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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진실과 아름다운 거짓’ 당신의 선택은, '12분'

시간 서순 뒤바꾼 포인트 & 클릭 추리게임 … 게임으로 즐기는 사이코드라마 ‘신선’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1.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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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806호 기사]

막 일을 끝내고 들어온 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현관문이 보인다. 열쇠를 찾아 문을 열자 아내가 반갑게 맞이한다. 누가 봐도 신혼부부다.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아내는 이날을 특별히 추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불을 끄고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 디저트를 나눈다. 아내가 특별한 선물이 있다고 한다. 무엇일까. 궁금한 시간이 지나고, 아내는 아이 옷을 선물한다. 그렇다. 두 사람 사이 아이가 생긴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시작된다.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문을 두들긴다. 경찰이다. 난데없이 아내를 제압하고 케이블 타이로 묶는다. 이제 개발자는 묻는다. 당신의 선택은.
 

12분 동안의 마법
스포일러다. 주인공은 죽는다. 시작부터 죽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경찰이란 작자가 갑자기 들이닥쳐 일단 죽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죽고 나니 처음부터다. 답을 찾기 전까지는 주인공은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이제 머릿속이 복잡하다.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내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경찰은 대체 왜 우리를 죽이는 것일까. 임신 상태인 아내가 가진 아이에 대한 걱정이 물밀듯 밀려온다. 몇 번 더 죽고 나면 의심은 확장된다. 저 살인마는 경찰이 맞는가. 아내가 진짜 범인은 아닌가. 어쩌면 내가 범인인가. 그것도 아니면 어떤 실험인가. 개발자는 단 몇 분 만에 유저들의 머릿속을 헤집는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해결할 단서는 어디에 있을까. 남은 시간은 12분. 그 사이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다시 처음부터 이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작은 방안에서 펼쳐지는 심리극
▲ 작은 방안에서 펼쳐지는 심리극

해결책을 찾기 위한 여정
게임은 포인트 & 클릭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면을 보고 맵 상에 주어진 오브젝트들을 최대한 많이 발견하고, 이를 활용해 단서를 찾고 풀어 나가야 한다. 우선 경찰에 신고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낭패다. 15분 뒤에야 경찰이 도착한다고 한다. 당장 몇 초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버틸 수 있을까. 아내를 설득해 문을 잠그고 옷장에 숨어 본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실패다. 이어 경찰과 싸워 보기로 한다. 주방에서 칼을 들고 경찰이 들이닥치는 타이밍을 노려 뒤를 찔러 본다. 역시 또 실패다. 해결책은 다른곳에 있는 것 같다. 아내와 대화를 통해 단서를 찾아보기도 하고, 범인을 설득해 보기도 한다. 어르고 달래고, 화까지 내보지만 별다른 답은 없다. 다행히 주인공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온갖 상황들을 추리해보고, 테스트해 보면서 몇 번이나 시간을 반복해 보낼 수 있다.
그렇게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순간 이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남은 것은 선택의 시간. 각자가 상상하는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게임은 계속된다.
 

경찰이 난입해 가족을 죽인다면
▲ 경찰이 난입해 가족을 죽인다면

선택의 무게
게임 12분(트웰브 미니츠)는 포르투갈 출신 인디 개발자 루이스 안토니오가 작업한 게임이다. 이 개발자는 락스타 게임즈, 유비소프트 캐나다를 거쳤다. 그래픽 아티스트이자 게임 디렉터로서 명성을 쌓다가 기업을 떠나, 동료와 함께 인디게임 개발사를 설립했다. 그렇게 개발자는 ‘더 위트니스’나 ‘왓 리메인스 오브 에디스 핀치’와 같은 작품들을 공개해 극찬을 받았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의 감정에 중점을 두고 이를 선택하는 단계를 게임에 담는다. 일례로 잔혹한 사건에 슬퍼하며, 이에 분노한다. 종래에는 이를 수용하고, 극복하기 위한 단계를 기법으로 활용한다. 개발자는 각각의 선택을 모두 존중하며, 그에 따른 스토리들을 세심하게 배분하면서 유저들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다.
‘12분’에서도 그의 스타일은 고스란히 묻어난다. 행동 하나하나가 무겁고, 대사 하나하나가 무겁다. 모든 선택은 신중할 수밖에 없으며, 유저들은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시간’을 무기로 빚어내는 심리적 함정이 압권이다. 모든 것을 의심해 봐야 한다. 게임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사라지지만, 나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과연 시간은 진짜 거꾸로 갈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어쩌면 회피일 뿐, 모든 것을 치유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행복한 시간과 잔혹한 현실속 괴리
▲ 행복한 시간과 잔혹한 현실속 괴리

완벽을 향한 예술가의 고뇌
‘12분’은 이 개발자가 10년 동안 스토리를 고민해 빚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개발한 게임들 중에서도 가장 짜임새가 돋보이는 구성과 연출력으로 무장한다. 게임상에서 보여주는 대사와 동선, 심리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를 연기해 줄 인물들로 ‘어톤먼트’,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등장해 스타덤에 오른 영화배우 제임스 맥어보이가 주인공에, 영화 ‘스타워즈’시리즈를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는 연기력을 선보이는 데이지 리들리가 여주인공 역을 연기해 몰입감을 잡았다. 이들이 내뱉는 대사 라인과 감정선은 결코 돈이 아깝지 않은 퀄리티를 선사한다.
집 안에 불을 다 끄고, 헤드폰을 끼고, 자정에 게임을 한번 시작해 보자. 엔딩을 볼 때쯤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커피 한잔한다면 완벽한 마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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