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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마케팅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an.kr
  • 입력 2010.05.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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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에는 드넓은 바다를 보며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오픈 형 테라스의 디그리(Degree)라는 음식점이 있다. 인근 바다에서 수시로 들어오는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별미인 곳으로 오클랜드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 때문에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의 일이다. 석양이 지고 주변이 점점 어두워질 무렵, 이 곳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한쪽 손에 붕대를 감고, 다른 손에는 어딘지 낡아 보이는 권총 같은 물건을 한 자루 쥐고 있었다.


하나 둘 전등이 켜지기 시작한 테라스에는 20여명의 손님들이 담소를 나누며 특선 해산물 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그 때였다. 사나이는 권총 같은 물건을 쳐들고 손님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큰 소동이 벌어졌고, 손님 중 한사람이 “저 녀석이 권총을 가지고 있다”고 황급히 외쳤다. 주방에서 이 소리를 들은 웨이터는 재빨리 경찰에 신고했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경찰관들이 이 음식점을 완전 포위했다.


포위됐다는 걸 눈치 챈 사나이는 경찰들이 총을 겨누며 천천히 다가오자, 의외로 큰 저항 없이 순순히 투항했다. 손님들은 조금 전까지 자신들을 위협하던 괴사나이의 무기력한 행동에 의아해했다.


사나이가 들고 있던 물건을 빼앗은 경찰관들은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사나이가 들고 있던 권총은 다름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든 장난감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사나이는 마케팅 회사에 고용된 단역배우로 뉴질랜드에서 막 발매된 잠입 액션 게임 ‘톰클랜시의 스프린터셀 : 컨빅션’의 프로모션을 위해 이 음식점에 와서 일부러 퍼포먼스를 했다는 것이었다.


마나코(Manaco)라는 회사는 스프린터셀을 발매한 유비아이소프트뿐 아니라, 카시오, 도시바 등 유명 IT회사와 세가같은 대형 게임회사와도 자주 거래하는 뉴질랜드 내에서 꽤 큰 마케팅 전문 기업이라고 한다.


겨우 20여명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게릴라 마케팅을 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범인 역할에 충실했던 단역배우와 마케팅 회사의 매니저는 체포되지도 않았고, 구두로 주의를 받는 정도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음식점 주인은 “권총으로 위협당한 손님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며, “그런 방식으로 게임을 홍보한다면, 오히려 그 게임에 반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공공 장소에서 사전 양해 없이 시도되는 이런 홍보 행위는 속칭 ‘게릴라 마케팅’이라 불리는 것으로 국내 게임 업계에서도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권총을 겨누는 행위는 어딘지 도가 지나쳐 보인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스프린터셀의 게릴라 마케팅에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 같다. 마케팅 회사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것을 각오하고, 단역 배우에게 아마도 인질극 수준까지 주문을 했을 테고, 그런 대치 국면이 오래 지속되면 분명 TV 방송국은 물론 기자들이 몰려들어 전국적인 화제가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 생각했을 법하다.


시장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짐에 따라, 제품의 마케팅 수법도 갈수록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게릴라 마케팅이 깜짝쇼 같은 콘셉트이긴 하지만, 결말은 좀 유쾌하게 마무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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