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차붐과 7龍

  • 편집국장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7.10.15 09:09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 한국 대표팀은 말레이지아를 맞아 시종일관 끌려 다니는 경기를 펼친 끝에 후반전까지 1대 5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밀리게 된다. 그 때, 한 선수가 상대편 골대까지 단독 드리블하는 원맨쇼를 보여준다. 후반 종료 5분을 남겨두고 4골의 소나기골을 퍼부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그 거짓말같은 연속골을 넣은 사람이 바로 차범근 선수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고, 외국인으로써 308경기 최다 출장 기록과 현지 리그에서만 98골의 득점을 올린 위대한 키커 차붐이었다. 독일 축구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마테우스도 현역 시절 차붐을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어쨌든 차범근 선수는 당시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고, 유일무이한 우리나라의 스타 플레이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축구는 혼자서만 잘 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아니다.

이쯤 되면, <경향게임스>가 축구 전문 매체로 바뀌었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가 나올 법하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한국 대표팀을 이끌던 외로운 스타플레이어 차범근 선수와 상위 몇개 회사가 분투하는 우리 온라인게임 업계의 모습이 의미심장하게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우리 업계를 축구팀에 대입해보면 엔씨소프트나 넥슨 등은 최전방 공격수로써 나름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마치 차범근 선수가 혼자서 소나기골을 몰아넣듯이 말이다. 그러나 스트라이커가 우리 진영부터 상대 골대까지 매번 단독 드리블로 치고나간다는 건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게임업계는 차선수가 활약했던 그때처럼 여전히 든든한 허리 역할이 되어주는 회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축구라는 협동 플레이 개념의 경기와 게임업계라는 경쟁 사회의 구조를 액면 그대로 대입하는 것에는 물론 무리가 따른다. 그렇지만, 세계 게임 시장이라는 강력한 상대에 대항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게임회사들도 각자의 포지션에 맞는 역할이 절실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보자. 최전방 공격수에 플랫폼 홀더인 닌텐도와 소니가 믿음직스럽게 버티고 있고, 조금 뒤처진 자리에 공격형 미드필더에 세가사미가 있다. 또 스트라이커에게 정확한 볼배급을 해주는 밀리언셀러 제조기 스퀘어에닉스, 반다이남코, 코나미가 있고, 후방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관록의 캡콤, 코에이 등이 포진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도대체 어떤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있을까. 이제 우리 게임업계도 제대로 된 포지셔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본지는 얼마 전 1면 톱기사로 향후 성장 가능성 높은 드래곤플라이, 티쓰리엔터테인먼트, JC엔터테인먼트, 엔트리브소프트, 엔도어즈,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엠게임 등을 ‘중견 7용(龍)’으로 언급한 바 있다. 물론 다소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선정이 됐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 업계의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뒤집는 새로운 전략들로 차근차근 각자의 포지션을 갖춰나가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온라인게임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흔들림 없는 전략으로 지켜나가며,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우리 업계는 언젠가부터 귀가 따갑도록 글로벌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스타급 공격수 몇명과 기량이 떨어지는 나머지 선수로 구성된 언밸런스한 종이호랑이 팀에 불과했다.

전세계를 호령하는 호랑이가 되느냐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하느냐는 앞으로 한국 게임업계가 세계 시장을 향해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여주느냐에 달려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게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서로간의 무의미한 경쟁보다는 견고한 협력 속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