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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탠리 패러블:울트라 디럭스’ 발매 … 이제 누가 스탠리지?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2.04.29 14:15
  • 수정 2022.04.3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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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2006)’은 해롤드 크릭의 이야기를 다룬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을 영화로 써 내려 간다. 나레이터가 해롤드의 삶을 설명하고, 설명은 그대로 이뤄 진다. 어느 순간 시점이 변하면서 이번엔 소설가가 나온다. 인생 최고 역작을 써내려가는 소설가. 이 소설가가 써내려 가는 소설 속 주인공 이름도 해롤드 크릭이다. 그렇다. 해롤드 크릭은 소설 속 등장인물이자 실존 인물이다. 소설가가 써내려가는 그대로 해롤드 크릭은 삶을 살게 된다.

두 사람의 삶을 비춰주던 어느 순간, 소설가는 소설을 끝맺기 위해 해롤드 크릭을 죽이려 한다. 터무니 없이 지루하고 평범한 사람의 가장 평범한 죽음. 소설가의 의도는 명확했다. 어느 날, 해롤드 크릭이 소설가를 찾아 오면서 영화는 기가막힌 방식으로 변한다. 소설가는 여전히 해롤드 크릭을 죽여야 한다. 완벽한 엔딩은 그것밖에 없다. 희대의 걸작으로 남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것이 영화 속 소설이 됐든, 영화 밖 실제 영화에 대한 평론이 됐든, 영화 안 소설가가 됐든, 영화 밖 각본가가 됐든. 작품이 걸작으로 향할 엔딩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를 직접 보면 알일이다. 

사진 출처=스팀
사진 출처=스팀

게임 ‘더 스탠리 패러블:울트라 디럭스’는 인간 ‘스탠리’의 삶을 다룬다. 역시 나레이터가 스탠리라는 인물을 알린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스탠리는 누군가 불러주는 내용에 맞춰 화면에 자판을 누르는 일을 한다. 살짝 지루했지만 행복한 인간이란 설명이다. 그런데 어느 날 더 이상 자판을 누르라는 명령이 도착하지 않는다. 어쩔줄 몰라하던 스탠리는 평생 한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한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선택한다.

영화와 달리 게임은 직접 움직여야 한다. 이 점에서 게이머는 곧 스탠리다. 모두 자유다. 스탠리처럼 그저 다시 의자에 앉아 버튼을 누를수도 있다. 아니면 게이머답게 온 방을 뒤지면서 난장판을 피울 수도 있다. 나레이터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따라 갈 수도, 아니면 나레이터의 말을 정 반대로 무시하고 다닐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끝은 존재하며, 끝나면 스탠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그 다음에는 또 새로운 진행이 기다린다.

사진 출처=스팀
사진 출처=스팀

게임상에 존재하는 대부분 요소들은 곧 단서가 되며, 단서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여는 복선이 된다. 스탠리가 일하는 장소의 비밀은 무엇일까. 스탠리는 또 무엇일까. 다양한 가설 속에서 유저는 활동하게 된다.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 그렇듯 게임 ‘더 스탠리 패러블’역시 언젠가는 끝을 맺어야 한다. 두 장르가 가진 공통점 중 하나다. 다만 정해진 결말 하나를 제시할 수 있는 영화와 달리, 게임은 여러 결말을 제시할 수 있는 점이 차이점이다. 즉, 이 게임의 목표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엔딩을 보는 방식도 다양하다. 나레이션을 전혀 따르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도 엔딩에 도달한다.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엔딩에 도달한다. 모든 것을 선택해 봐도 엔딩에 도달한다. 아예 게임을 끄는 것도 엔딩이다. 어디까지가 게임이고 어디까지가 게임이 아닌가. 복잡한 질문 속에서 해답은 유저만의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엔딩 중에는 소위 진엔딩에 속하는 엔딩들이 보이기는 하나, 끝맺음이 명확하지 않다. 결국 엔딩을 끝내도 스탠리는 제자리에 앉는다. 

사진 출처=스팀
사진 출처=스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게임은 해석하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장르 특성상 스탠리는 곧 유저다. 유저가 게임을 시작하면 어찌됐든 스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끝이 날 때 까지는 일단 길을 가야 한다. 이를 돕는 역할은 나레이터가 수행한다. 게임상에서 나레이터가 설명역을 맡았지만 사실 게임 전반에 관여한다. 나레이터 명령을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혹은 전혀 보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모든 선택지가 어떤 방향으로든 게임과 상호작용을 한다. 어쩌면 게임 속 스탠리가 유저를 조작해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또 스탠리는 개발자일지도 모른다. 

개발자는 이 게임을 개발하면서 목적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보여 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반드시 주어진 선택을 따라가면서 즐겨야만 게임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엄밀히 말하면 선택의 자유를 부여했다고 하나 여전히 게임상에서 준비된 선택지에 답을 써 넣는 것과 같은 방식은 유지되므로 자가 당착이 존재한다. 

이들이 개발한 다른 게임을 보면 이 개발팀의 방향성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더 스탠리 패러블’의 게임 디자이너 윌리엄 퓨는 ‘어카운팅+’를 작업해 VR로 출시한다. ‘어카운팅+’역시 대단한 명작으로 VR게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게임이나 비교적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게임 속에서 주인공은 회계사다. 의자에 앉아 전화를 받는데, 역시 전화속 상사가 여러가지 일을 시킨다. 이어 가상현실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별의 별 해괴한 일을 겪는 내용들이 게임 속 근간이 된다. 

윌리엄 퓨가 두 게임에서 보여주는 핵심 코드는 블랙 유머다. 평범한 시각에서 한걸음 벗어나 삐뚤게 보는 코드가 게임 전반에 녹아 있다. 이를 유머와 위트를 동원해 B급개그로 승화하는 전략이 핵심이다. ‘더 스탠리 패러블’에 숨어 있는 코드들도 이와 비슷한 역발상과 그들만의 블랙 유머가 숨어 있는 개그 게임에 가깝다. 일종의 영국식 개그 코드로, 우리 정서로는 도저히 개그로 보이지 않는 점이 함정이다. 

그가 게임에서 전개하는 플롯은 분명히 스탠딩 코미디의 개그 전략이나, 과거 몬티 파이튼 시리즈로 대변되는 개그 코드와 유사한면이 있다. 평범한 장면들로 세팅을 하면서 진행하다가 기괴한 설정으로 뒤틀고, 가벼운 조크 한방. 이어 때로는 충격적이고 역겨운 장면들을 내보내고 2번 째 커브로 돌입한 다음 평범한 장면으로 분위기를 다잡는다. 다시 뒤틀어서 분위기를 만들다가 카운터 펀치 한방으로 웃음을 터트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짧은 스토리를 반복하면서 몰입감을 형성하고 코드를 내비추는 방식이 이들의 핵심 코드다. 이 같은 공식에 근간한 게임은 몰입감과 함께 참신함을 사로 잡는다. 게임 작법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인 작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출처=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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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 워든은 좀 더 진지한 개발자에 가깝다. 그가 출시한 게임 ‘더 비기너즈 가이드’는 웃음기를 쫙 뺀 철학 게임에 가깝다. 가상의 개발자가 개발한 게임을 모티브로 삼아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는데, 처음 인디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을 위한 게임이었다는 평가다.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따라가면서 삶을 간접 체험해보는 요소들이 게임의 근간이다. 다만 이 게임에는 한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재미가 없다. 지루하게 전개되는 대신 삶의 교훈을 얻는 게임이란 평가다. 

두 사람을 종합해보면 게임에서 철학 담당은 데이비 워든, 재미 담당은 윌리엄 퓨다. 두 사람이 비로소 힘을 합쳤을 때 무언가가 탄생한다는 소리다. ‘더 스탠리 패러블:울트라 디럭스’에서는 두 사람의 합이 다시 살아난다. 기존 버전이 개발자의 장난스러운 개그물이 핵심이 됐다면 이번에는 데이비 워든식 철학이 좀 더 핵심 요소에 가깝다.

사진 출처=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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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퓨의 손길이 묻어나는 장면은 시작하면서 부터다. 사무실에 난데 없이 양동이가 하나 놓여져 있는데, 정체모를 물건을 어디다 써야 하는지 부터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 고민을 하는 것 부터가 윌리엄 퓨식 개그의 시작이다. 윌리엄 퓨는 이번에도 게임 전반에서 활약하며 색채를 더한다. 안타깝게도 이 개발자는 누가 옆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끝까지 폭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이 개발자의 폭주를 막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 워든의 손길이 묻어나는 장면도 게임 곳곳에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이 개발자 역시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끝까지 폭주해 게임이 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메시지에 파뭍혀 게임이 게임 처럼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도 특정 부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심각하게 대두되는 경향이 있다. 서로 완벽히 다른 두 사람이 양 방향으로 끝까지 내달리다 보니 그 사이에 내던져진 리뷰어는 중심을 잡기가 곤란하다. 이를 오직 ‘스탠리 패러블’이라는 이름 하나로 뭉개는 시도를 해버리는 점은 게임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영화 ‘스트레인저 댄 픽션’에서 각본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졌다. 설사 마지막이 영화나 각본 역사사에 길이 남는 내용이 아닐지라도 일단 책임을 지고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정면으로 받아 들였다. ‘스탠리 패러블’을 개발한 두 사람이 조금은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닐까. 

[경향게임스=안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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