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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디자이너는 ‘왜’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 정리=김상현 기자 aaa@khplus.kr
  • 입력 2022.03.28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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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고민하지 않고 하는 일들이 있다. 많은 경우 이런 일들은 관례, 의례, 관성, 습관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보통 이런 관례, 습관 같은 것들은 절차 혹은 규정 등이 정해져 있으며, 우리는 이런 규칙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규칙은 고민을 단순화하고, 뇌를 편하게 해준다. 뇌과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뇌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무척 게으르다고 한다. 우리가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뇌에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이런 정보를 모두 수용해서 처리하면 반응 속도가 너무 느려진다. 컴퓨터에 한꺼번에 많은 명령을 실행시키면 느려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뇌는 들어오는 정보를 스스로 선별해 인식한다. 알아서 일을 줄여서 하는 현명한 게으름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예전에 TV에서 보여준 실험을 기억할 것이다. 해당 실험은 농구 선수들 사이에 공을 몇 번 패스하는지 숫자를 세도록 한 다음 패스하는 영상을 틀어주고, 끝난 후 몇 번 패스했는지 물어보는 실험이다. 대부분 패스한 숫자는 정확하게 세어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화면 가운데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이 지나갔지만,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이 지나간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는 뇌가 정보를 필요에 맞춰 골라서 처리한다는 증거이다. 앞서 언급한 관례, 관습 등의 규칙들을 우리가 편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뇌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줄여줘 쉽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이와 다르다. 끝없이 뇌를 괴롭히는 과정이다. 반복해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관례 혹은 익숙함이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기존의 것을 모방하게 된다. 한 부분에 생각이 매몰되어 전체를 살펴보지 못하거나, 자신의 창작물만 집중해 다른 이에게 어색한 부분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창작자의 뇌가 어색한 부분을 익숙하게 느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게임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와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경우는 특정한 한 부분에 빠져서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거나, 자신의 익숙함에 빠져 전체적인 난이도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혹은 게임은 어려워야 한다는 자신의 강박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도 많이 본다. 게임을 디자인하는 사람은 자신의 뇌를 부지런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말 지금 디자인하는 부분이 필요한 것인지 혹은 단순한 나의 취향이나 습관, 익숙함에서 오는 결과물은 아닌지 끝없이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익숙해진 화면 구성이나 설계를 생각 없이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어느새 어디서 본 듯 한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물론 고민의 결과물이 기존의 것과 유사할 수 있다. 그러나 고민 없이 만들어진 결과물은 필요에 맞춰 개선할 수 없다. 

게임은 디자이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하는 게이머룰 위한 것이다. 게임에서는 게이머가 주인공이어야 하며, 디자이너는 게이머에게 어떤 게임을 제공하는지로 나타난다.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 더 좋은 게임을 제공하기 위해 좋은 선택인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선택 장애를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게임을 디자인하기 위한 디자이너의 고민을 반영한 선택 장애는 때때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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