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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운영자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한 박봄이씨

  • 윤영진 기자 angpang@kyunghyang.com
  • 입력 2006.07.1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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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한 도전은 게임 속 PvP만큼이나 짜릿하죠”

변하라. 그리고 주도하라. 많이 이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변화를 꿈꾼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이들은 많지 않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란 대부분 파괴적이며,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그러나 변화 없는 삶이 무미건조하듯, 삶에 보다 큰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도 변화는 우리네 인생의 필수 과정임에 분명하다. 불변(不變)은 스스로의 인생에 사형선고와 같음을 깨닫고, 최근 변화를 인생 혁명의 키워드로 삼은 이가 있다. 그가 바로 게임 운영자에서 최근 시나리오 작가로 변신한 박봄이(38)씨이다. 변화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일탈. 그녀는 인생의 참된 목표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냈다.

“이제 더 이상 게임과 관련된 글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게임과의 영원한 결별 앞에 그녀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게임에 청춘을 바쳤노라 다부진 어조로 말하는 그녀와 게임과의 인연. 물론 그 속에서 일말의 후회나 아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과 생이별할 결심하기까지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지난 1999년 12월. 당시 우연한 기회에 ‘리니지’를 접했던 박씨는 온라인 게임에 가히 광(狂)적이다 싶을 만큼 빠져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냥이나 PvP, 커뮤니티 등 다양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이버공간 자체의 생소함은 신비함으로,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우리네 인생사의 단면은 간접체험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끌리는 건 해봐야죠. ‘하면 안돼’가 아니라 ‘왜 안돼’라는 생각이 우선시돼야하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하지만 현실 속에서 느꼈던 부조리들은 온라인 게임 상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아니 익명성이라는 면죄부를 통해 이 부분은 더욱 크게 부각됐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울컥하더라고요. 게임이 현실과 100% 동일하다면, 더 이상 게임은 게임이 아니죠. 게임은 오직 즐거움의 도구일 때 비로소 즐길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니까요.” 스스로의 성격을 가리켜 선행후상(先行後想)이라고 역설하는 그녀답게 이러한 부조리들을 묵과할 수는 없었다. 진검승부가 펼쳐진 곳은 ‘리니지’의 대표적인 팬사이트. 유저 차원에서의 온라인 사회 정화와 관련해 수십, 수백 차례에 걸쳐 다른 유저들과의 공방이 오간 후, 박씨는 어느 순간 ‘리니지’ 세계의 유명인이 돼버렸다.

그녀의 글들을 유심히 살펴본 해당 온라인 게임 팬사이트 관계자로부터 박씨는 컬럼을 청탁받기에 이른다. “제가 예전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무엇을 써야 되지’ ‘잘 쓸 수 있을까’ 따위의 고민에 앞서 일단은 잘됐다 싶었죠. 단박에 승낙했으니까요.” 취미인 게임을 활용해, 장기인 글을 집필하는 과정.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게임과 관련된 수많은 글들이 해당 팬사이트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유독 돋보이는 그녀의 거침없는 컬럼들. 자연 해당 게임 개발사의 귀에도 그녀에 대한 소식이 접수됐다. “운영자를 해볼 생각이 없냐는 스카웃 제의가 오더군요. 유저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졌죠. 더 이상 생각할 것 있나요?” 하지만 생각과 현실은 괴리감이 상당했다.

운영자로 게임업계에 첫발을 내딛은 순간, 곧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회사의 입장과 유저들의 입장에는 적지 않은 입장 차를 목격할 수 있었고, 양측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는 지난 2005년 2월. 돌연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다. “운영자로서 유저들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는 선에 머물 수밖에 없는 한계점에 봉착했고요. 이때 ‘내가 진정 하고자 했던 일은 무얼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어느 순간,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시나리오 작가에의 꿈이 떠올랐죠. 뭐. 언제나 그렇듯 이거다 싶으면 일단 들이대 봐야죠(웃음).” 또한번의 새로운 목표 앞에 주춤거릴 시간조차 아까웠다. 1년간의 적지 않은 노력은 SBS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게임과의 오랜 인연은 그녀로 하여금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버렸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게임관련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게 되더라고요. 아예 게임과 관련된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작가로서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녀는 오늘도 게임을 즐긴다. 인연을 끝낸 것은 게임이 아닌 게임 소재의 글이며, 게임과 관련된 직업이었다. 이제 시나리오 작가로서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그녀의 열정과 선택. 그 안에 게임은 글의 소재가 아닌, 취미로서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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