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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패트리] "내 이상형은 전지현···연예계로 진출하고 싶다"

  • 김수연
  • 입력 2003.01.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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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전사’ 프로게이머 기욤패트리를 만날 때마다 놀라는 건 바로, 나날이 늘어가는 그의 한국어 실력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유창해지는 그의 한국어 실력은 이제 매니저인 데니얼 씨의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다.

만 3년 간의 생활동안 한국문화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알아가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그 동안 한국 문화를 알아가기 위한 기욤패트리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어학당을 다니고 개인교습까지 받아가며 한국어를 배웠다.

닭갈비, 돼지갈비, 매운 닭찜을 좋아하고 한국의 김치 맛을 제대로 아는 기욤패트리는 이제 반쪽의 한국인이 되어가고 있다. ||“저의 가족은 부모님과 3살 위의 형이 전부죠. 형은 저하고는 정 반대의 성격입니다. 저보다 덩치나 키도 작은 편이고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버지는 아주 평범한 분이세요, 가족에게 충실하고,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시죠. 특히 집에서 TV 보시는걸 아주 좋아하세요. 어머닌 요리를 즐기시고요.”

기욤의 고향인 퀘벡(Quebec)은 캐나다 10개 주 중 최대의 면적을 갖고 있다. 중세 프랑스의 분위기가 곳곳에서 풍겨 나오는 퀘벡 주는 인구의 약 80%이상이 프랑스계로 구성되어 있어 ‘캐나다 속의 프랑스’로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기욤이 나고 자란 곳은 퀘벡(Quebec)의 수도인 퀘벡 시티(Quebec City)로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아주 한가로운 곳이죠. 길이 막힌다던가, 거리에 사람들로 붐비다던가 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로선 복잡한 서울이 더 좋아요.”

6살 때부터 10년 동안 스키선수 생활을 해 온 기욤은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대회에 참가하느라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바쁘게 지냈다. 여름에는 주로 ‘롤러브레이드’를 즐겼다. 하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그를 미치게 만드는 건 바로 ‘게임’이었다. 주로 전략게임을 즐기던 그는 특히, ‘워크래프트3’를 좋아했다.

“캐나다는 여러 장르의 다양한 게임이 고루 인기를 얻고 있어요. 한국의 ‘스타크래프트(스타)’처럼 특정게임이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없었죠.” 기욤은 당시 캐나다 유일의 PC방이었던 X’Ds PC방에서 같이 게임을 하다가 친해진 친구들끼리 X’Ds 클랜을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스타’에 빠져들었다. ||푸른 눈의 전사인 기욤의 살인미소가 국내를 강타하기 시작한 건 2000년부터다. 기욤은 당시 창의적인 변칙 플레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엽기 게이머로 유명했다.

큰 대회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프로게이머들은 안정적인 플레이를 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기욤은 상대에 허를 찌르는 엽기적이고 변칙적인 공격을 구사하며, 상대 선수의 어떤 변칙 플레이에도 당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위기에 처할수록 더욱 침착해지며 이미 상대에게 기울어진 승패를 뒤집어엎은 일도 허다했다.

당시 굵직굵직한 국내 프로게이머들을 제치고 스타대회를 휩쓸던 기욤을 지켜보는 이들은”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뼈다귀냐?”는 질투 어린 눈총을 보냈다. 푸른 눈의 외국인 선수가 국내 상금들을 휩쓸어 가는데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한편,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그의 변칙 플레이를 추종하는 무리들도 생겨났다. ‘스타’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기욤의 아이디 ‘그르르...(Grrrr...)’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기욤은 가장 경기하기 힘든 상대로 임요환을 꼽는다. “임요환은 나의 전략을 훤히 꾀고 있어요. 머리회전도 빠르고 페인트를 잘 쓰는 게이머죠. 항상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해요.” 기욤이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로 성공한 이후 캐나다에서도 한국 프로게임리그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캐나다의 프로게임시장이 아직까진 작아서 한국엘 오고 싶어하는 캐나다의 게이머들이 많아요. 일단은 캐나다인이 한국에서 프로게이머로 활동한다는 게 관심의 대상이죠.” 지난 해, 주 캐나다 한국대사관은 기욤에게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프로게이머 활동을 돕기 위한 ‘특별 비자’를 발급했을 정도다.||183 센티미터의 키에 출중한 외모는 한국 여성들을 열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대회장으로 찾아 온 팬들은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심지어는 TV속 그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광팬까지 생겨났다. 열광적인 여성 팬들은 기욤이 어디를 가든 한시도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기욤이 ‘플레이보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기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학당을 다니며 이화여대 외국인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한국에 온지 석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그는 이화여대 음대에 재학 중인 2살 연상의 여자친구를 알게됐다. 기욤은 여자친구에게 ‘프로게이머’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의 여자친구는 ‘프로게이머’를 ‘프로그래머’로 잘못 알고 ‘어린 녀석이 똑똑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후에야 TV에 출연한 기욤을 보고서 그가 ‘프로게이머’임을 알게 됐다.

여자친구에게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한 기욤은 꼭 계집애 같은 말투로 주위의 놀림(?)을 받기도 했다. PC방에서 함께 ‘포트리스’를 하기도 하고 한국어 공부도 같이 하면서 거의 매일 붙어 다녔다. 기욤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솔로로 지낸 지 1년이 넘었다. 그가 가장 힘든 시기에 함께 해준 여자친구였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상대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너무 잘 알게됐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린 것이 이별의 이유다.
“참 예쁘고 똑똑한 여자였어요. 그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론 한번도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는데 플레이보이라뇨? 억울하네요.”

기욤의 이상형은 전지현이다. “전지현은 일단 몸매와 미모가 뛰어나고, 춤도 아주 잘 춰서 좋아해요. 얼마 전 요환이가 전지현하고 CF를 찍었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질투가 나든지...저도 앞으로 열심히 활동해서 꼭 전지현과 CF 찍을 겁니다. 두고 보세요!”||기욤이 한국에서 꼭 도전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연예계 진출이다. 이미 S사 핸드폰 광고와 다음카페 모델로 활동한 바 있는 기욤은 두 차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을 만나 모델제의를 받았다. 운동으로 만들어진 다부진 몸매로 란제리 쇼 무대에 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패션쇼 무대에 서려면 모델 비자가 필요했고 이런 저런 소소한 문제들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 여유를 갖고 준비해서 본격적인 모델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사실, 아직까지 ‘끼’는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라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우선, 헬스를 통해 꾸준히 몸매를 만들어 가고있고 댄스학원에서 째즈 댄스도 배운답니다.” 춤추는 걸 좋아해 한때 무도회장 매니아로도 그 명성을 떨친 바 있는 기욤의 댄스 실력은 수준 급이다.

작년 한해 대회성적이 주춤해 속상했다는 기욤의 2003년 새해 소망은 메이저 대회를 휩쓸어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 일이다. “제 전략은 너무 많이 노출되서 더 이상 먹히지 않았던 게 작년 한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원인인 것 같아요. 그 동안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다보니까 연습도 게을리 했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얼마 전부터 저희 ‘드림팀’에 숙소가 생겨서 베르트랑(아이벤처컴), 조정현(아이벤처컴), 장진남(하나웹)과 함께 생활하게 돼서 기뻐요”

기욤은 앞으로 10년 후 계획은 한국식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것이다. “갈비를 워낙 좋아해서 갈비전문 레스토랑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갈비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저는 한국문화와 사람들을 너무 좋아요. 여건만 된다면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사진=유영민기자|you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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