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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자동차 포 콜럼바인

  • 정리=김상현 기자 aaa@khplus.kr
  • 입력 2023.08.14 09:10
  • 수정 2023.08.14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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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기와집에 영수와 정희가 사는데,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게?” 하는 농담이 70년대 유행한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부인의 이름을 소재로 한 농담이다. 보통 남성의 이름으로 인식되는 영수와 여성의 이름으로 인식되는 정희가 반대로 사용된 경우를 소재로 한 것이다. 이런 농담을 한 개그맨이 한동안 방송 출연을 금지당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도 있지만,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성급하게 일반화해서 판단하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편견을 가지고, 쉽게 판단을 내릴 때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올초 “공무원 폭력성 실험”이라는 유튜브 패러디 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행했다. 일하고 있는 충주시청 사무실에 갑자기 전원을 내리면, 컴퓨터가 갑자기 꺼진 공무원들이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내용의 실험 영상이다. 폭력적으로 변한 공무원 한 명이 “시민을 위해 일하고 있었는데 미치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상의 대표적인 웃음 포인트이다. 이 패러디 영상의 원본은 2011년 MBC 뉴스데스크 방송에 나왔던 게임 폭력성 실험이다. 이 영상은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패러디 영상이 나올 정도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영상이다. 영상의 내용은 PC방에 가서 갑자기 전원을 내리고, 이용하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는 실험이라고 이름 붙인 코메디같은 뉴스이다. 게임을 하던 학생들은 게임 중 갑자기 컴퓨터가 꺼지자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이런 모습을 게임이 가진 폭력성 때문에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폭력성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주장의 내용이었다. 패러디 영상이 비꼰 것처럼 컴퓨터 전원이 갑자기 내려가면 누구나 폭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고, 기본적인 실험 윤리조차 지켜지지 않은 어이없는 뉴스였다.

2002년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마이클 무어 감독이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소재로 한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발표했다. 소재가 된 사건은 1999년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에 위치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2명의 학생이 총기를 난사하여 다수의 학생과 교사를 죽이고, 다수의 학생에게 총상을 입힌 다음 자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이후 많은 미국의 미디어가 이 사건의 원인을 찾는다는 명분의 분석 기사를 양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은 학생들이 쉽게 총기를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나 집단 따돌림 등의 문제 원인을 따지지 않고, 개인의 일탈과 록음악, 게임 등을 원인으로 이야기하는 미디어를 비판한다. 이 영화에서 가해자들이 범행 당일 볼링을 쳤다는 것과 볼링장에서 총기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여주며, 사건의 원인이 볼링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을 전한다. 미디어의 어처구니없는 보도 행태를 비꼰 것이다.

최근 신림동 칼부림 사건이나, 서현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을 보도하면서, 가해자들이 게임에 중독됐다는 형태의 내용을 담은 뉴스를 보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사건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과도한 경쟁과 불안정한 사회 안전망, 자극적인 미디어와 모방 범죄 등 수많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이런 복잡한 원인을 배제하고, 게임이라는 단순한 키워드 하나를 원인처럼 일반화하는 것은, 영수가 남자일 것이라는 편견이고, 볼링이 원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의 주장이다. 신림동 사건에서 이동할 때 가해자가 택시를 이용했고, 서현역 사건 때도 가해자가 자동차로 서현역 인도를 돌진하면서 시작했으니 두 사건의 공통분모인 자동차가 이 사건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콜럼바인 가해자도 자동차를 이용해 학교로 갔으니 볼링보다 자동차가 더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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