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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 2001년 최고 스포츠 스타 '황금장갑'

  • 소성렬
  • 입력 2002.10.2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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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은 바로 게임 그 자체입니다. 경쟁한다는 것과 즐긴다는 것. 그것은 곧바로 야구이자 게임인 셈이죠”
추위를 막기위해 빵모자를 눌러쓴데다 트레이닝복 차림이 보여주듯 홍성흔선수는 전혀 꾸미지도 않고 부담없이 술술 이야기를 풀어갔다. 마치 수다맨이 속사포를 쏘아대듯 140km대의 강속구가 포수미트에 들어오는 속도(0.3~0.4초)로 말문을 이어갔다.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자신이 ‘리니지’ 열성팬임을 밝히면서 인터뷰의 포문을 연 그는 “솔직히 어제도 새벽3시까지 게임을 했죠. 시합에 나가서도 내가 실제 야구를 하는지 게임의 세계에서 야구를 하는 지 헷갈릴 때도 있을 정도”라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리니지’에서 <포수지존>이라는 ID를 갖고 있고 48레벨에 9검, 50방임을 자랑스럽게 밝힌 그는 은근히 자신이 야구에서도 고수, 게임에서도 고수임을 알아달라고 열심히 홍보했다.
질문없이 진행되는 인터뷰였다. 그는 신이 나는지 점점 열을 더해갔다.
같은 팀 장원진선수는 야수지존, 송원국선수는 투수지존이란 ID가 있는데 같은 혈에서 게임을 한다고 했다. 숫제 야구를 하면서도 게임용어를 자주 쓴다고 한다. 달리다가 지치면 헤이(도움)를 받고오기도 하고 코치를 법사라고 부르는데 경기가 잘 안풀릴때는 타자를 PK시키라고 고함을 치기도 한단다.
“요즘은 스토브리그라 시간 여유가 있어 5~6시간, 시즌중에는 2~3시간은 꼭 게임을 하죠. 지방원정때도 PC방에 가서 게임을 합니다.”||“리니지 뿐만 아니라 한게임, 포트리스2, 메탈기어 솔리드, 사일런트힐, 위닝일레븐…(너무 많아 못 받아 적었음) 등등 안해본게 별로 없죠. 비디오게임기도 플레이스테이션 1,2 다 있어요”
“2001프로야구도 해봤는데 실제 야구하는 것보다 더 어렵데요. 근데 거기에 제 능력치(타율)가 낮게 나와 있어서 은근히 자존심 상하던데 게임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죠. 하하하….”
더 이상 가다간 준비한 질문을 하나도 못할 것 같아 “일단 요까지”를 선언한 후 하나씩 물어 보기로 했다.
△야구는 게임으로 말하면 9명이 하는 롤플레잉게임이다. 포수의 역할을 게임과 비교하면.
-안방마님으로 게임을 지휘하니까 지존이죠.
△게임이나 야구 모두 심리싸움이다. 수비때 어떻게 타자를 제압하기 위해 어떤 심리요법을 쓰나.
-게임이나 야구나 모두 시작전부터 상대편 기를 죽여야 한다. 투수공을 큰소리나게 받는 미트질이나 허슬플레이 모두 기를 제압하기 위한 것이다. 게임에 들어가도 일단 큰소리치면서 기를 제압한다.
△게임이나 야구를 하다보면 고수를 만난다. 어떻게 대처하나.
-당연히 긴장한다. 그래도 오기가 있어서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위기때 투수마운드로 가서도 게임 이야기를 주로 한다. 우리끼리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 하지만 알고보면 전부 게임이야기다.(킥킥)
질문하는 사람이 미안할 정도로 모든게 게임하고 연결돼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아예 토를 달아 질문을 했다. 게임과 관련이 없는 질문이라고….
만약 지금 홍선수가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면 얼마나 요구하겠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망설인다.(질문에 망설이는 것은 두번있었는데 이게 처음이다)
“한 30억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흐흐흐)”
그러면서 내년 연봉에 대해선 딱잘라 “1억 이상은 줄 것”이라며 재빨리 입을 닫았다.||기왕 진지해진 마당에 조금 더 진도를 나가봤다.
△절제를 이야기했는데 본인은 절제를 잘한다고 생각하나
-그런 편이다. 시즌중에 슬럼프가 온적이 있었는데 그 원인을 분석해보니 게임이었다. 그때부터 아무리 게임이 하고 싶어도 참았다. 우리 청소년들도 게임을 즐기면서 동시에 절제를 배운다면 좋겠다. 입시 때문에 중압감이 클텐데 적절히 절제된 상태에서 가끔씩 게임을 즐기면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어’하는 사이 이야기는 다시 게임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할 수 없었다. 도저히 게임빼고는 이야기가 안될 것 같아 원위치 했다.
“야구선수중 존경하는 고수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국내에서는 박철순 선배, 해외에서는 텍사스의 이반 로드리게스를 고수로 모십니다. 박선배는 별명 그대로 불사조였죠. 아픈 몸을 이끌고 승리를 이끌어 낸 투혼은 정말 대단합니다. 로드리게스는 같은 포수로서 배울게 많죠.”||그러면서 그는 고수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누차 자기관리, 도전정신, 절제를 꼽으면서 “게임이나 야구 모두 고수가 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된 자만이 승리를 맛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말은 꼭 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공부든 게임이든 목표를 가져야 하지만 자칫 욕심이 지나치면 모든걸 다 잃을 수 있죠. 평상시 노력한 만큼만 얻겠다는 자세로 마음을 비우면 다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점에서 야구도 마찬가지죠.”
그의 근성이 잘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는 평상시에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시합을 마치면 나름대로 상대타자들의 장단점이나 습관 등을 PC에 담아 놓는다고 했다. 물론 그 작업이 끝나면 곧장 게임에 들어가지만….
너무 게임에 빠져 감독이나 코치로부터 지적을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no”라고 답했다.
“프로는 자신이 모든걸 관리해야 합니다. 내 경우는 게임을 통해 집중력을 키웁니다. 게임을 즐기다 보면 자연 레벨이 올라가듯이 야구도 즐겁게 하려고 하죠. 그래야 실력이 나옵니다. 게임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사생활이 궁금했다. 얼마전 잠실운동장에서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얻어 형과 둘이 산다고 했다. 밥하고 빨래하는 것은 이력이 붙어 왠만큼 자신 있다고 했다.
호남형인데다 성격도 좋으니 여성팬이 많겠다고 하자 “여성팬이 아니라 소녀팬들이 많다”며 그의 홈페이지(www.sungheun.
com)를 통해 확보한 팬클럽 참여자가 벌써 3천명에 이른다며 은근히 자기자랑이다.
일부러 아픈데를 찔러봤다. 지금까지 4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제일 아픈 기억이 무엇이냐고. 그러자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두번째 망설임)
“가능하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중3때 부모님이 헤어지신 일이 가장 어려웠던 고비였다. 운동도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면 좋겠다.”
아, 그 밝은 모습의 홍성흔에게도 이런 면모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슬픔조차도 삶의 자양분으로 만들어가려고 했다.
그랬다. 그는 프로였다. 경기장에서 일상생활속에서 그리고 PC앞에서도. 소주 1병반의 주량도 우승의 기쁨으로 폭탄주 30잔까지 뻥튀기 할 수 있는 호기와 언제든지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자기절제가 어우러진 그가 오빠부대의 타깃이 되는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인터뷰 도중 삼성 이승엽선수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그는 “야, 승엽아. 니 무슨게임 잘하노. 뭐라꼬. 테트리스하고 겔러그라고. 아이구. 그래 알았다. 내일 우리집에 와서 함보자.”라고 한참 너스레를 떤 후에 “사실 승엽이는 제가 리니즈 할 때 옆에서 구경하는 놈입니다. 오늘 이후로 게임 좀 가르쳐야 쓰것네요.”(히히)
앙드레김 패션쇼 때문에 다음에 꼭 소주 한잔 하자는 정감어린 말을 남기고 구단 사무실을 나서는 그를 보며 우중충한 날씨에도 상큼함을 느끼는건 그가 진정한 게이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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