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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즈가 마리오를 누른 이유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10.02.2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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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샌프란시스코만(灣) 동부의 오클랜드힐즈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다. 미국의 다른 주거지역과는 달리 주택이 밀집돼 있었던 탓에 4,000채 가까운 집들이 한꺼번에 불타버린 참사였다. 그 전소된 집들 중 한 곳에 29살의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 청년은 화마에 의해 졸지에 집을 잃게 됐지만, 불 타버린 땅에 자신의 집을 다시 지었다. 방의 배치부터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는 모든 구상을 혼자서 해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던 그의 머릿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가상 공간에서 살면서 인생을 보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 청년이 바로 심(Sim)시리즈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윌라이트’다. 그가 고민했던 가상공간은 심시티였고, 당시에 참담했던 화재의 상처는 고스란히 그가 만든 게임에서 흥미롭게 재탄생됐다. 1993년에 발매된 ‘심시티2000’의 ‘천재지변 시나리오’는 윌라이트가 몸소 겪은 당시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었다. 또 자신의 집을 새로 지으며 떠오른 아이디어는 2000년대 최고의 블록버스터 시뮬레이션 게임 ‘더 심즈(The Sims)’로 탄생됐다. 


사람의 욕구와 행동을 시뮬레이트한다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이를 구체화할 만한 기술이 당시로서는 없었다. 때문에 심즈의 개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7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1997년 맥시스가 EA에 인수합병되면서 다시 한번 책상 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피인수된 맥시스는 당장 수익을 낼 게임이 필요했고, 그에 따라 ‘심시티3000’의 개발이 우선시됐다. 


윌라이트의 머리 속에 꽉 차 있던 그 기발한 아이디어는 함께 개발에 참여한 맥시스의 직원들 조차도 파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윌라이트는 자신이 품고 있는 아이디어를 별도의 문서로 정리해 두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가면서 주변 개발자들과 토론하며 개발을 진척시키는 방식을 고집했다.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우여곡절 끝에 개발이 시작된 심즈는 2000년 2월에 출시됐다. 자신의 새 집을 지으며 시작된 최초의 구상으로부터 거의 10년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심즈 시리즈는 첫 출시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1억 2,500만개나 팔렸다. 이 수치는 누적 판매량 2억개를 돌파한 마리오 시리즈보다는 못하지만, 10년간이라는 최단 기간동안 달성한 판매량이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또 다양한 플랫폼으로 발매된 마리오와 비교해 PC패키지가 메인이었던 심즈 시리즈의 존재감은 매우 큰 셈이다.


윌라이트 게임의 특징은 플레이어가 진행해야할 방향을 미리 정해두지 않는 것이다. 단지 플레이어에게 도구를 주고 모래밭 같은 게임 월드에서 제 맘대로 놀게 하는 속칭 ‘샌드박스형’ 게임을 지향했다. 예를 들면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카드나 점토, 나무 블록 등의 놀이 방법은 누구나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윌라이트는 자신의 작품을 개발자가 제시하는 놀이방법이 아닌 플레이어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도구로써 이미지 메이킹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오래 전부터 주창했던 플레이어 중심의 창의적 게임방식은 최근 업계의 패러다임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윌라이트는 능동적 발상에 의한 놀이는 오랫동안 즐겨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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