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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닭 꿈꾸는 겜병아리들의 만찬 엿보기

  • 안일범 기자 nant@kyunghyang.com
  • 입력 2007.02.0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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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의 중순 갓 게임업계에 뛰어든 청년들이 늦은 신년회를 가졌다. 게임업계의 특성상 각자 스케줄이 달라 만나기 힘든데다 초년생이니 그 어려움은 오죽했으랴. 하지만 틈나는 시간을 쪼개 각자 회포를 풀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아 각오를 다졌다. 그들의 웃지 못 할 뒷담화와 취업이야기를 들어봤다.

※ 본인들의 요청으로 실명을 밝히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지하철이 끊길 무렵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모처에 위치한 삼겹살집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4명의 사내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깎지 못해 거뭇거뭇한 수염에 두터운 자켓을 여미며 들어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을 시키곤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한주간의 피로가 밀려오는 것이다. 이날 모인 이들은 모두 격무에 시달리다가 오랜만의 휴식을 위해 자리에 들어섰다. 술 대신 피로회복제를 건배하는 것으로 자리를 시작했다.

■ 그들만의 이야기

- A씨: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 그저 꿈을 위해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게임만 대박나면 어깨 피고 당당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 위에 동시 접속자 몇 만명 이라고 달고 다닐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 B씨: 버그, 버그, 버그, 버그(실제로 수십 번 되뇌어 말했다) 그놈의 버그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 얼마 전에 30시간인가 잠을 못하고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작업을 열심히 하다가 피곤했는지 잠깐 졸았던 것 같았다. 눈을 뜨고 다시 일을 하려고 컴퓨터 화면을 봤는데 작업했던 것이 다 날아가 버린 게 아닌가! 그 좌절감은 누구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더욱 좌절하게 만드는 상황이 바로 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해 본 결과 깜빡 졸았던 게 아니라 2시간 동안 자고 있었던 것이고 그토록 열심히 작업 했던 상황은 바로 꿈이었던 것이다. 이제 잠드는 것이 두렵다.

- C씨: 개발팀과 무척 사이가 좋지 않다. 분명히 프로그래밍 상의 맹점이 보이는데, 수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탱자탱자 놀고만 있다. 유저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고 비난의 화살을 운영팀으로 돌리고 있는데 정작 운영팀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과 공지 밖에 없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중간에 치여서 답답할 따름이다. 가능한 환경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이 그저 일 끝나고 술 한잔 하는 것으로 시름을 달랜다.

- D씨: 사실 곧 런칭할 게임은 어린아이를 타겟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눈높이 전략을 쓰고 있다. 아이디도 유치하게 바꾸고 올리는 글도 어린 아이가 좋아할만한 주제를 선택하고 더욱 알기 쉽게 쓰고 있다. 주위에서 “너 참 유치하게 산다”고 말할 정도다. 이게 가장 힘들다. 속으로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도 참고 견뎌내면 분명히 해뜰날이 있을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다. 실업자가 30%에 달한다고 했다. 그 틈을 뚫고 취직에 성공한 것만 해도 어딘가

■ 어떻게 취직 했는가?

- A씨: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력서를 50군데는 넣은 것 같다. 국내 게임 업체는 대부분 내 원서를 받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뭘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대기업 위주로 원서 내기만을 반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자신 있었다. ‘나 같은 인재를 데려가는 업체가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현실을 깨닫게 됐다. 한군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이다. 그 좌절감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미래를 위해 한번 더 도전했다. ‘이 짓도 여러 번 하니 늘더라’ 쓰다 보니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씩 고쳐 나가기 시작했다. 한 30번쯤 원서를 넣다 보니 면접 제의도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면접에서도 많이 헤맸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면접을 보는가를 유심히 관찰해 잘못된 점을 고칠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은 이렇게 회사의 일원이 됐다.

- B씨: 그동안 만들어온 게임을 들고 회사를 여러 군데 찾아 다녔다. A씨처럼 이력서를 낼 필요도 없었고 그저 찾아가서 ‘제 게임 좀 봐주십시오’했을 뿐이다. 몇 군데서 좋은 대답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중 조건에 맞는 회사를 골라 취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게임을 많이 만든 게,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됐지만 회사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 C씨: 사실 GM을 할 생각은 많지 않았다. 게임을 만드는 개발팀에서 기획을 하고 싶었던 것이 원래 소망이다. 하지만 실력은 없고 제대로 만들어본 게임조차 없다. 그저 머릿속의 지식만으로는 게임 회사에 취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A씨처럼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아무 경력 없는 게임 기획자를 받아줄 리 만무하다. 그러다가 한 회사에서 기획자 대신에 GM을 해 볼 마음이 없느냐는 제의가 들어와서 수락하게 됐다. 그렇다고 일이 마음에 안드는 것은 아니다. 또한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이대로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다.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 D씨: 각종 웹사이트들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했다. 이번에 사이트를 담당하는 회사도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입사하게 됐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정직원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됐다. 사실 생계가 힘들어 처음 일을 하게 됐는데 우연한 기회에 취직까지 하게 돼 뭐라고 조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저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리는 것 같다.

■ 에필로그
한창 분위기가 무르 익는 가운데 갑자기 C씨의 핸드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 즉슨 “갑자기 서버가 다운돼 급히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C씨는 전화를 받은 뒤 궁시렁대며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잠시 뒤 D씨에게도 전화가 왔다. ‘분명 웹 서버가 다운됐을 것이다’라는 사람들의 추측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여자친구의 전화였다. D씨 또한 자리를 떴다. 그렇게 A씨와 B씨가 남았다. B씨는 “저 버그 다 잡았습니다”라며 “절대 출근할 일 없습니다”라고 호언장담했고 A씨는 “클로즈드 베타 아직 몇주 더 있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세 사내의 밤은 깊어가나 했는데, 마지막에 울린 전화는 A씨의 것도 B씨의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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