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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의 게임속으로] 지금 이곳엔 ‘감동’이 없다

  • 네오위즈게임즈 퍼블리싱소싱팀장 김성진 harang@neowiz.com
  • 입력 2008.05.0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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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개인적인 과거 얘기를 잠깐 들려 주도록 하겠다. 십여년 전 군대를 제대하고 며칠 동안 할 일없이 빈둥거리며 컴퓨터에 매달린 시기가 있었다. 당시엔 인터넷이 화려하게 발달되지 않아 주로 외국 사이트를 돌아 다니며 여러 정보와 각종 게임 이야기를 살펴 봐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화제의 작품 ‘둠 2’를 알게 됐고 곧바로 어둠의 경로로 파일을 입수해 인스톨했다. 컴퓨터가 거실에 있었던터라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심야 시간대를 이용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모두가 잠이 든 밤새도록, 창문 밖이 새벽을 맞이해 어스름하게 날이 밝아 오도록 ‘둠 2’를 플레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틀째 아침 무렵, 불사신 보스를 처단하면서 장대한 이야기의 끝을 볼 수 있었다. 엔딩이라고 해봐야 해석하기 힘든 영어 글자가 화면 위로 줄줄이 흘러 가는 것 뿐이었지만 그 때 받았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고 전사로서 투지를 불태우며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떠났던 여행의 종착지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요즘처럼 사진 같은 그래픽은 커녕 단일 색상의 그린 모니터와 조잡한 렌더링의 덩어리 캐릭터였으나 재미를 느끼는데 있어서 부족함은 없었고 그 감동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미약하기 그지 없는 내가 이룩한 성취감에 도취돼 몇 달을 자랑하고 다녔다. 물론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는 패키지가 완전히 무너지고 온라인 게임만이 드글거린다. 이들은 콘솔 못지 않은 자태를 뽐내며 유저들을 온갖 시스템으로 유혹한다. 실제로 재미가 적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감동이 없다는 점이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분출되는 감정이 형성되질 않는다. 굳이 찾는다면 다른 유저에 대한 분노 정도? 컨텐츠는 단순 소모품에 불과하고 일회용 놀이 기구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고 있다. 끝이 없는 온라인 게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순환 구조를 만들거나 유저끼리의 충돌을 야기시킬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감동은 없고 잔 재미만 나열돼 결국은 지루하고 나태한 플레이가 되고 만다.
감동을 주기 위한 방법은 온라인 게임에서도 끝을 만드는 것이다. 종착지가 있는 온라인 게임이라면 패키지와 동일한 감동을 여럿이 함께 공유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다. 어쩌면 끝이 존재하는 온라인 게임은 존재 가치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최소 2~3년은 서비스 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은 온라인 개발사와 제작사에게 땅 파서 장사하란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유저들도 금세 컨텐츠를 소비하고 이를 게시판을 통해 널리 퍼뜨릴 것이다. 정식 서비스를 시작도 하기 전에 ‘판매 종료’가 될 수도 있다. 떠나는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물량 공세가 필요하고 이는 제작비의 상승을 야기시킨다.
온라인 게임의 본질은 얼굴도 모르는 타인과의 대화와 관계이다. 외로운 도시인들이 고단하고 허망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도구이다. 온라인에서의 감동에 대한 고민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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