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잠 못 드는 아이들

  • 편집국장 김동욱 kim4g@khplus.kr
  • 입력 2011.12.01 10:06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에서 게임의 심의 등급을 정하는 기관이 바로 ESRB(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게임물등급위원회와 같은 곳으로 게임의 내용을 심사해 적합한 연령층을 판단하고, 대상 연령에 맞지 않는 어린이들을 게임으로부터 멀리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심의 기관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만큼, 이곳 또한 현지 업계의 비판을 꽤 듣는 모양이다. 얼마전 블로그 미디어 ‘디스트럭토이드’에 실린 조나단홈즈 기자의 칼럼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콘텐츠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의문을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과격한 말투나 폭력적인 액션, 성적(性的) 묘사 등이 열거되지만, 실제로 그 정도로 간단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홈즈 기자는 자신의 소년기를 회상했다. 어린 시절 즐겨봤던 만화 ‘톰과 제리’가 요즘 게임들보다 훨씬 나쁜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주인을 위해 그럴 듯한 저녁식사를 준비한 고양이 톰은 주인이 식탁에 앉으려 하자 의자를 확 빼버려 엉덩방아를 찧게하는 장면이 있다. 누구나 웃을 만한 내용이지만, 홈즈 기자는 당시 어머니에게 이 같은 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의 일은 만화처럼 껄껄 웃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고 큰 소동이 됐다고 밝혔다.


폭력적인 게임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그랜드셰프트오토3’가 2001년에 발매되고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 게임은 당시 사회적 문제로 비화돼 10년 후에는 사회 질서가 붕괴될 것이라는 극단적 우려도 나왔다. 그러나 대상 연령층이 아님에도 편법으로 이 게임을 즐겼던 많은 어린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지금, 게임 때문에 기존의 질서가 망가질 만큼의 현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범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그는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콘텐츠라는 것을 ‘ESRB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라며 명확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게임 내에서의 과격한 폭력 묘사는 이런 행동을 하게 되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 충격적인 표현을 차단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행위 자체의 위험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홈즈 기자는 강조했다.


물론 그의 의견에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게임업계는 심의제도에 대한 보다 명확한 논의와 검증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며칠 전부터 시행된 국내 셧다운제에도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망국적인 규제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업계의 혼란은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에는 1945년부터 무려 37년 동안 야간통행금지라는 웃지 못할 규제 조치가 있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대에 횡행하는 범죄를 줄이는 등의 순기능도 다소 있었지만, 국민의 생활을 정부가 통제함으로써 많은 반발과 역기능을 유발했다. 그런 잘못된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유일한 해방구가 되고 있는 사이버 놀이 공간에서 말이다.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도 셧다운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이유로 시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되거나 방향이 바뀌었다. 그들도 이른바 풍선효과를 경험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12시가 넘어도 잠 못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 셧다운제를 피해 게임을 즐길 방법을 궁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