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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빌선달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yunghyang.com
  • 입력 2008.07.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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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김선달은 대동강가 나루터에서 물을 길어다주는 물장수를 만났다. 그때, 그의 뇌리를 스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물장수를 주막으로 데려가 한잔 거나하게 대접하면서, 내일부터 물을 길러 올 때마다, 자기에게 엽전 한닢씩을 던져달라고 하면서 여러명의 물장수들에게 돈을 나눠줬다.
다음날부터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한푼씩 받기 시작한 김선달. 이 광경을 목격한 한양에서 온 상인들은 김선달을 주막으로 데리고 가 대동강물을 사겠다고 흥정을 벌이게 된다. 김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인 대동강물을 남에게 팔 수는 없다고 버티다가 끝내 수천냥을 받고 그들에게 대동강물을 팔아넘긴다. 


희대의 사기꾼이라 해야할 지, 기발한 아이디어맨이라 해야할 지, 어찌됐건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그 유명한 봉이 김선달의 일화다.
최근 우리 게임업계에 김선달도 혀를 내두를 만한 일이 벌어졌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의 아버지로 추앙받던 '빌로퍼'씨가 자신이 설립한 플래그쉽 스튜디오를 폐쇄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한국게임 시장의 산타클로스에서 졸지에 먹튀의 대명사로 추락하고 있는 듯하다. 한때, 세계 게임계를 뒤집을 만한 기대작으로 불리던 '헬게이트:런던'은 초반에만 반짝했을 뿐, 산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도 표류하고 있다. 형제보다도 더 우애가 깊어보였던 한빛소프트와 플래그쉽은 이혼서류를 앞에 둔 부부처럼, 냉랭해 보인다. 


2003년 빌로퍼가 블리자드에 사표를 내던지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가장 먼저 그를 반긴 것은 한빛소프트였다. 한빛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을 법하다. 빌로퍼의 회사로부터 제2의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가 줄줄이 쏟아져나올 거란 보랏빛 환상에 어느샌가 빠진 것이다.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한빛소프트의 과거의 영예를 되찾아줄 영웅으로 빌로퍼를 점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 시장에서만 자신이 만든 게임을 수백만장씩 팔아준 한빛은 빌로퍼에게도 든든한 응원군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한빛소프트가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낸 것은 누가봐도 인정할 만한 성공 게임들의 실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하나만 놓고봐도 우리나라에 1조1400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곰곰이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빌로퍼는 당초 게임개발자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심취해 대학에서도 성악을 전공했지만 전문 뮤지션을 꿈꾸며 중퇴하고 만다. 트럭운전을 하며 궁핍한 삶을 살아가던 빌로퍼는 우연히 게임회사의 아르바이트 음악 제작자로 입사하게 된다. 그러나 특유의 호기심과 낙천적인 성격으로 인화력을 발휘한 결과 1994년 블리자드의 정식 직원이 됐다. 그는 열정과 끈기로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고, 스타크래프트라는 '한국의 놀이문화'를 바꾼 걸출한 게임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여기까지만은 좋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헬게이트:런던'의 실패와 최근 그의 대응방식은 '김선달의 대동강물'처럼 의도된 바는 아니었겠지만,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태의 최선책은 서로 화해하고 역경을 이겨내 두 아이(헬게이트, 미소스)를 다시 잘 키우는 것이다. 굳이 이혼을 해야겠다면, 위자료를 주더라도 양육권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도저도 안된다면, 부모는 두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평생의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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