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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콤과 메이플스토리

  • 김동욱 편집국장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7.08.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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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리히터 지진계 7.2 강도의 강진이 고베(神戶)를 강타했다. 고베는 천만명 가까운 인구와 산업 시설이 잘 정비된 일본의 손꼽히는 대도시. 그러나 단 20분간의 지진으로 5천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재민의 수만도 30만명이 넘었다. 이쯤에서 지진과 게임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고베 대지진과 게임은 분명 관련이 있었다. 같은 해 1월 20일자 아사히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고베 대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틈에서 57시간만에 구조된 10살짜리 소년에게 구조대원이 물었다. “너 지금 뭘 하고 싶니?” 그러자 소년은 “패미콤이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잠을 자고 싶다거나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리적인 욕구가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의해 지배된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오갔던 57시간동안 소년을 버티게 해준 삶의 ‘희망’. 그것이 바로 게임이었다.

졸지에 집을 잃고 당장 먹을 물과 음식마저도 절대 부족했던 30여만명의 이재민들에게 각지로부터 의료, 식료품 등의 구호 물품이 속속 도착했다. 그 중엔 우리로써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게임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닌텐도가 당시 잘 팔리던 휴대형 게임기 ‘게임보이’ 5천대를 선뜻 구호품으로 보냈다. 내일의 희망을 찾기도 어려웠던 대피소 생활 속에서도 게임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했던 사람들이 그 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게임은 이미 10년 전부터 단순한 취미의 영역을 넘어 생활의 필수 수단이자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일화이다.

10년 후의 우리나라를 돌아보자. 2006년 대한민국의 여름. 전국에 몰아친 ‘바다이야기’의 광풍은 수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와 게임장 산업의 붕괴, 그리고 30만명이 넘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등 게임을 ‘절망’의 대명사로 낙인 찍고 있다.

두 나라의 상반된 사례는 다소 억지스러운 비교일수도 있다. 그러나 10년 넘게 차근차근 쌓아온 한국 게임산업의 탑이 바다이야기의 거친 파도 앞에 모래성처럼 일거에 무너져 내린 느낌이라서 여간 개운치 않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정·관계 관련자들이 검찰에 무수히 소환됐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

두들겨 맞은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정작 때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황당한 사건처럼  바다이야기는 우리 게임산업에 쓰라린 상처만을 남겼다. 더욱이 가슴 아픈 것은 일반인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다이야기로 인해 크게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게임회사에 다닌다는 것조차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정도가 됐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그러나, 낙담하기엔 아직 이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게임은 이미 미래의 대한민국을 책임질 차세대 스트라이커가 아닌가?

득점력 있는 스트라이커에게는 센스있게 볼을 공급해주는 날카로운 미드필더가 필요하다. 골대를 향해 무모한 돌진을 할 때는 적절한 템포로 조절해주고, 상대 수비의 빈 공간이 보이면 어김없이 볼을 찔러주는 역할 말이다. 어찌 보면, 이는 모든 산업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언론의 임무와 동일하다.

2001년 겨울 국내 최초의 타블로이드판 게임전문 주간 신문으로써 창간된 경향게임스는 그동안 업계와 생사고락을 같이 해왔다.

게임업계와 함께 숨가쁘게 달려온 6년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광활하게 펼쳐질 게임산업의 푸른 그라운드에서, 희망을 쏘는 영원한 미드필더가 되기를 자임한다.

혹여나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천재지변으로 수십시간 동안 건물에 갇혀있다가 구조된 소녀의 첫마디가 “메이플스토리가 하고 싶어요”라고 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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