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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반룡의 게임애가] 공부와 게임도 재능이다

  • 정리=김상현 기자 aaa@khplus.kr
  • 입력 2024.01.2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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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진행되었던 일명 ‘마시멜로 실험’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유명한 실험이다. 실험 내용은 어린아이에게 마시멜로 1개를 주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2개를 준다고 약속한 다음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 실험이 유명해진 이유는 약 20년 정도 시간이 흐른 이후 진행된 후속 연구 때문이다. 후속 연구는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에 대한 추적 연구로, 참여한 아이 중 먹지 않고 참아서 2개를 받은 아이들이 이후에 자라서 참지 못한 아이보다 지능 지수, 학업 성취도,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 등 사회적 성공과 관련된 능력치가 높게 나타났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런 연구의 결과는 때때로 아이의 인내심을 키우기 위한 무리한 교육 방식을 옹호하는 근거로 사용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내심은 아이의 성취와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이 실험에서 간과한 요소는 아이의 성장 배경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와의 약속을 잘 지켜 기다렸을 때 보답에 대한 신뢰가 있는 아이가 더 잘 기다리고, 부유한 집의 아이들에게는 마시멜로 하나가 가지는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더 잘 참을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되지 않았다. 즉 아이의 성장 환경이 인내심에 미치는 영향과 능력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실험이다.

결국 아이의 사회적 성공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요소와 선천적인 요소, 그리고 배경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된 결과이지 특정 요소만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자식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선천적인 요소 즉 유전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유전적 요소가 다른 자녀에게 왜 형제자매와 같은 환경을 제공했는데 결과가 다르냐고 질책하는 것은, 원인이 결과를 나무라는 넌센스이다.

필자의 중고교 시절의 성적은 나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다. 노는 것도 좋아했고, 공부 이외에 빠진 것도 많았다. 그때 많이 들은 이야기가 공부보다 쉬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으나, 10대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공부 이외의 비교 대상이 많아진 탓이다. 다양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가 쉬운 것일 수는 없다. 

공부만 하면 되는데 왜 하지 않느냐고 질책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마시멜로 실험에서 왜 참지 못하냐고 묻는 것과 같다. 공부는 재능의 영역이다. 특히 한국식 입시 공부는 암기력이 좋아야 하고, 다양한 문제의 출제 의도를 파악해야 하고, 빠른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 만큼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한다. 많은 정보를 암기해야 하므로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끈기와 집중력도 있어야 한다. 이런 다양한 재능이 필요한 공부를 하기만 하면 된다고 표현하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다. 누구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축구에서 손흥민 선수처럼 되거나,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처럼 되거나 혹은 BTS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유독 공부만 열심히 하기만 하면 누구나 높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필자가 특히 재능이 없는 분야 중 하나가 그림이다. 게임 제작사 대표를 하던 시절,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어서 한참을 연습하고 그린 ‘말’ 그림을 그래픽 팀장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초보자로서는 잘 그린 ‘개’ 그림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후 필자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최근 e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e스포츠 선수가 비전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아이가 게임에 재능이 있는지 잘 모른다. 아이의 게임 전적, 플레이할 때의 집중력, 상황 판단 능력이나 순발력 등을 물어보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하니까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 게임은 그냥 열심히 하기만 하면 모두 임요환, 페이커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축구에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면서, 축구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니까 손흥민 선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이다.

필자는 오랜 시간 게임을 해왔고, 게임을 좋아하지만, 순발력이 필요한 게임의 성적이 좋았던 적이 없다. 스타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는 필자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부와 게임도 재능의 영역이다. 제발 부모들이 공부와 게임은 시간만 들이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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