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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수평적 조직문화는 무조건 좋은 것인가

  • 정리=김상현 aaa@khplus.kr
  • 입력 2023.02.2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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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에 일하는 많은 선후배와 명함을 나눠보면, 언제부터인가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같은 직급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름만 있거나, 매니저, 팀장 정도의 직급으로 간소화된 회사를 자주 본다. 이런 직급의 간소화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도입돼 어느 순간 대부분의 게임회사가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사에서 호칭도 “○○씨”, “○○님”이라는 호칭이 일반화됐다.

온라인 구인 사이트 구인란에는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표현이 흔하게 등장하고, 직장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수평적 조직문화라고 해서 입사했는데, 상당히 수직적 조직문화라고 푸념하는 글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수평적 조직문화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수평적 조직문화는 항상 좋은 것인가?

수직적 조직문화의 대표는 군대라는 조직이다. 군대는 상급자가 명령하면 하급자는 복종한다는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조직의 특징은 상급자의 의사 결정이 절대적이며, 경험의 가치가 극단적으로 높게 평가받는다. 빠른 의사 결정과 전달, 통일된 움직임이 장점이며, 뚜렷한 목적 지향적인 조직에 적합하다. 반면 조직이 경직돼 유연성이 부족하고, 상급자의 능력에 따라 조직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수평적 조직문화의 대표는 스타트업이다. 막 시작한 초기 기업인 스타트업은 구성원 사이의 유대 관계가 강하고, 자유로운 의견의 표현이 가능하다. 상급자와 하급자의 구분이 모호하고, 새롭고 혁신적인 발상의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다. 자율적인 환경과 창의적인 발상이 장점이며,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에 적합하다.

우리는 보통 수직적 조직문화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수직적 조직문화는 극단적 효율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의사 결정권이 특정 소수에게 있어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하고, 권한과 책임, 실적과 실수가 명확하다. 특히 반복되는 업무가 많고, 새로운 도전보다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한 조직에는 적합한 조직문화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수직적 조직문화의 단점 중 많은 부분은 권한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거나, 하급자의 실적을 가져가고 본인의 실수를 하급자에게 떠넘기는 나쁜 상급자 탓이지, 조직문화의 잘못이 아니다. 이는 조직 관리가 잘못된 것이다.

수평적 조직문화의 오해 중 대표적인 것이 자유로움이다. 수평적 조직문화의 자유로움은 업무 효율과 자유로운 발상을 위한 수단이지 편한 직장 생활을 위한 것이 아니다. 수평적 조직에서 개인의 자유로움은 조직의 업무 효율을 떨어트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허용되는 것이며, 통제하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스스로 찾아서 일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조직문화이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편하게 일하고 급여를 받는 문화가 아니다. 따라서 수평적 조직문화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도태를 유도하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와 보상을 제공하는데 적합한 조직문화이다.

현재 많은 기업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이야기하지만,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평적 조직문화에서 명확한 권한과 의무, 성과와 실수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현이 어렵고, 적용도 어렵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근무 환경은 원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고, 성과에 대한 기여도를 책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의 관리 시스템은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수평적 조직문화에 맞는 시스템을 구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많은 게임 업체가 스타트업이고,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구성원의 수가 증가하고, 개인의 자유로움이 다른 구성원의 업무 효율에 영향을 미치고, 업무 성과에 대한 평가가 어려워지는 순간 수직적 조직문화의 시스템들이 슬금슬금 도입되기 시작한다. 이질적인 조직문화의 시스템이 충돌하는 순간 구성원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불만은 더욱 커지게 된다. 게임 업체는 산업의 특성상 수평적 조직문화의 장점인 창의적인 발상과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지만, 제품을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안정적인 관리가 중요하여 수직적 조직문화의 장점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대표는 조직문화를 쌓아 가는 사람이다. 조직문화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는 없다. 특히 게임 업체는 이질적인 학문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공동 작업을 하고, 창의적인 발상과 안정적인 관리가 동시에 필요하다. 수평적 조직문화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현하려면 그에 적합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맞는 사람을 가려서 구인하고, 맞지 않는 사람을 내보내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부단한 노력과 인내도 필요하다. 자신이 없다면 익숙한 수직적 조직문화를 잘 구축하는 것도 대안이다. 만들다 그만둔 미슐랭 쉐프의 요리보다 잘 끓인 라면이 더 맛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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