그 자체가 지닌 순기능에 대한 공유가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다만 최근 ‘게임이용장애’ 이슈를 기점으로, 업계에서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측면에서 해외의 게임 순기능 연구 사례를 주의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의료현장 효과 ‘탁월’
해외에서 게임의 순기능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분야는 바로 의학계다. 치료나 재활 과정에서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높은 몰입감을 바탕으로 환자의 집중도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게임은 현대인들에게 흔한 정신질환인 우울증 치료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입증됐다. 실제로 미국 코넬대학 연구팀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60~89세 환자 11명이 4주간 30시간 동안 컴퓨터게임을 플레이하는 실험에서 표준 항우울제 ‘에스시탈로프람’ 12주 투약과 유사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뉴질랜드 연구팀이 개발한 게임 ‘SPARX’역시 우울증에 걸린 10대 참가자 187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불안 증세와 우울감 저하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게임의 순기능은 PST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공포증 치료에서도 확인됐다. 미국에서는 PTSD 진단을 받은 참전군인 156명을 대상으로 VR치료를 적용한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감소했고 순간 발작 증상도 완화됐다. 스탠포드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시각적 공간처리영역이 활성화되고 플래시백을 완화하는 ‘테트리스’를 PTSD 환자들의 치료에 도입했다.
더불어 환자들의 재활 과정에서도 게임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2013년 50대 이상 681명을 대상으로 한 아이오와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5주에서 8주 동안 10시간 정도 게임을 플레이한 실험군이 최소 1년 반에서 최대 6년 반까지 뇌 기능이 회복 및 개선되는 결과를 얻었다. 미국 재향군인회도 퇴역군인들의 근육 물리치료와 사회성 회복의 차원에서 게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업을 통해 장애인을 위한 특수 콘트롤러를 제공 중이다. 
이외에도 워털루대학 연구팀은 신경학계나 근골격계 질환자들이 VR게임 ‘로보리콜’ 플레이를 통해 시간 감각 재조정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도이치 텔레콤과 알츠하이머 리서치 UK 등이 참여한 연구팀 역시 길 찾기가 핵심인 VR 기능성게임 ‘씨 히어로 퀘스트’로 치매 조기진단 성과를 입증하기도 했다. 
 

▲ 뉴질랜드 연구팀이 개발한 ‘SPARX’는 게임 형태의 말하기 치료 방식을 통해 젊은 우울증 환자가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균형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뉴질랜드 연구팀이 개발한 ‘SPARX’는 게임 형태의 말하기 치료 방식을 통해 젊은 우울증 환자가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균형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육적 활용도 ‘입증’
이와 함께 교육 분야에서도 게임의 순기능을 점차 주목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인기 샌드박스 게임을 교육용 버전으로 제작한 ‘마인크래프트: 에듀케이션 에디션’은 전 세계 100개국 500여 개 학교에서 약 25만 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현장에서 꾸준히 활용되고 있다.
최근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 활용 가능성이 대두됐던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는 각 시리즈마다 구체적인 시대상황을 담아내 역사교육 교재로도 쓰이는데다,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을 ‘디지털 헤리티지’에 가까운 완성도로 구현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고증으로 유명한 ‘로마: 토탈워’의 경우, 병사들의 모습이나 건물 구조 등 시대상과 각종 전술 및 전법을 완벽히 구현해 다큐멘터리 채널 ‘히스토리’에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도구로 활용된 바 있다.
교육적인 목적을 지닌 기능성게임도 해외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45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디스 워 오브 마인’은 보스니아 내전을 모티브로 한 전쟁 속에서 생존해나가는 민간인을 주인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던진 작품이다. 
반면, 워싱턴대 연구진이 개발한 단백질 구조 탐색 게임 ‘폴드잇’은 게임 이용자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지난 2011년 10년 간 풀지 못했던 에이즈를 유발하는 단백질 ‘프로테아제’의 구조를 6만 명과 함께 10일 만에 해결했으며, 신규 버전에서는 이용자들이 설계한 단백질 중 56개를 실제 안정적으로 합성해내는 성과도 거뒀다.
아울러 게임이 신체능력과 인지능력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다수 발견된다. 로체스터 대학 연구팀은 FPS게임 이용자들의 시야각과 동체 반응속도가 일반인보다 뛰어나다고 밝혔으며,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에서는 게임 이용자 실험군이 지각능력과 집중능력, 인지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런던대학과 퀸메리 대학의 공동연구는 전략게임이 학업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두뇌 유연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으며, 영국과 캐나다에서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을 하지 않는 이들보다 평균적으로 사회적 소통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 코딩이나 역사 교육의 부교재를 비롯해 사회적 메시지 전달, 집단 지성 활용 등 전 세계적으로 기능성게임의 활용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 코딩이나 역사 교육의 부교재를 비롯해 사회적 메시지 전달, 집단 지성 활용 등 전 세계적으로 기능성게임의 활용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인식개선 첫 걸음 ‘기대’
이처럼 해외의 게임 순기능 사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업계 내부에서는 다시 한 번 관련 연구의 필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배적인 부정적 담론 속에서 ‘게임이용장애’라는 위기를 맞이한 만큼, 단순히 산업적 가치를 주장하기 전에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인식개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반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게임의 순기능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작업이 선행돼야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게임중독을 반대하는 연구들과 함께, 긍정적인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의료와 교육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게이미피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오랜 기간 게이미피케이션을 연구해온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T.A.G. Talk’ 행사에서 “게임을 통해 목표를 구체화할 경우 달성확률이 42% 상승한다”며, “비디오게임을 통해 학업성취도가 높아졌거나, 교우와의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김경일 게임문화재단 이사장도 “미래세대의 핵심 역량은 하나의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접목하는 ‘유추’”라며, “문학과 음악, 미술 등의 요소가 하나로 결합된 게임을 통해 유추 능력을 키울 수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적 요소를 적용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발맞춰 지난 6월 13일 국회에서도 업계·학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게이미피케이션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학계의 노력 이면에 정부와 게임업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몇 년간 수백억 원의 예산을 ‘게임이용장애’ 관련 연구에 집행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의 결정 이후 국내 도입을 위한 근거자료를 수집한 반면, 게임의 순기능을 연구하고 홍보하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의 의지는 다소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한 전문가는 “20년 전보다 게임산업 규모가 거대해졌지만, 게임생태계를 지켜내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와 투자는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 화두로 떠오른 ‘융합’의 관점에서 게임이 가진 긍정적 효과와 효과적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알리는 작업에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경향게임스=정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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