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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관중의 주문

  • 윤아름 기자 imora@kyunghyang.com
  • 입력 2005.08.15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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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프로리그 전기리그가 결국 막을 내렸다. 프로 스포츠다운 스포츠를 만들기 위해 생겨난 통합리그라는 명칭으로 지난 30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첫 결승전을 ‘무사히’ 치러낸 것.
사실 필자는 ‘무사히’와 ‘성공적으로’ 사이에서 한참을 고심했다. 작년 각종 언론에서 10만 관중을 불러모았다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다시 그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인지 모두의 관심이 쏠렸었다. 과연 어떤 스포츠가 10만 관중을 그리 짧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e스포츠 인들이 가장 바라고 원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던 것이다.

올해 다시 광안리 해변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하루하루 7월 30일에 가까워질 수록 두근거리는 마음은 필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경기 전날 기상청의 날씨를 체크할 정도로, 인근 경찰서에 예상 피서 인파를 문의할 정도로 ‘10만 관중의 꿈’은 더욱더 커져갔다. 마침내 당일 날 아침,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푸른 바다, 무대를 주변으로 하나 둘, 아니 수십, 수백명의 인파가 시시각각 모여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 많은 관중들이 결승전을 보기 위해 뜨거운 뙤약볕이 쏟아지는 광안리 해변을 찾아왔단 말인가. 필자는 얼른 인근의 가장 높은 건물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줄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파 물결. 필자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는 도저히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10만 관중의 꿈’은 현실이었다. 관중석이 빼곡히 차들어가고 결승전 무대에 결전의 용사들이 올라오는 순간, 풍선 막대를 두들기는 e스포츠 팬들의 함성은 광안리 해변의 파도 소리보다 컸다. 하지만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리들. ‘10만 관중 맞아?’, ‘저 끝에 가면 빈 자리도 보이는데...’, ‘옆 줄에 서서 보는 사람들은 다리 아프겠다’ 등등 그 뿐만이 아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10만 관중이 맞다, 아니다’와 같은 여론이 들끓었던 것. 필자는 묻고 싶다. “광안리 해변에 매표소가 있었던가?” 만약 매표소가 있었다면 대략 몇 천, 아니 몇 만의 관중이 몰렸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이번 결승전에 정확히 몇 만의 인파가 몰렸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직접 광안리를 찾았던 e스포츠 팬들의 가슴 속에는 이미 ‘10만 관중’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 곰곰히 생각해보자. 10명의 관중이 모였더라도 10만 관중은 이미 마음 속에 들어와 있으므로 이보다 더 적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무사히’를 ‘성공적으로’ 바꿔보겠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통합리그의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물론 그와 같은 판단은 필자도 협회도 선수도 아닌 e스포츠 팬들의 몫이다.
자정이 넘어 경기가 마무리되고 우르르 집으로 돌아가는 팬들의 얼굴을 필자는 천천히 살펴봤다. 화가 난 얼굴이 있나, 우울한 얼굴이 보이나. 한참을 둘러봤지만 그런 얼굴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승리에 도취된 선수들의 얼굴처럼 붉게 상기된 팬들의 얼굴. 여름 더위에 익어버린 그들의 얼굴이지만 어디 더위만이 그들을 달아오르게 만들었을까.

‘10만 관중의 주문’을 외우고 ‘e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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