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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환] 게임의 거인

  • 지봉철
  • 입력 2002.10.1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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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신라호텔 앙드레김 패션쇼장에서 만난 임요환 선수는 평소 모습과는 다른 까만색 정장차림이었다. 최근 국내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미스 WCG(월드사이버게임) 안나조지양이 모델로 등장하는 까닭에 자연스레 VIP자격으로 행사장에 초대된 것이었다.
우주복 차림의 선수복장에서 벗어나 한껏 멋을 부린 모습으로 인터뷰자리에 온 그에게 차마 게임과 관련된 질문으로 처음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21살 젊은이의 화려한 외출. 그리고 작은 떨림들을 지켜주기 위해서랄까. 굳이 이런날이 아니더라도 게임과 관련된 질문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선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안나양과의 관계였다. 갖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는 터라 조심스럽게 안나양과 사귈 의향이 없는지 물어봤다.
“6살이나 차이가 나는데요.”
얼굴에 홍조를 띠고 애써 부인한다. 구태여 나이 차이인 6살을 강조하는 것이 수상스럽다. 큰 나이차이도 아닌데, 애써 나이차를 강조하는 것을 보니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요즘 6살차이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계속 찔러봤다. 그는 ‘애인’, ‘결혼’, ‘부부’라는 단어들이 거론되자 사춘기 10대 소녀와 같이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냥 동생이에요. 결정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아요. 손짓 발짓 써가면 대충 알아듣기는 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진 못해요. 이래가지곤 사귈래야 사귈 수도 없죠.”
그래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모양이다. 아마 안나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사귈 생각은 있었다는 말같았다. 여자친구가 있어 곤란한가 싶어 물어보았다.
“친구들 만날 시간도 없어요. 중요한 게임이 있을때는 며칠씩 합숙을 하면서 대회를 준비하기 때문에 사람들 만날 틈이 없어요. 합숙을 하면 아침 8시에 일어나 밤 11시 잘때까지 스케쥴대로 움직여야 해요. 남자학교만 나와 아는 여자도 없지만…”
‘꽃미남’이라는 별명답게 잘생긴 외모에다 180센티미터의 훤칠한 키. 많은 여자들이 따랐을 법도 한데, 이건 완전 쑥맥이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어릴때는 이렇게 부끄럼을 많이 타지는 않았는데…”
원래는 외향적이었다는 그가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한 결정적인 이유는 중학교 2학년때였다. 옆집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집을 태워버릴 뻔한 사고를 낸 후 아버지께 심한 꾸지람을 듣고 난 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심하게 혼이 났어요. 아버지가 무서운 분이란 걸 처음 알게 됐지요. 그때부터 아버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죠. 점점 성격이 변하더라구요.”
그가 전자오락같은 혼자하는 놀이에 빠져든 것이 그 사건 이후부터다. 게임입문의 동기가 아버지에서 혼난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순간 난감해짐을 느꼈다. ||방향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 스타크래프트와 관련된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준비해 간 질문들이 적힌 수첩을 다시 열었다.
△ 하루 일과를 말해달라
- 팀동료들과 합숙생활을 하면서 지내기 때문에 스케줄 표에 의해 일과를 시작해요. 기상은 아침 8시에 하고 오전 9시부터는 헬스클럽에서 약 1시간 동안 운동을 합니다.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필수적이에요. 그 외에는 밤 11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계속 게임만 생각하고 연습합니다.
△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 어릴적 꿈은 프로축구 선수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게 됐지요. 이런 게임도 있구나 했는데, 점점 더 빠져드는거에요. 공부를 안했으니 대학입시 실패는 당연했죠. 내친김에 바로 프로게이머로 입문하게 됐어요.
△ 스타크래프트이후에 종목전환을 고려해 본적이 있는가.
- 프로게이머라면 당연히 고려해야 겠지요. 스타크래프트로 천년만년 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스타가 가장 인기있고 완벽한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답게 테란종족으로는 최강이다. 처음부터 테란으로 게임을 시작했는가.
- 많은 사람들은 내가 처음부터 테란으로 게임을 시작했는지 알지만, 사실 98년 8월 프로게이머로 처음 입문했을 당시에는 프로토스가 주종족이었어요. 당시 자주쓰던 전술이 셔틀에다 리버를 태워 적진을 공격하는 방법이었는데 패치가 나와 리버의 공격타이밍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자주 쓰던 유닛이 무용지물이 됐다고 생각하니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서 3개월 후에 테란으로 종족을 바꿨어요. 지금 자주 쓰는 전술역시 드랍쉽에 의한 게릴라 전술이예요.
△ 시합때 주로 쓰는 전술이 있다면.
- 기본적으로 가장 자신있는 전술은 드랍쉽에 의한 게릴라 전술이에요. 그러나 이 전술만 쓴다면 상대가 쉽게 나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 엽기적인 전술을 많이 씁니다. 게임때마다 상대가 생각하지 못했던 전술을 구사해야 상대방이 주눅이 들어 플레이에 실수를 하게 되지요.
△ 스타크래프트외에 좋아하는 다른 게임은.
- 디아블로 2와 킹덤언더파이어 등을 좋아해요. 디아블로 2는 한동안 탐닉했는데, 스타크래프트 연습에 지장을 줄까봐 의도적으로 멀리하게 됐습니다.
△ 남들은 즐기려는 게임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할텐데 어떻게 푸나.
- 맞아요. 남들은 게임을 즐기려고 하지만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해요. 하루종일 게임만 생각하고 친구들도 못 만나구요. 개인시간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게임이 싫어질 때도 있는데 이럴때면 영화나 쇼핑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 나이로 볼 때 군대 문제도 해결해야 할텐데.
- 현재 다니고 있는 동아전문학교에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 공부를 마치고 군대에 가려고 합니다. 프로야구나 축구에서는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 혜택이 주어지는데 프로게임은 요원해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 프로게이머를 꿈꾸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프로게이머를 꿈꾸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프로게이머가 노는 직업이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죠. 프로게이머가 되면 개인시간도 없을뿐 아니라 성공확률도 상당히 희박합니다. 상당히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해요.

역시 그는 영원한 게이머였다. 게임이야기를 해야 흥을 내는 그런 선수였던 것이다. 간간이 탁자위에 그림을 그려가며 열심히 이해시키려고 애를 썼다. 게임에서 지면 경기에서 실수했던 장면이 떠나질 않아 잠도 잘 못잔다는 그에게 게임을 빼놓고는 할 어떤 이야기도 할게 없었던 것이다.
이기석 선수가 자기관리를 잘못해 선수수명이 짧아졌다고 생각할만치 게임에 관해서는 자신에 대해서도 철저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였다.
하루에 날라오는 E-메일 팬레터는 수백통. 왠만한 연예인 뺨치는 수준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WCG 세계대회에서 우승했을때는 대구에서 40대 중년 아저씨가 화환을 보내주셔다고 자랑이다. 그만큼 다양한 계층에서 폭넓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저는 일반 연예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팬들도 그런 점을 알아주는 거 같구요. 연예인들처럼 저를 따라다니며 마냥 동경하는 그런 팬들은 없어요. 저의 게임 플레이의 매료된 분들이 많다는 것이 그냥 좋아요. 제 플레이 하나 하나에 환호성을 질러주시는 팬들이 많아진다면 더 바랄나위 없지만요.”
행사장에서 안나 조지양과의 만남이 계획된 모양이었다. 게임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말할만큼 게임에 대해서만은 날을 세워도 부족할 듯이 보였다. 외모와는 달리 냉혹한 승부사의 기질을 감추고 있는 임요환, 그는 그야말로 겜생겜사의 삶을 사는 게임계의 거장이었다.

사진=홍상표기자 photo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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