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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수 할아버지 가족, 세대 간 벽을 게임으로 넘어서다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5.11.1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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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의 순기능이 또다시 증가될 전망이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유저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10~30대 유저층이 온라인 게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자연 이들의 취향에 맞춘 게임들만이 집중적으로 개발, 서비스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비주류 연령대 유저들은 더욱 게임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국내 온라인 게임 산업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 역시 고정관념에 불과했던 것일까. ‘게임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76세의 초고수 유저 김길수 할아버지 가족은 게임을 통해 단절됐던 세대 간의 벽을 무너뜨림과 동시에 가족애를 다지는 촉매제로까지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이뿐일까. 천만의 말씀. 게임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가 하면, 오프라인 모임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만큼 게임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르다. 세상이 온통 입동을 준비하며 겨울 채비에 들어갔던 지난 11월 3일 김길수 할아버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시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편| 게임 통해 일궈낸 제 2의 인생
“게임? 우리 아들 따라 강남 온 게지. 아들이 즐기는 게임은 왜 그리 다 재미있어 보이는지 말이야(웃음).” 약속한 장소. 손을 흔들며 밝은 미소로 맞는 김길수 할아버지는 결코 노인이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정했다. 그의 손에 이끌려 집안에 들어서자 아들 내외와 할머니, 손자 2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 찰나, 그 사이를 못 참고 PC 앞에 앉아버린 김길수 할아버지. 꽤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집 앞으로 마중 나오기 바로 전까지도 게임을 즐기고 있었음이 분명했으랴. 게임이 그리 그토록 좋냐는 물음에 웃음으로 화답한 할아버지의 눈엔 어느덧 활기가 돌았고 마우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사실 김길수 할아버지의 게임 이력은 프로게이머에 견줄만큼 화려하다. 아들을 따라 이미 오래 전부터 수많은 게임들을 섭렵해온 결과다. “게임을 알려달라고 하시는데, 참 난감했죠. 그런데 웬걸요. 제가 이제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니까요.” 한 때 이름 모를 슈팅 게임에 빠진 뒤, 최고 점수를 달성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던 김길수 할아버지는 이후 ‘디아블로2’에서 최종 목적지인 99레벨을 돌파, 매니아틱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던 중 아들이 ‘거상 온라인’을 새로이 시작했다. 이는 또다시 김길수 할아버지의 모험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밖에. 물론 다시한번 가족들의 간곡한 만류가 이어졌지만, 쇠귀에 경 읽기와 다를 바 없었다.
한번 게임을 잡으면 최하 수 시간은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 탓이다. “내 고집은 아무도 못 꺾지. 나라님도 못 꺾어(웃음)”. 게임도 만족스러웠다. PK도 존재하지 않았고 욕 역시 필터링을 통해 대다수가 전해지지 않았다.

지난 2003년 말부터 그렇게 시작된 ‘거상 온라인’과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하루 평균 10시간씩 게임을 즐겨왔지만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하루 3~4시간 정도만 게임을 즐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고수에 속하는 아들의 138레벨(만 레벨 149)마저 역전시켜 버리며, 최소 30세 이상만 가입 가능한 명성 높은 고구려 상단에서도 어르신으로 불리며 행동 대장역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그의 게임 내 아이디 ‘아리원’은 이미 비호 서버의 명물 중에 명물로 손꼽힘은 두말하면 잔소리.

하지만 아들과 함께 가입한 상단임에도 현모는 되도록 참석하지 않는다. 혹 부담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내가 나가면 제대로나 놀 수나 있겠어(웃음).”

처음에는 단 한 대뿐인 PC로 인해 함께 아들과 PC방을 찾는 일이 많았지만, 비용뿐만 아니라 담배 연기도 썩 유쾌하지 않았던 탓에, 새로이 PC를 구입하게 된 김길수 할아버지 가족. 그러나 여느 가정과 달리 신형 PC는 손자들 대신 할아버지 차지가 돼버렸다. 최근에는 할머니와 함께 즐기기 위해 ‘한게임 고스톱’까지 즐기고 있다고 하니, 천상 마니아라는 말은 김길수 할아버지를 위해 준비된 단어가 아닌가 싶다. 김길수 할아버지는 게임을 즐김에 있어 단 하나만 인지하고 있으면 즐거울 수밖에 없다며 마니아로의 지름길도 살짝 귀띔해 준다. “욕심을 버려. 끝이 없거든. 그 자리. 그 위치에서 적당히 즐기라고. 그게 게임을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지. 암 그렇고말고.” 밤늦은 시각. 할아버지는 또다시 모니터를 힐끔 쳐다본다. 그 사이에 또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게다.

아들 편| 게임은 세대 간 벽을 허무는 열쇠
“아버지는 당해낼 수가 없어요.”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 김길수 할아버지의 큰아들 김봉호(43)씨. 그는 할아버지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할아버지가 욕심내는 ‘거상 온라인’ 내 아이템은 여지없이 봉호씨에 의해 할아버지께 전달된다. 그 만큼 할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까닭이요, 함께 게임을 즐기며 벽을 없앤 결과다. 하지만 결코 모든 아이템을 맞춰주지는 않는다고.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죠. 아이템 욕심이라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이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것을 전부 다 드리면 오히려 재미가 반감되잖아요.” 이 말에 눈을 흘기는 김길수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봉호씨의 말이 이어진다. “게임은 정신 건강에 좋죠. 젊은이들처럼 목표를 정하고 노가다를 하듯 게임에 임하지 않거든요. 게임 자체를 즐기다보면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요. 가끔 버그 때문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요(웃음).” 할아버지 세대가 고생이 많았다며 이제는 게임으로 나마 즐거움을 얻고 계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하는 봉호씨. 그는 온라인 게임에 나쁜 점들만 가득하다면 결코 즐기지도, 할아버지에게 권하지도 않았을 것임을 강조한다.

“거상 온라인에는 경제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죠. 공부도 될 수 있고요. 현실에서 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들도 해볼 수 있잖아요. 특히 게임을 통해 그 동안 단절됐던 아버지와의 대화 창구도 새로이 신설됐고, 어머니와 함께 게임을 즐기며 부부애를 더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온라인 게임이 왜 악의 축으로까지 부각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봉호씨 역시 마니아 중에도 골수에 속할 만큼 게임을 좋아한다. 물론 직장 생활로 인해 하루 즐기는 시간은 평균 잡아 1~2시간 내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니아로 불리는 이유는, 꾸준히 즐기는 까닭이다. 실제로 얼마 전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봉호씨는, 다리보다 걱정되는 것이 ‘거상 온라인’ 내의 생산시설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부인에게 일일이 이야기해주면 어찌하라고 당부했지만, 오히려 핀잔만 들었다나. “게임을 하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병원 퇴원을 서두를 밖에요(웃음)” 김봉호씨는 요즘 아버지를 모시고 현모에 나가 함께 담소를 나누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다. “왜 그리 안 나가신다는 줄 모르겠어요. 함께 가시면 그 토록 좋아하시면서 말이에요. 가끔 저만 나갈 때가 있는데 그때는 오히려 은근히 서운해 하시는 모습이 역력하신데 말이에요(웃음).” 또 한번 김길수 할아버지가 눈을 흘기신다. 할아버지와 아들. 게임을 통한 이들의 부자 관계는 레벨 업처럼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 역시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는 ‘재미나라’와 ‘카트라이더’에 푸욱 빠져버린 두 아들 준성(7), 인성(4)에게도 ‘거상 온라인’을 권할 생각이라며 밝게 웃는 봉호씨의 미소 속에서 3대가 함께 게임을 통해 얻게 될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김은진 기자|ejui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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