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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소자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 소성렬
  • 입력 2004.10.2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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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답장을 써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그때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두고 그렇게 시간만을 허비했습니다. 얼마나 답장을 기다릴까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답장이 늦어 면목이 없습니다. 먼저 경향게임스를 사랑해주시니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는 것으로 답장을 시작합니다.

사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써도 되는지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공개적으로 답장이 가게되면 이름도 밝혀지게 되고 어느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지도 알려질까봐 걱정이 앞서기도 했고 또 원하지 않은 공개 답장일 때 님이 받는 충격을 감안해서 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 답장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님이 저희 경향게임스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편지로부터 확인하고 였습니다. 부디 원치 않았는데도 제가 임의로 공개 편지를 썼다면 그건 전적으로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입니다.

님이 저에게 편지를 보낸 건 지난 9월 23일이었습니다. 님의 편지는 '추석 한가위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시간에도 인터넷 보다 한발 앞서 독자들에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게임계의 동향을 전달하고자 맡은바 최선을 다하고 계실 편집국장님의 귀중한 시간을 뺐게되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 됩니다.

그러고 보니 님에게 편지를 받은지 한달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사실 제가 편지를 받은 건 추석 연휴를 마치고 회사에 출근해서 였습니다. 님의 편지가 제 책상위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무슨 편지일까. 조심스럽게 편지를 개봉했습니다. 카네이션이 그려진 편지지위에 또박 또박 볼펜에 힘을 들여 쓴 편지를 보고 저는 가슴뭉클함을 느꼈습니다. 경향게임스 편집국장으로 있는 제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님의 편지는 계속 됐습니다. '생면부지 알지도 못하는 편집국장님께 이렇게 연락을 드린건 다름이 아니오라 한가지 부탁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님은 부탁의 말을 하기전 먼저 자기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이름은 누구누구이고 올해 28살이며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님이 PC정비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이야기부터 카드대란과 작은형의 사업 실패의 여파로 잘못된 길을 접어들었고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금전적 손실과 지울 수 없는 상처만을 준채 진주 교도소에 수감돼 지난 죄를 깊이 뉘우치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제가 느낀 건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님은 제 2의 인생으로 게임기획자를 꿈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앤드류톨링스와 어니스트 아담스의 '게임 기획 개론'을 읽으며 게임 기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하고 월간 게임 잡지를 통해 게임계의 변화와 추세를 알아보고자 했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님은 그러던 차에 경향게임스를 우연히 접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편지는 계속 됐습니다. '경향게임스는 주간지라는 점이 특색 있고 다양하고 알찬 정보가 많아 구입하려고 했지만 교도소에서 거래하는 서점에 없어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게임 기획자라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경향게임스 구독을 포기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있는 곳이 외부와 격리돼 있기 때문에 결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현금이 아닌 우표(6회분 280원 짜리 60장)를 동봉하오니 정기구독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저는 회사 경영진과 편지를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를 했습니다. 저희는 신문을 보내주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부디 님이 원하는 게임 기획자가 되어 행복하게 제2의 인생을 살길 기원합니다. 이제 곧 겨울입니다. 몸 건강히 출감하시길 또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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