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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에게 아내를 빼앗기다!?

  • 안일범 기자 nant@kyunghyang.com
  • 입력 2007.04.2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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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같이 살았던 아내가 지난 2월 갑작스레 집을 떠났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를 플레이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 집을 나간 이유였다. 갑작스레 아내를 잃은 맘이야 오죽했으랴. 사방팔방으로 수소문 해봤으나 아직까지 아내를 찾을 수 없었다. 별의 별 곳을 다 찾아 헤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랑했기에 더욱 절실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몸마저 다쳐 자리를 펴고 눕고 말았다. 결국 나는 게임 보다 못한 인간이란 말인가……. 오늘도 아내를 찾아 나선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비마저 내리는 지난 4월 10일, 수원의 한 다방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핏기 없는 얼굴에 초췌한 모습이 그의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한달만에 처음 집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폐인인거죠” 그는 아내를 찾는 도중에 몸을 다쳐 요양하는 중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털고자 ‘WoW’이야기로 말문을 텄다. “한때는 메디브 서버에서 1·2위를 다투던 실력자였습니다. 오픈베타 시절부터 ‘WoW’를 해왔고 누구보다 게임을 잘 안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최고 사령관’직위 직전에서 게임을 그만뒀다고 한다. ‘WoW’에 대해 이야기하며 추억을 떠올리는 그는 올해 37세인 평범한 게이머였다.
“‘뮤’시절부터 게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를 만나 같이 살게 됐습니다. 게임방도 하고 여타 사업도 잘돼 아내와 즐겁게 게임을 하고 지냈습니다. ‘뮤’가 지겨워지자 게임을 하는 동생들과 ‘WoW’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내도 같이 게임을 옮기게 됐습니다.” 허나 그는 이것이 큰 화를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에는 정말 즐겁게 같이 즐겼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레이드’를 시작했습니다. 중독성이 심한 컨텐츠인 것을 알고 있어서 레이드팀에 드는 것을 반대했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결코 중독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팀에 드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아내는 자제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일이 끝나면 오후 5~6시인데 그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던 거죠. 아내는 일이 없는 날에는 밤을 세우고 집에 들어오기 까지 했습니다. 새벽 1시까지도 PC방에 있을 정도니까요.”
상황이 심각해지자 그는 아내에게 오후 5시까지만 게임을 할 것을 권했다. 아내도 이에 동의해 자제하는 듯한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3일을 넘기지 못했다. 아내는 일을 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PC방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에 화난 남편은 자제력을 잃고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여자인데 때린다고 해도 얼마나 때렸겠습니까. 그래도 그게 마음에는 큰 상처였던거죠. 정말 죽도록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사과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갔고, 남편은 PC방을 모두 뒤지며 20일 만에 아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시는 손찌검 안하겠다고 각서를 썼습니다. 아내도 ‘WoW’를 5시까지만 하겠다고 각서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달에 아내가 스스로 더 이상 ‘WoW’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서 캐릭터를 삭제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은 평화를 되찾았고 한동안 행복한 나날이 지속됐다. 허나 이 또한 길게 가지 못했다.
“갑자기 동생을 만나러간다, 친구만나러 간다, 결혼식 간다 라면서 아내가 외출이 잦아졌습니다. 어떤 날은 밤을 새고 아침에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너무 잦은 외출이 이상해 아내가 외출한 후 ‘WoW’에 접속해 아내 캐릭터를 찾았더니 역시나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캐릭터를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계정을 팔려고 잠깐 접속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거짓말을 정말 싫어하는 성격이라 자제력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결코 손찌검 한 것은 아닙니다” 그날 이후 아내는 옷가지를 챙겨들고 집을 나갔다. 남편은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아내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수소문 했으나 결코 찾아낼 수 없었다. “게임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자제력을 잃었습니다. 결국 약을 먹고 손목마저 그었습니다, 어떻게 살기는 했는데, 그러고 보니 또 (아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헤메고 있습니다” 그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여기서 끝이 났다. 허나 아내를 찾는 것은 이제 시작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아내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동생의 부추김에 못 이겨 나쁜길로 들어섰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지인들을 통해 그 곳에서 본 적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찾아가봤는데, 15일만 일하고 그만뒀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허나 최근에도 아내가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봤다는 이가 있습니다. 심증만 있는 셈이죠.” 그토록 아내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저 때문에 나쁜 곳으로 빠져든 것 같아 죄책감이 큽니다. 마음같아서는 같이 살고 싶지만 아내가 원하지 않는다면야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는 차후 문제고 우선 아내를 만나고 싶습니다. 아내가 저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보증 잘못 서서 잘나가던 사업 말아먹는 바람에 돈도 못 벌어다 주고…. 집착인가도 생각해 봤습니다. 많이 고민했지만 결론은 우선 아내를 만나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미친듯이 헤메고 있습니다.”
그는 아내 걱정을 한보따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마음대로 게임하고 실컷 잘 수 있겠지만 인생살이가 어디 그렇겠습니까. 돈 떨어지고 힘 떨어지면 누가 보살펴 주겠습니까. 일단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못해줬던 것 다 해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는 조금은 홀가분한 듯 보였다. 아내 찾으면 술 한잔 거하게 대접하겠다는 그의 인사를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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