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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 '가을의 전설'「프로게이머」

  • 지봉철
  • 입력 2003.09.2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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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혜성같이 등장해 임요환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 ‘가을의 전설’로 떠오른 ‘물량토스’ 박정석은 결혼한 누나(26)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형(23)에 이어 삼남매중 막내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박정석은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못해 같은 또래의 친구들보다 부족한 것도 많고 하고싶은 것도 마음대로 하며 자라지 못했다고 어린시절을 추억한다.

“게임을 한다는 게 사치였지요.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 애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죠. 게임을 원없이 해보고 싶었던게 꿈이었어요. 결국은 이렇게 됐지만 말입니다.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접한 건 중3때에요. 형이 혼자하기 지루하다고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 준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이유가 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그는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한다. 가정사정으로 인해 PC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고 속이고 학교를 거의 포기하디시피하고 게임에 열중한 것.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부득이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게임방에 취직했으니 취업을 허락해 달라고 담임선생님을 속였다.

그때부터 마음놓고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방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실력을 쌓았다. 이렇게 박정석은 프로게이머로 첫 발을 내딛게 됐다.

현재 한빛스타즈 감독인 이재균 감독을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에서 첫 번째로 찾아온 행운. 이 감독의 권유로 프로게이머의 길을 갈 결심을 하게 된 그는 곧장 짐을 싸 서울로 상경했다. 직업으로서 프로게이머의 길을 가는 것이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거의 학교를 안나가다시피 했습니다. 한달에 15일은 결석이었죠.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자연히 대학도 못 갈텐데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유일한 낙이 바로 ‘스타크래프트’였습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엔 PC방에서 하루종일 스타를 즐겼습니다. 프로게이머가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죠. 그러나 지금 이렇게 프로게이머가 됐고 꿈은 이뤘지만 지금도 학교생활을 제대로 지내지 못한게 가끔 후회가 됩니다.”||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프로게이머가 됐지만 그 후로도 그는 어려운 생활을 겪었다. 부모님들의 눈물나는 만류도 있었다. 수입이 일정치 못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밥 구경은 둘째 치고 우승을 한 후에도 상금을 받지 못해 라면을 삼켜야 했던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련이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황제의 자리에 있던 임요환을 꺾으며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을 이끈것도 이러한 시련을 견뎌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임요환을 반드시 꺾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정신력이 그를 우승으로 이끈 것이다.

“반드시 임요환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평생 그저 그런 선수로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니 오기가 생기고 승부욕이 생기더라구요. 경기에 집중한 것이 우승을 차지한 힘이 됐습니다.”

승승장구하던 박정석에게 다시 과거의 불운이 닥쳤다. 지난 8월 27일 막내인 박정석을 많이 이뻐하시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가족들은 일부러 경기에 영향을 줄 것을 감안, 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식을 알리지 않았지만 결국 박정석은 패했다.

프로게이머를 시작하면서 집을 떠나온 이후 할머니를 거의 못 뵈었기 때문에 아픈 마음이 더했다. 우승컵을 들고 집으로 내려가겠다던 생각은 이내 곧 후회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한번 더 못뵌 것이 가슴에 남았다.

박정석에게 이번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그래서 특별하다. 특히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은 부산 야외무대에서 8강전이 열린다. 부산은 그의 고향이다. 그는 돌아가신 할머니에겐 우승컵을, 부산팬들에겐 희망을 주기 위해 마우스를 잡았다.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 마지막 임종도 보지못해 가슴이 아픕니다. 우승컵을 안고 부산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할머니도 하늘나라에서 제가 더 잘되기를 바라실 거에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 반드시 할머니에게 우승컵을 바칠겁니다”||박정석이 프로게이머로 유명해지면서 어려웠던 집안도 많이 화목해졌다.

이전에는 불화가 끊이지 않을 만큼 힘든 생활을 했지만 박정석이 벌어다 준 대회 상금이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현재는 경제적으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달 본인이 쓰는 돈은 고작 해봐야 같은 또래의 대학생 용돈 수준.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이나 상금은 적금과 집안의 생활비로 모두 쓰여지고 있다.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행복한 거죠. 저로 인해서 가정이 화목해진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요새 게임중독이다 부작용이다 말들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게임은 힘들 때마다 저를 견디게 해줬고 지금은 가정을 화목하게 해주고 있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불운을 항상 행운으로 만들었던 박정석에게 이번 가을도 역시 전설의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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