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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발더스게이트3’ 진정한 모험을 정의하다

  • 안일범 기자 nant@khplus.kr
  • 입력 2023.12.25 12:16
  • 수정 2023.12.2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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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2023년만 같아라. 콘솔 게이머들에게 2023년은 행복한 한 해다. 매 달마다 대작 게임들이 쏟아졌고 대다수가 명작 게임 반열에 올랐다. 소위 ‘역대급’ 완성도와 퀄리티, 재미를 보유한 게임들이 시장에 나왔고, 상업적, 예술적 가치를 입증하면서 극찬을 받았다.

이러한 게임들 사이에서도 소위 ‘최고’를 뽑는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 GOTY)을 선정하는 평론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어떤 게임을 선택해도 합당한 선택이다. 명작들이 즐비한 환경에서 하나를 뽑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평론가들은 한 게임을 선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발더스게이트3’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논란이 일 상황이 틀림이 없다. ‘젤다의 전설’, ‘슈퍼마리오’, ‘파이널판타지’, ‘아머드코어’ 등 유구한 역사와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시리즈 신작들이 나온 한해에서 이들 외 작품이 수상하는 일은 상상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도 대체로 ‘발더스게이트3’은 인정한다는 분위기다. 그 만큼 게임이 잘나왔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팬들과 평론가들을 홀렸나. ‘발더스게이트3’을 들여다 봤다. 

‘모험’의 의미

‘발더스게이트3’은 TRPG를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이다. 마스터(진행자)가 큰 틀안에서 시나리오를 정하고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상상력을 총동원해 원하는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다. 이를 싱글플레이 게임으로 제작해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한한 자유도를 표현한 게임이 가능한 일인가.

‘발더스게이트3’역시 무한한 자유도는 불가능하다. 대신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할만한 다수 선택지를 삽입해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게임을 설계한다. 대다수 게이머들이 상상할만한 요소들은 가능케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설계한다. 

일례로 게임 초반 게이머들은 길을 가다가 고블린과 엘프가 대처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엉겹결에 고블린 등뒤를 잡고 싸우기 시작한다. 상대를 싹쓸었더니, 이번엔 엘프가 주인공을 고블린취급한다. 애써 사정을 설명하자 결국 말이 통했다. 알고보니 이 곳은 엘프 마을이다. 어설픈 정찰대가 적에게 발각된 이후에 기지로 돌아오면서 본진이 들통난 상태다.

이제 엘프들은 난리가 났다. 조만간 습격할지도 모르는 고블린들을 상대로 대응 해야 한다. 누군가는 엘프 마을을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방인들을 모두 내쫓고 방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이방인들과 함께 힘을 합쳐 고블린들을 막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마을 봉쇄를 주장하는 이를 암살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에 따른 시나리오가 전개 된다. 이 정도 자유도는 어느 게임에나 있다. 

이 게임은 한발 더 나아간다. 고블린들을 쓸어버릴 생각에 잔뜩 준비를 마친다. 고블린 기지에 들어가는 순간 화살이 빗발칠 것 같은데 아니었다. 고블린들은 모험가를 반갑게(?) 맞이한다. 오히려 엘프 마을이 독해 보일 정도다. 대의를 위해서는 역시 엘프 마을을 습격해야한다고 한다. 자연 보호외에 모든 것을 멸시하는 엘프 마을. 그렇기에 인간을 적대하는 이들과 오히려 주인공을 환영하는 고블린.

어디를 도와야 할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결국 기자는 결정한다. 두 쪽 다 돕는다. 대의적으로 옳은 부분에 대해서는 돕고, 서로간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통한다. 엘프 마을은 스스로를 봉쇄했고, 고블린 마을은 엘프 마을의 기지를 찾지 못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게임은 동작한다.

선택에 따라 변화하는 게임 세계

이처럼 게임은 유저들이 선택한 요소에 따라 변화한다. 작게는 한 NPC에서 출발해 크게는 세계가 변화할 정도로 선택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깊이도 남다르다. 게임 초반에 살렸던 NPC가 게임 플레이 80시간만에 다시 튀어나와 어딘가에서 만난다.

길 가다가 주운 한 쓰레기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보물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책장의 책이 알고 보면 40시간뒤에 해결할 문제의 단서가 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죽였던 NPC가 알고 보면 미래의 동료기도 하다. 

이처럼 사소한 행동들이 모여들어 모험을 만들어 나간다. 행동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앞서 진행한 행동이 다음 선택지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분기가 여러번 갈려서 하나로 귀결되는 형태다. 이러한 선택지가 이 게임에는 수백가지가 넘어가게 된다. 즉,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봉착한다.

일반적인 게임에서라면 한두개 선택지를 두고, 게임을 플레이한뒤에 마음에 안들면 로딩해서 길게는 한두시간 플레이하면 된다. 이 게임은 20시간전에 선택한 선택지가 그 이후에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론상으로 세이브 로드가 가능하나 이를 실행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게임 성향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자신만의 모험을 구성하게 되고, 흘러가는데로 게임을 플레이하게된다. 대체로 유쾌하고 즐거운 모험이다. 그러나 항상 옳은 선택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씁쓸하고 우울한 결말을 맞이해야 하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주어진 결말을 수용하고 다음 회차를 기약하게 되는 식으로 게임은 흘러가게 된다. 

깊고 넓은 시스템이 주는 전투의 묘미

게임의 전투 시스템은 TRPG룰에서 따왔다. 약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갈고 닦은 게임 룰은 완성도와 깊이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깊고 넓은 형태로 설계가 가능해 ‘나만의 빌드’를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이를 갈고 닦아 전투에 나서게 되며 상대와 대결하게 된다. 

전투 시스템은 대체로 특정 행동을 결정하고, 주사위를 굴려 결과를 판별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유저들의 자유다. 강력한 공격 마법이나 무기를 휘둘러 상대 체력을 깎는 것이 기본이다. 바닥에 기름을 던져 상대방을 미끄러지게 만들고, 불을 붙이는 전투도 가능하다. 주변 사물을 마구잡이로 집어 던지는 일도 가능하고, 어둠에 숨어 암습하는 일도 가능하다. 상대방을 유혹해 아군으로 포섭한다음에 적들을 죽이게 만들수도 있고, 정령을 소환해 불의 심판을 내릴수도 있다. 온갖 변수들을 기반으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투를 하게 된다. 

나머지는 주사위가 결정한다. 주사위를 굴려 성공여부와 대미지가 결정되는데 그 폭이 일정하지 않다. 운이 좋으면 순식간에 상대를 녹이고, 운이 나쁘면 처절한 싸움을 해야할때도 있다. 

상대로 나오는 적들 역시 이 깊고 넓은 시스템안에서 설계해 만들어진 적들이다. 상대 역사 다양한 방법으로 전투에 임한다. 이들을 보고 이해하며, 대응하는 방법을 연구해서 전투에 임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르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헤멜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대체로 게임 난도가 높게 보여 전투는 긴장감을 형성한다. 몇 번 전투 끝에 해법을 발견하는 순간 남다른 쾌감을 주게 된다.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게임상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다수가 ‘생명체’다. 주인공과 일부 캐릭터를 제외하면 대다수 캐릭터들은 죽는다. 말 그대로 죽는다. 게임에서 죽어 사라진다. 이는 게임상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게임은 특성상 등장하는 대다수 NPC들에게 역할이 있다. 단순히 죽어 나가 떨어지는 적 1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를 죽이는 일은 해당 NPC의 역할을 지운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들이 동료일수도, 혹은 퀘스트를 해결하는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이 쯤 되면 누구는 반드시 죽여야 하고, 누구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거듭되면 전투 시스템은 난도가 더 올라간다. 한 대 맞으면 죽을법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전투를 치러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또, 적들 중에서 무척 강력한 녀석을 설득하기 위해 죽이지 않아야 하는 상황도 가정해보자. 같은 전투 내에서도 유저들의 선택이 갈리고, 전투하는 방법과 목표역시 갈릴 수 있다. 

이러한 선택에 따라 나온 결과물은 크든 작든 게임에 영향을 미친다. 이 조차도 또 하나 선택지로 귀결돼 모험을 구성하게 된다. 

상황이 이쯤되면 길가던 평범한 NPC가 결코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캐릭터들은 소위 ‘네임드’로 나름대로 의미를 갖기에 소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마음놓고 죽일 수 있는 적은 흔치 않다. 개발사는 이를 기가막히게 설계해 게이머들에게 고뇌를 선사한다. 

‘모험’의 정의

게임에는 약 2천명이 넘는 스태프가 투입됐다. 모든 선택지에 심혈을 기울여 이를 엮고 하나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거쳐 게임으로 귀결됐다.이 선택지들이 곧 자유도를 형성하며, 팬들에게 재미와 고뇌를 동시에 선사한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사는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 콘텐츠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달이 나있다. 때문에 유저들도 아무 생각없이 선택을 하면 되고, 몇 개 선택지만 고민하다 보면 게임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게임 초반을 넘기고 나면 대체로 게임을 이해하게 되며, 나머지는 큰 스트레스 없이 즐기면 되는 게임들이 대부분이다.

이 게임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즐기지 못하는 것도 게임이라 본다. 개발사는 그 조차도 가정한 다음, 새로운 모험으로 연계한다. 수백개가 넘어가는 요소들을 모두 즐기는 일은 어려운일이아닌가. 이러한 선택이 연속해서 거듭된다. 유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어렵고,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무엇을 선택하든 게임에는 영향이 있을것이라 확신하게 되며,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기 어렵다. 세이브 로드만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에 도달했을때 막막한 감정은 이 게임의 백미다. 이 같은 시스템으로 발더스게이트3은 유저들마다 다른 ‘모험’을 떠나게 되는 게임으로 완성됐다.

단지 모험은 항상 즐겁지 않다. 게임은 그럴듯한 선택지를 여러개 놔두고 자신만의 정답을 찾기를 강요한다. 누가 옳은지, 누가 나쁜지, 어느 것이 정답인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선택은 스트레스로 귀결된다.

분명히 맛은 있다. 아니, 기가막힌 맛이다. 단지 배가 불러 터질지경인데 또 맛있는 음식이 10접시씩 나온다면 어떤가. 이러한 상황이 100시간동안 반복 되다보니 누적되는 피로가 적지 않다. 결국엔 백기를 들고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상황. 다음날 다시 시작해보면 또 재밌다. 이 게임은 그래서 2023년 ‘GOTY’가 됐다. 

대작은 게임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발더스게이트3’이 보여준 ‘모험의 의미’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영향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 된다. 앞으로 나올 게임들이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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