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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의 실수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09.10.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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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게 생긴 외계인 E.T.가 전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던 1982년의 일이다. 당시 게임업계를 좌지우지하던 아타리를 인수한 ‘워너커뮤니케이션’은 자사의 게임기 ‘Atari2600’용으로 E.T.게임을 개발하기로 하고 라이센스 계약을 맺었다.


영화뿐 아니라 게임에도 조예가 깊었던 스티븐스필버그 감독은 “이 게임은 굳이 영화의 스토리에 얽메이지 말고, 팩맨풍의 액션 게임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발팀은 E.T.가 우주공간의 모선(母船)과 교신하기 위해 다양한 부품을 모으는 방식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개발을 고집했다. 


양측의 논쟁은 지리하게 계속됐고, 최대 매출이 기대되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불과 두달여 앞두게 됐다. 결국 개발팀의 의견대로 E.T. 어드벤처 게임으로의 개발이 확정됐다. 그리고 5주만에 이 게임은 뚝딱 완성됐다. 변변한 테스트도 없이 시장에 부랴부랴 출시된 E.T. 게임은 게이머들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해야만 했다. 400만개가 출하됐지만, 실제 팔린 양은 150만개에 불과했다.


나머지 250만개에 달하는 E.T.게임소프트의 재고는 뉴멕시코주의 사막 지대 산업폐기물장에 매립되고 두꺼운 콘크리트로 봉인됐다.


이 게임이 실패한 이유는 짧은 제작 기간의 날림 개발이 주요한 원인처럼 보이지만 원작의 스타일을 지나치게 고집했던 것 또한 큰 패인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라이센스 게임이 실패하는 이유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한정된 개발 예산에 있어서 라이센스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 있다. 실제 개발 비용보다 원작 라이센스 획득에 투여되는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2005년에 릴리스된 게임 매트릭스는 영화 1편이 대성공을 거둔 후 라이센스 비용만 4000억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영화 매트릭스의 두번째 시리즈가 실패하자, 그때까지 개발중이던 게임 매트릭스도 시장에 나와 기대 수익에 10%도 채우지 못하는 실패를 기록했다.


1999년에 발매된 닌텐도64용의 ‘슈퍼맨64’도 라이센스 게임의 대표적 실패작으로 유명하다. 슈퍼맨의 리얼함을 표현하기 위해 무리하게 3D그래픽을 채택했지만, 게임기 스펙의 한계에 부딪혔다. 그 결과 슈퍼맨은 게임 내에서 날지도 못하고 파워도 약해 쉽게 죽어버리는 일반인으로 전락했다. 라이센스 게임은 그래서 일반 게임보다 큰 리스크가 뒤따른다.


그렇다고, 라이센스 게임이 전부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원작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게임에 적합한 포인트를 찾는다면 이 보다 수월한 개발도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 좋은 예가 닌텐도64용으로 발대된 ‘골든아이007’이다. 원작의 제임스본드라면, 어딘가로 잠입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게임 상에서는 007의 액션 포인트인 총쏘기가 중심이 됐다. 결국 이 게임은 FPS의 재미를 콘솔 게이머들에게 널리 퍼뜨린 타이틀로 기억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명 원작을 가진 I.P를 라이센스한 게임 개발이 과거부터 성행해왔다. 돌이켜보면, 원작의 스토리나 설정을 그대로 답습한 타이틀들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 반면, 원작을 치밀하게 분석해 게이머들의 입맛에 맞는 포인트를 찾아 개발한 게임은 지금까지도 롱런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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