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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준비생 50명에게 물었다 | 왜 그들은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가?

  • 김상현 기자 AAA@kyunghyang.com
  • 입력 2005.09.0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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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50만’,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 지겨워져버린 사회문제. 오늘도 구직 사이트를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학생 및 미취업자들. 취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더 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사상 유래의 취업난과 동시에 찾아온 풍토가 있다. 바로 안정된 직장, 평생 직장을 원하는 미취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철밥그릇’에 대한 환상이 커지고 있다. ‘철밥그릇’이란 밥그릇이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공무원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공무원 경쟁률은 이미 100대 1을 넘었고 신림동 고시촌은 연일 고시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고시 아닌 게임에 더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게임으로 몰았고 왜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봤다.

지난 8월 22일 신림동 녹두거리 근처 PC방, 평일 2시임에도 PC방에는 빈자를 찾아 볼 수 없었다. 특히 흡연석은 몇 분씩 기다리는 수고까지 감수해야했다. 오후 2∼7시까지 총 18군데의 PC방을 돌아봤고 타 PC방도 처음 찾은 PC방과 다르지 않았다. 현상에는 항상 이유가 따르기 마련이다. 근처에 있는 대학교라고는 서울대 뿐. 지리 여건상 그 시간에 학생들이 신림까지 PC방을 위해 나온 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렇다면 PC방에 있는 그들은 누구인가. 대답은 의외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고시생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9, 7급 공무원 시험 준비중에 있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신 모씨(31)는 자신이 2년 전까지 만도 학구열에 넘치는 고시생이였다고 말했다.

“한 4번 떨어졌나요. 그 후론 취업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1년, 2년 지나고 나니 특별하게 무엇을 해야겠다는 관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처럼 싼값에 숙식 신림ㆍ노량진일대 20∼30%가 사이비 고시생들로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신씨처럼 고시에 연거푸 낙방을 하고 고시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이나 주위 친구들에게는 고시공부를 계속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짜고시생’이라고 말한다. 경제불황과 최악의 취업난이 고시촌 문화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신 모씨를 찾아 따라간 PC방. 그는 이곳이 가장 많은 ‘가짜고시생’들의 아지트라고 설명했다. 한달 정액비가 15만원. 일일 정액은 시간에 따라 보통 금액보다 적게는 3천원에서 5천원까지 저렴했다. 금연석과 흡연석이 구분이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자리에서 흡연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PC방에서 만난 김상헌씨(가명, 27). “집은 진주에 있습니다. 모 저도 가짜고시생이죠.(웃음)하지만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합니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근처 고시원에서 숙박은 해결하고 밥은 대충 사먹거나 시켜 먹습니다.”

그의 하루일과를 살펴봤다. PC방과 고시원 그 두 곳이 그의 활동 범위 전부였다. 불규칙한 생활로 위의 일과도 평균적인 시간을 적은 것으로 밤을 셀 때도 많다고 말했다. PC방비는 한달 정액으로 월 15만원을 납부하고 있으며 고시원 월세는 매달 22만원을 납부하고 있었다. 그가 집으로부터 받는 돈은 50만원(학원비 포함). 월수입의 74%을 PC방비와 집 값으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상헌씨 일과표>
11시30분~12시 : 기상, 세면
12시~13시 : 아침 겸 점심을 먹고 PC방으로 직행
13시~22시 : 온라인 게임 플레이, 중간에 저녁은 라면이나 배달로 해결
22시~02시 : 다시 온라인 게임 플레이
02시~11시 30분 : 취침
<※ 모든 가짜고시생을 대변하는 일과표는 아님>

“사실 이렇게 돈 쓰면 집에서 주는 돈으로는 못 버티죠. 아이템 거래(사이버머니 혹은 아이템 거래)로 현금을 벌고 있습니다.”

그가 월 아이템 거래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차이는 있겠지만, 평균 50만원에서 70만원 사이를 번다고 말했다.

“버는 돈은 그 달 유흥비로 쓰거나 좀더 좋은 아이템을 현금으로 맞추는 비용으로 쓰고 있습니다”며 “아르바이트 보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것이 즐기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매력이죠”라고 온라인 게임으로 돈을 벌 수 있다 말에서는 자부심마저 묻어 났다.

그 외에도 상당수 ‘가짜고시생’들이 온라인 게임을 했고 그와 같이 돈을 벌면서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이 많았다. 미래에 대해서 물었을 때, “그냥 아직까지는 이게 좋습니다. 현실 도피라고 손가락 질 해도 그냥 이렇게 사는 게 편하고 좋은 걸 어떻게 합니까. 물론 언제까지나 이런 생활을 할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 왜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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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현실로부터의 도피 (28명) 56%
2위 돈을 벌기 위해서 (13명) 26%
3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5명) 10%
4위 기타 (4명)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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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전체 인원의 56%(28명)으로 가장 많았다. 고시 준비를 한다고 막상 나오기는 했지만, 자신과의 싸움에 실패 혹은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서 더 이상 고시를 준비하고 싶지 않다라는 의견이 많았다. “가족들에게는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안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저도 답답하죠”라고 말한 김모씨의 말에서는 절망이 묻어 났다.

2위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의견으로 전체 인원의 26%(13명)이 답했다. 돈이 가장 많이 되는 게임으로 ▲리니지1 ▲리니지2 ▲뮤 순을 뽑았으며, 한 달에 버는 수입으로 30만원 내외가 가장 많았다. “아무래도 집에서 받는 돈으로 유흥비까지는 충당을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귀찮고 힘들기도 해서 좀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한 것이죠”라고 일산에서 온 최모씨가 말했다.

3위는 그래도 아직까지 고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스트레스를 풀려는 목적’으로 게임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에 한 3시간 정도 게임을 합니다. 학원도 다니고 있지만, 게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라고 말한 이모씨는 이렇게 힘든 사회를 만든 정치인들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4위는 기타 의견으로 “그냥 게임이 좋아서.”, “나도 잘 모르겠다”라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가짜고시생들의 연령은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다. 뜻하는 않은 명퇴나 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려는 일부 40대 가장들 중 일부도 이번 설문에 참여했다. ‘사회적인 병폐다.’, ‘심각한 취업난이다’라는 문제는 일단 접어 두고 왜 그들이 게임으로 밖에 돌파를 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이란 도구가 도피 도구나 어떤 다른 목적(돈이나 물질적인 것)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문제는 ‘게임=나쁜 것’이라는 공식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게임사들에게 이 문제를 전가하자는 뜻은 아니다. 게임문화가 그들을 이렇게 몰고 가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만약 게임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게임이 즐기기 위한 놀이문화로 정착됐더라면 최소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시발점은 주지 않았을 것이다. 매번 게임문화에 대한 정착은 이렇게 되야 한다고 끝을 맺는다 그리고 다시 발생하는 문제점.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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