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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와 辛라면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09.10.0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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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선선해지고 있다. 한국인에게는 사시사철 가리지 않는 메뉴가 라면이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더 땡기는 게 라면일 것 같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예로부터 매운 맛에 길들여져온 한국인에겐 ‘신라면’의 선호도는 절대적이다. 지금까지 160여종이나 되는 라면 제품이 나왔지만, 신라면은 21년동안 1위를 굳건하게 지켜오고 있다. 얼큰함에 익숙한 우리들에겐 중독을 논할 정도로 인상적인 맛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과거엔 외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에게 고추장과 신라면 한 박스는 필수 휴대품에 들 정도였지만, 현재는 전세계 7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어 현지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1986년 시장에 처음 나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辛(신)’자와 ‘幸(행)’자를 구별하지 못해 “행라면 주세요”라고 하거나, 한자를 모르는 어린이들에겐 ‘푸라면’으로 통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지금까지 180억 봉지가 팔린 신라면은, 이를 쌓아올리면 에베레스트산을 18만번이나 왕복하는 어마어마한 수량을 자랑한단다.


국민 라면이라 불리우며 절대적인 맛을 자랑하던 신라면도 지난해 일어난 ‘바퀴벌레 신라면 논란’으로 지속적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리기도 했다. 20년간 지켜온 맛의 신뢰도가 한순간에 깨져버리는 듯했다. 그러나 제조 과정이 아닌 유통 보관 상의 문제인 것으로 밝혀져 자존심을 일부 회복했지만, 국민 라면의 이미지에는 큰 타격을 입었다.


적절한 비유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장수 식품 신라면과 오랫동안 게임 유저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정통MMORPG 장르는 많은 부분에서 닮아있는 듯 보인다.


유저들간의 역할 분담과 캐릭터의 성장, 즐거운 필드 사냥, 대규모 전투 등의 정통 요소는 신라면과 같은 깊은 맛을 게이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한번 MMORPG의 매력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장르의 게임들이 MMORPG에 정면 도전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1인칭 슈팅 게임 정도이다. 물론 이 마저도 몇몇 게임에 편중되어 있지만 말이다.  


리니지를 위시한 정통 MMORPG의 계보에 포함돼 있는 게임들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인기를 지속하고 있는 이유를 신라면의 얼큰한 맛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라면도 조금씩 맛을 바꿨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IMF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조금 더 매운 맛을 강조했고, 경기나 나아지면 조금 더 구수한 맛을 내도록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결국 MMORPG도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솔로잉을 강조하거나 집단 전투를 특화시키는 등 그때그때 트렌드 변화에 맞춰왔던 것이 장수의 한 요인이 된 셈이다.


신라면 만큼은 아니지만, 유사한 다른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정통MMORPG에서 파생된 유사 장르가 또 다른 게임 유저층에게 어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배가 고프면 반드시 신라면이 아닌 다른 종류의 라면도 먹기 마련이다. MMORPG는 게임 밥상에서 누구나 기본적으로 먹어야 하는 메뉴인 것이다. 그래서 MMORPG의 생명력은 신라면만큼이나 쭈욱 이어질 것 같다.


P.S 본문 중 자주 등장하는 특정 제품을 홍보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신라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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