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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엣지러너’리뷰 … 동서양의 만남 애니메이션 신영역 구축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2.09.19 17:43
  • 수정 2022.09.1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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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본 애니메이션은 80년대 버블시대가 정점이라고 한다. 장인들이 자본을 등에 힘에 업고 자유롭게 창작해내는 시대 작품들이 지금도 칭송받는다. 그렇다면 그에 준할만한 자본을 가진 기업이 달라 붙고, 세계관 장인들이 세계를 세팅하고, 애니메이션 장인들이 작화를 담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 그 결과물이 지난 9월 13일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개봉했다. 주인공은 바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다.

협업 선언한 콘텐츠계 거목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업계 거목들이 힘을 합쳐 제작된 프로젝트다. 먼저 키를 잡은 것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는 게임을 기반으로 제작한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앞서 국내기업 스튜디오 미르와 제휴를 통해 ‘위쳐’나 ‘도타’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이는 세계적인 반향을 이끌어 낸다. 특히 이들이 게임스컴을 통해 몇몇 게임들을 선보였는데, 해당 방송 채팅창에서는 ‘도타 애니메이션’새 시즌을 발표해달라는 글이 방송 내내 떠돌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필요하던 시점에서 다음 타깃은 ‘위쳐’게임 제작사인 CD프로젝트 레드 후속작  ‘사이버펑크’였다.

CD프로젝트레드는 세계관 세팅 능력으로 인정받은 회사다. ‘위쳐’시리즈에서 보여준 스토리 텔링 능력은 물론 ‘사이버펑크’에서도 세계관과 스토리라인 만큼은 극찬을 받았다. 단지 게임 구현능력에 문제가 발생해 잇단 버그들로 아쉬움을 사기도 했을 뿐이다. 이들에게 필요한것은 시간이었고, 다년간 개발을 거쳐 수정이 완료된 시점에서 새로운 도약이 필요했다. 특히 새로운 DLC시리즈 발매를 앞둔 타이밍에서 역주행을 도와줄 작품이 필요했는데 애니메이션은 훌륭한 선택지였다. 앞서 ‘위쳐’드라마가 나간 뒤 출시 약 7년 이상 지난 게임이 역주행하기도 했다. ‘사이버펑크’역시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법 하다.

작화를 담당한 트리거는 과거 가이낙스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했던 장인들이 뭉친 기업이다. 비교적 소수 정예로 움직이는 기업이며 저예산으로 작품을 만들지만 비주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대신 시나리오면에서는 아쉽다는 평가를 받는 기업.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도와줄 CD프로젝트 레드가 존재하며, 저예산 대신 통장에 제작비를 꽂아줄 넷플릭스가 참전한다면 이들은 한계를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각기 다른 이유에서 세 회사가 연합전선을 편 결과물이 바로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다.

이마아시 히로유키의 폭주

‘사이버펑크 엣지러너’가 갖는 의미는 일본 애니메이션에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만하다. 일본 시장은 만화책 판권사, 제작위원회, 소설 출판 판권사, TV제작사 등 온갖 틀과 제약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그런데 기존 공식들을 모두 무시하고 온전히 크리에이터들의 창작을 존중하는 플랫폼에서 돈을 대면서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그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감독인 이마아시 히로유키는 국내에서 ‘천원돌파 그렌라간’, ‘킬라킬’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감독의 특징은 크게 두가지. 하나는 타격감과 액션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전설을 썼다.  

또 하나 특징은 성적인 표현에서 자유롭다. 19금 표현들을 가감없이 녹아내며 섹스어필을 하는 캐릭터들을 넣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자유롭게 표현이 가능한 OVA에서는 그의 본능이 폭주한다. 일례로 ‘킬라킬’에서는 캐릭터들이 전투를 하다가 옷을 벗는데 이 정도 수준은 애교로 다뤄진다. 그 외에 일반 매체에서는 언급하기 힘든 이름과 설정을 가진 콘텐츠들을 내보냈고, 인기를 잃지 않는 점이 재밌는 포인트다.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살린다. 액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격한 표현들을 서슴지 않았고, 감독 특유의 과장된 연출과 긴장감이 결합돼 보는 맛을 살린다. 성적인 요소는 원작 게임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노골적이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능력이 훌륭했다고만 전하고 싶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일단 쇠고랑을 차게 되므로 기자는 폭주하지 않는 선에서 제정신을 차리려고 한다. 

서양으로 간 소년만화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근간은 사실 저패미네이션 히트 코드인 소년만화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좀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는 점이 작품 포인트다. 바닥 인생, 그 중에서도 더 바닥이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사유를 설명하면서 초반을 보낸다. 과거 일본 만화가 어느 정도 선을 두고 바닥을 정했다면 이번엔 아예 지하실을 뚫고 들어간 형태에서 시작한다. 술과 마약, 총과 주먹질, 빈부격차, 왕따, 소매치기 등을 여과없이 그려내면서 바닥 인생을 표현한다. 

이어 바닥에 바닥까지 추락한 주인공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 좌절을 극복하고 새 인생을 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점차 성장하는 모습들이 애니메이션에 담긴다. 성장 이후에는 다시 몹쓸 사람들고 엮여 가면서 갈등과 고뇌를 거듭하다가 결국에는 엔딩까지 도달하는 플롯이다. 즉 입증된 틀 안에서 표현방식을 바꿔 한차례 꼬아버린 타이틀로 재미와 차별화를 동시에 꾀한다. 

애니메이션상에서 보여주는 색채와 연출은 좀 더 서양에 가까우나 스토리라인과 정서는 동양에 가까운 형태가 혼재해있는데, 이는 ‘카우보이 비밥’시리즈를 떠올리게 되는 설계다. 대신 캐릭터간 유대 관계 설정에 문제가 있고, 스토리를 빠르게 굴려 나가는 부분에 주력하다 보니 완급 조절이 안되는 점은 시리즈가 가진 옥의 티다. 

글로컬라이제이션 성공한 수작 탄생

세 회사의 만남은 서양권과 동양권을 동시에 사로잡는 시도로 귀결된다. 캐릭터 그림체와 표현 등을 중요시하는 취향과 사실적인 표현을 중요시하는 취향을 적절히 타협하고자 노력한 부분들이 인상적이다.

두 가지 모두 합격점상에 올라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지 양 쪽 모두 정점에 달하는 완성도를 지닌 것은 아니다. 역사상 길이 남을 역작이 되지는 못했고, 킬링 타임용이면서 만족도를 주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가장 적절할 듯 하다.

단점은 흡입감이 부족하며, 쉬어가는 포인트가 적어 보는 사람이 지치도록 만드는 구성이다. 이 점만 보완한다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분명히 명작 반열에 오를만한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이를 숫자로 표현하면 기준 점수가 85점쯤 될 법 하다. 액션성과 비주얼을 중요시 하는 관점에서는 추가점을 받을 수 있지만, 반대로 캐릭터성과 각 캐릭터간 캐미를 기대하는 부분이 덜해 감점 요소다. 세계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디테일을 잡은 능력은 높은 추가점을 받을 수 있지만, 이 세계에 몰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구성하는 구성력은 부족해 감점 요소다. 

정리하자면 애니메이션은 충분히 재밌다. 시간을 내서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몇몇 장면은 리모콘을 손에 쥐고 뒤로 다시 돌려 볼 정도로 훌륭한 장면들이 다수 있었다. 이는 19금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며, 전투신이나 감정선을 표현하는 장면들, 세계관속 디테일을 표현하는 장면들은 눈을 크게 뜨도록 만든다. 이러한 장점은 단점을 극복하기에 충분하기에 잘 만든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대작은 분명하며 수작으로 잘 만든 작품도 분명하다. 그 단계를 넘어선 단계에서 명작으로 불릴 수 있을지는 다소 의문이 남는 작품이다. 한 발 살짝 걸친 수준이라는 말로 일보 후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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