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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아나 윤대주 대표 “ 멀티플레이어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겠다”

  • 김상현 기자 AAA@kyunghyang.com
  • 입력 2005.11.2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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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진리 또한 변화해야 옳다. 하나의 산업에 매진하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빠르게 태동하는 시대에 맞춰 유동성 있는 대응이 기업생존전략 필수항목으로 자리잡았다. 게임산업 또한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사실. 지난 1980년 초창기만 해도 블랙마켓의 대명사로 불리며 불법과 탈법의 온상인양 치부되던 아케이드게임 시장을 거쳐, 1990년대 중,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콘솔게임 시장의 부흥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현재 온라인게임의 대세에 발 맞춰 카멜레온처럼 변화를 거듭한 유니아나. 한국 게임시장의 태동과 함께 걸어온 20여년, 시장 변화를 놓치지 않고 색깔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윤대주 수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포털 ‘겜모리(GAMORI)’ 오픈으로 더 높은 창공을 날아보겠다는 그를 만나봤다.

아케이드편| 기술력 확보 주력
유니아나는 1988년부터 아케이드게임 사업을 수행해 왔으며, ‘제로포인트’, ‘도전 OX서바이벌’ 등을 개발·보급해 왔다. 특히 ‘제로포인트’의 경우 개발부터 보급까지 유니아나가 직접 제작한 아케이드게임으로 유럽에 1만대를 수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사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아케이드게임시장은 일본 아케이드게임을 리버스엔진(완제품을 분해해서 재 설계하는 것)하거나 카피하는 수준이 전부였습니다.”

게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산업이 모두 이런 리버스엔진과 카피로 산업을 발전시켰고 게임 또한 제외되지 않았다. 일본 제품만 잘 카피해서 판매를 해도 수익성이 보장됐던 그때, 윤대표는 안주하지 않고 기술력에 총력을 기울였다. 기술만이 업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그. “언제까지 남의 기술을 카피해서 쓸 수는 없다”며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출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아케이드게임시장이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음에도 유니아나는 현재도 안산에 생산공장을 두고 아케이드게임기를 OEM(주문생산)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어떤 외압이 들어와도 아케이드 산업만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유니아나의 모든 것이 이 아케이드게임으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서는 애정이 묻어났다. 현재 아케이드게임시장은 우리가 즐겼던 오락실에서 성인 게임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옛 명성은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도박게임이라는 오명만 남은 상태지만, 자식 같은 놈을 어떻게 부모가 몰라라 하겠습니까.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산을 해서 유지할 수 있다면 대의를 쫓아 가야죠.” 이어 그는 “아케이드게임이 사행성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 한켠에 자리잡은 아케이드게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서 진정 아케이드게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콘솔편| 코나미와의 끈끈한 우정
우리가 알고 있는 유니아나가 콘솔게임시장으로 뛰어든 것은 2002년 플레이스테이션2(이하 PS2)의 타이틀인 위닝일레븐을 통해서다. 하지만, 코나미와는 그전부터 돈독한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사실 아케이드 시절부터 코나미와는 지속적인 연락과 협력을 해왔습니다. 코나미의 댄스 시뮬레이션게임기 ‘DDR’과 ‘비시바시 챔프’ 등의 국내 유통이 그 증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90년대 중반 젊은 층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DDR’의 유통을 유니아나에서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DDR’이 솔직히 그렇게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코나미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유통을 했던 것인데, 소위 말하는 ‘대박’의 히트를 치더라고요.” 그 때부터 코나미와의 관계는 더욱 더 견고해 졌고 지금의 모든 코나미 제품을 유통하는 회사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코나미는 일본 업계에서도 굉장히 보수적인 회사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타 게임업체들의 말을 빌리자면, ‘확실하지 않으면 결코 손잡지 않는다’고 정평이 나있는 상태.

“특별한 비법이요?(웃음), 글쎄요 사람이 진실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진실까지는 제 노하우니 가르쳐 드릴 순 없을 것 같네요.” 집요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코나미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유니아나와 코나미는 이미 끈끈한 우정으로 접착제처럼 붙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PS2 발매와 함께 쏟아진 모든 타이틀을 한국판으로 정식버전을 팔면서 유니아나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팔린 타이틀은 ‘위닝일레븐7 : 인터네셔날(한국판)’입니다. 한국 유저들이 가장 많이 기다리는 타이틀은 ‘위닝일레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유저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위닝일레븐 이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메탈기어솔리드’까지 주옥같은 작품들이 유니아나를 통해 유통되면서 콘솔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난 2000년 부터 온라인게임의 강세로 콘솔 시장이 하락하면서 유니아나의 제2의 전성기는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온라인편| 게임포털로 제3의 전성기 준비
2005년, 유니아나를 보게된 곳은 다름 아닌 ‘지스타2005’ 행사장. 메이저 온라인게임 업체들과 동일한 60부스를 선보였다. 아케이드게임 전시회와 콘솔게임의 향연이 주가 될 줄 알았던 예상과 다르게 유니아나가 들고 나온 카드는 온라인이었다. “사실 온라인 플랫폼준비를 안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전에 90년대 중반 PC방을 겨냥한 패키지 게임을 계획했고 시장진출까지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시장 동향의 급격한 변화로 빛도 못보고 사장되어야 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의 히트를 틈타 패키지 시장에 뛰어들려고 했던 유니아나는 급변하는 온라인 시장에 밀려 쓴맛을 봐야했다. 그러나 윤대표는 여기서 절망하지 않았다. “준비했던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항상 기업은 카멜로온 같이 시장 변화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잠깐 동안 그의 얼굴에서 회한의 빛이 묻어났다. 그것도 잠시 그는 이어 “시장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가자,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시기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준비한 사업이 바로 온라인게임 포털사업이었다. “다들 처음에는 미쳤다고 했죠. 김정률 회장(전 그라비티 회장)도 말렸을 정도니 말다했다고 봐야죠.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아케이드와 콘솔을 결합한 게임포털’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그는 자신이 후발주자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기존에 나와있는 게임포털과는 전혀 다른 색의 포털을 만들고자 결심하기에 이른다. “10대부터 40대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포털을 기획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겜모리(GAMORI)’의 모터입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부터 성인들 취향의 추억의 게임, 그리고 MMORPG까지. 기존 콘솔게임들의 온라인화도 추진 중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이어 “코나미와도 이미 어떤 협의가 끝났다면서 내년쯤에는 한국 유저들이 깜짝 놀랄만한 사건도 준비중”이라고 덧붙였다.

12월 오픈을 앞두고 있는 겜모리는 캐주얼게임이 주를 이루고 있다. 퍼즐 대전 게임 ‘비해피’와 지뢰찾기 응용 게임 ‘네모네모’, 슈팅게임 ‘볼탱‘, 전략 시뮬레이션게임 ‘시즈배틀’ 등을 발판으로 킬러타이틀인 횡스크롤 액션게임 ‘카오스 잼’과 MMORPG ‘서유기(가제)’를 공개할 계획이다. 그는 “겜모리는 유니아나에게 제3의 전성기를 가져올 것이다”며 “아케이드와 콘솔게임의 노하우를 이용, 온라인게임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겜모리’를 통해 가시화 될 윤대주 수장의 ‘제3의 전성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김은진 기자|ejui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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