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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돌컴의 거칠 컬럼(11회)] 나의 게임 인생 Ⅲ

  • 경향게임스 khgames@kyunghyang.com
  • 입력 2007.05.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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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간단히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둘까 한다. 자장면이 300원이고 초등학생이 버스를 타는데 50원을 내면 됐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혁과 발전 덕에 이제 막 중진국 대열에 끼어들기 시작한 개발도상국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마 북한의 평양 거리를 생각하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길가를 달리는 택시들은 모두 포니, 브리샤 급의 소형차였고 미터기는 지금과 같은 전자식이 아닌 꺾는 방식의 수동 센서였다. 택시는 기본요금이 600원이었지만 그것이 그 시절 자장면 값의 두 배 가량에 해당 하는 돈이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택시타기가 힘들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자동차가 많이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택시는 상류층의 부자들이나 타고 다니는 물건으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극 상류층에 속하는 형편이었다. 청량리 근처의 55평 맨션에 도요타 크라운이라는 자동차, 운전 기사에 가정부들. 학교는 모 사립대학 부속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이곳은 재벌, 고위층 자제들이 엄격한 추첨을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는 명문 사립 초등학교였다. 의사가 한 달에 한 번씩 전교생을 돌며 주치를 하고, 여름에는 학교에 딸린 풀장에서 수영 실습을 하던 환경. 1979년대의 많은 초등학교가 석탄이 부족해서 나무를 쪼개 태워 쓰던 때였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최신식 스팀 난방기가 각 반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여름에는 간헐적으로 에어컨까지 틀기도 했다.

학교생활 뿐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도 호화판 생활은 계속 되어 장난감이 따로 준비된 방이 두개가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모든 종류의 장난감이 다 있었다. 보통 아이들은 잘해야 딱지치기 정도나 하고 있을 무렵, 나는 미국에서 수입된 전자식 게임기를 만져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레고블럭과 전자동으로 주행하는 자동차 레일 세트, 기차 레일 세트 등은 21세기에 들어 한국에서 비로소 유행하기 시작한 어른들의 고상한 장난감 정도 되는 것들이지만, 나는 집안 배경과 국가의 지극한 배려로 말미암아 어린시절 부터 이런 것들을 접해 볼 수 있는 환경을 가졌었다.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우진(34), 예명 이돌컴

1993년, 방년 19세에 게임잡지 기자로 게임계에 입문해 디지털캠프, 판타그램 등에서 개발자로 활약. 일본 프롬소프트웨어에 입사해 아머드코어 시리즈의 프로듀스 역임 .
이후 모바일게임 회사로 자리를 옮겨 ‘대장금’등 10여종의 인기 모바일 게임을 개발. 세가코리아를 마지막으로 2006년 12월 게임업계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는 각종 집필활동과 UCC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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