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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셰프트 차일드후드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8.05.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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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경악케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고가 4월 16일로 꼭 1년이 지났다. 32명이나 되는 사망자와 2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더욱이 범인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겐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건 초기, 범인 조승희가 카운터스트라이크 등 FPS게임을 꽤 즐겼다고 보도되는 바람에, 총기 난사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게임’은 또 다시 뭇매를 맞아야만 했다. 미국의 저명인사들까지 나서서 게임을 규탄하는 발언을 사정없이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국내 게임회사들은 범인 ‘조승희’가 혹시나 자사의 게임을 즐겼던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에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미국 대다수의 보수 매체들은 범인 조승희는 게임 마니아가 틀림없다고 확정적으로 보도했으며, 일부 주정부에서는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물론 일각에서는 총 쏘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원론적으로 부정했지만, 게임과 폭력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근거를 댈 수 있는 목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저 의학적인 견지에서 범인의 정신병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근거 제시였다. 


그러나, 이후에 밝혀진 것은 이 사건과 게임과의 관련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 조승희가 카운터스트라이크를 플레이한 것은 4년 전인 고교시절이었고, 경찰이 그의 기숙사 방을 수색한 결과 비디오게임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조승희의 룸메이트도 “나는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조승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결정적인 증언을 했다.


당시엔 ‘모든 게 게임탓’이라는 여론이 너무 강하게 일었고, 이후에 밝혀진 게임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부분은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조승희 사건 이후, 일반인들은 그저 막연하게나마, 게임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킬 만큼 폭력적인 놀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강력하게 뒤집을 수 있는 연구조사는 매우 부족했던 게 사실이었다.


게임의 폭력적인 묘사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인가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 내용을 담은 ‘그랜드 셰프트 차일드후드’라는 책이 최근 미국에서 발간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게임이 폭력성을 조장한다는 지금까지의 통설을 뒤집는 내용이다. 


이 책은 하버드 메디컬스쿨에서 정신건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로렌스쿠트너와 체릴 올슨 박사가 저술했다. 그들은 수년 전부터 미국 법무성의 요청으로 게임과 젊은이의 폭력의 연관성을 조사해왔다. 이 조사는 1,250명의 어린이와 50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 였다.


그들은 최근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폭력적인 게임이 폭력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통설에 관해서 “우리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런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단지 분별력이 없는 미취학 아동의 게임 플레이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게임을 전혀 플레이 하지 않는 남성’이 폭력적인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조승희의 룸메이트가 “그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증언과 절묘하게 오버랩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게임은 남성의 사회적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고 있다’고도 분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통설을 뒤집는 게임에 관한 새로운 분석 결과에 관해서 북미의 게임업계는 ‘드디어 제대로 된 연구 분석이 나오고 있다’며 꽤 환영하고 있는 눈치다.


사회적인 파장을 몰고 오는 폭력 사건만 터지면, 그동안 왠지 모르게 움츠렸던 우리 게임업계도 가슴을 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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