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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희망을 쏘다!

  • 윤영진 기자/심민관 기자 smk@kyunghyang.com
  • 입력 2006.10.1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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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의 첨병으로, 한류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게임 산업.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정반대에 가깝다.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들은 ‘게임과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시민단체들도 맹공을 퍼붓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게임은 일순간 대표적인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최근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다이야기’ 사태를 기점으로 게임의 부정적 이미지는 사회악으로 대변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게임이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희망의 빛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게임이 있었기에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 <경향게임스>는 추석을 맞아 그들을 만나봤다.

[사례1] 게임으로 확인한 부정(父情)
-아버지 박성권씨, 아들 박상원군 사연
내 나이 올해로 꼬박 17세. 벌써 2년이 흘렀다. 어느 날 내게 다가온 병마(病魔) 앞에 나는 그저 아이에 불과했다. 흔히들 AML이라 부르는 급성골수성 백혈병은 나를 외톨이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이 싫어졌다. 떼를 쓰기 일쑤였고, 어머니가 없는 탓에 언제나 화풀이의 대상은 아버지였다. 병원에 가는 일 외엔 집 밖에 나서는 것 자체가 꺼려졌다. 보다 못했는지 아버지가 PC를 사왔다. “요즘 온라인 게임 안하면 왕따 당한다더라.”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웠으리라. 어색한 웃음을 뒤로한 채 먼발치로 사라져 버린 아버지. PC앞에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호기심이 앞섰다. 어릴 때부터 게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내가 아니던가.

하지만 컴맹인 아버지는 인터넷조차 연결해주지 못했다. “인터넷도 안 되고. 치워버려. 다 필요 없어!” 언제나처럼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과거 PC방에서 즐겨왔던 ‘거상’을 설치하고, 접속했다. 그렇게 수개월. 하루 10시간 이상 게임에만 매진했다. 그렇게 좋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그냥 하는 거지 뭐”라며 건성으로 답했지만, 신이 나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건강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병원에 실려가 처음 뱉은 말이 “아버지. 나 이제 죽나봐”라는 엉뚱한 소리였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최고 레벨까지 올린다고 큰 소리 치더니. 녀석 그새 죽는 소리냐?” “나도 만렙 찍고 싶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때까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를. 오로지 머릿속엔 게임 생각뿐이었다. 몸이 아파 한동안 게임에 접속할 수 없었던 사이, 아버지는 나 몰래 내 캐릭터를 키웠다. 아이템을 사기 당해 게임사도 찾아갔다. 시간 날 때마다 PC방을 찾았고, 그 어설픈 독수리 타법으로 꽤나 오래도록 키워왔다. 계정 구입까지 고려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내 소원을 들어주려 하셨다.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캐릭터를 키운다. 여전히 어설프다. 항상 때를 놓쳐 장사할 때마다 손해 보기 일쑤다. 아버지는 말한다. “넌 내 인생 유일한 희망이라고”. 나조차 포기했던 내 삶. 하지만 더 이상 내 사전에 포기란 없다. 아버지가 내게 그러하였듯.

[사례2] 게임 기획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
- 게임기획자 박준찬씨
내 이름은 박준찬, 올해로 29살인 피 끓는 젊은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 기억조차 하기 싫은 과거…. 십수년 전 내게는 갑작스런 불행이 찾아왔다. 척추장애로 인한 전신 마비,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했다.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입술 밖에 없었다. 답답하다 못해 가슴을 찢고 싶은 심정에 목 놓아 울었던 날은 셀 수조차 없다. 그 누구도 절대 공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 고통을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살아가는 분이 있다. 하루하루를 나 때문에 눈물로 지새는 어머니. 행여 내가 들으면 속 상할까봐 당신 혼자 조용히 흐느끼시는 분. 그래도 아들이라고 나 하나만 보고, 조금이나마 내 짐을 덜고 싶어 하신다. 내가 전신 마비가 된 직후, 세상을 향한 증오로 가득 차 있을 때에도 어머니는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신경질만 냈던 내게 “우리 예쁜 준찬이, 오늘은 왜 또 화가 나셨나”하며 웃음으로 달래주시는 어머니. 뭔가 하지 않으면 내 자신에 대한 미움과 고통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내게도 희망의 빛이 찾아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TV를 보던 나는 벼락을 맞은 듯 모든 사고가 멈춰버렸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게임을 하는 아이들, 게임 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 꽃, 이를 창조해낸 기획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방송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잃어버린 내 반쪽을 찾은 것마냥 내 심장과 온몸의 세포들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임 기획. 지금은 모바일게임 대여섯 개를 기획한 게임 기획자가 됐다. 사실 부끄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향한 증오는 눈녹듯 사라졌다. 더 이상 어머니의 흐느낌이 들리지 않는다.

[사례3] 지긋지긋한 꼬리표
-GM을 꿈꾸는 김인철, 유영은씨 사연
‘폭행 전과 3범’. 진저리가 난다. 어릴 적 단 한 번의 실수는 내게 전과자라는 낙인을 남겼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된 2번의 실수. 부모님은 나로 인해 2번이나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내 나이 벌써 26살. 전과 기록은 군대마저 거부했다. 언제나 나 자신을 거짓으로 치장하느라 거짓만 늘어갔다. 취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고등학교 중퇴에 폭력 전과까지.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빴다. 취미라고는 온라인 게임뿐이었다. 얼마든지 나 자신을 속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리니지’에 접속했을 때였다. 누군가 말을 건다. “저기요…”. 단박에 여자임을 눈치 챘다. 하룻밤 유희를 목적으로 친절을 가장했다. 하지만 쉽사리 넘어오지 않았다. 귀찮아 자리를 박찼다.

잠시 후 도움을 청하는 그녀의 귓말. 현실처럼 온라인에서도 싸움이라면 물불을 안가리던 나였다. 바로 달려가 몇 명을 눕혔다. 그 일 이후 비록 게임 상이었지만 급속도로 친해졌다. 관심에 목말라하던 내가 아니던가. 어느덧 게임에 접속하면 그녀부터 찾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지난 2005년 11월 7일. 그녀를 만났다. 6살이나 어린 그녀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저기 혹시 인철 오빠?”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꽤나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 어” 어리버리한 첫 마디. 그 이후 방긋 웃음에 홀린 듯 나의 거짓말은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에, 미스코리아 누나, 대치동 고급 저택이 나의 배경이 됐다. 행색이 초라한 것에 대해서도 잠시 일탈하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그녀만큼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를 아련함 속의 편안함. 사람으로 대해주는 포근함. 어느 것 하나 오래도록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었다. 꿈같은 1년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너처럼 짜증나는 앤 처음이야. 다신 연락도 하지마”.

죽도록 하기 싫었던 말이 목구멍을 지나 터져 나왔다. 왜 그러냐고 울먹이는 그녀. 내게 선택이란 없었다. 당차게 돌아설 뿐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게임과도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인연의 끈은 질겼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을 찾는 그녀. 내 자신에게 너무도 화가 났다. “병신. 나 전과범이야! 알고나 만나라고”. 끝내 털어놨다. 속이 시원했다. “알아. 난 그런 것 상관 안 해. 이제부터 당당해지면 되잖아!” 이미 4개월 전 보호관찰과 관련해 찾아온 형사로부터 모든 것을 전해 들었던 그녀. 초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녀를 뼈가 부서지도록 부둥켜 안았다. 게임만큼은 내가 최고 전문가라며 운영자를 권하는 예쁜 우리 공주님. 오늘도 난 GM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학원으로 향한다. 내 인생 제 2막 1장. 그 중심에 그녀가 있다.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로움과 함께.

게임은 희망이다
한 사물을 보더라도 생각하는 바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처해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묘사될 수 있다. 요리사가 들고 있는 칼과 강도가 들고 있는 칼은 엄연히 다르다. 똑 같은 칼을 들고 있다 하더라도 들고 있는 사람의 용도나,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 다르다. 한낱 사물인 칼조차도 그럴진대 감동이 있고, 슬픔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게임은 어떠하겠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또 어떤 이에게는 벼랑 끝에서 이끌어준 빛줄기처럼, 다른 이에게는 사랑의 애절함을 전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게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게임은 하얀 캔버스와도 같은 존재이다. 순백의 그곳에 무엇을 채울지는 스스로가 판단할 일이다.

그리는 이의 마음과 행동, 생각에 따라 캔버스 속의 게임은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게 된다. 단순히 게임을 놀이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 유희를 위해 가볍게 즐기는 유저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 게임은 그 이상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연을 전한 세 명의 주인공과 게임을 업으로 삼고 있는 모든 이들은 게임이라는 캔버스에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그들의 열정을, 그들의 운명을 바칠만한 그 무언가를 제시하는 빛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희망을 그리기 위한 노력과 빛을 좇기 위한 그들의 애절함은 지금 이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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