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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워] 영화보듯 즐기는 게임 ‘길드워’ <1>

  • 정리=유양희 기자 y9921@kyunghyang.com
  • 입력 2005.06.2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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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대부분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PG)는 거대한 월드 내에서 많은 사람과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고, 미션과 퀘스트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판타지 세계에서 겪을 수 있는 새로운 경험들과 모험이 끝없이 펼쳐져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이 점차 문화코드의 하나로 자리 잡아 가면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를 보듯이 스토리를 즐기는 게임. ‘길드워’가 그것이다.

‘길드워’는 전체 스토리를 구성하는 24개의 미션을 하나씩 진행해 나가면서, 게이머가 스토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미션은 소설의 각 장(章)과 같이 순차적으로 배치되어있어, 미션을 해결해 나가다 보면 새로운 지역, 인물과 새로운 갈등 구조 등을 만나게 된다. 게이머는 마지막 미션을 끝내면서 결말을 보게 되고, 한편의 영화와 같이 길드워를 이해하게 된다.

많은 게이머들이 팬사이트를 통해 “드래곤이 악당 주인공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블리온 재판관의 배신장면을 본 후, 하블리온만 10번 때려잡았다.”, “루릭왕자는 왕자라기에 너무 수다스럽다.” 등 스토리에 대한 토의가 빈번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보듯 즐기는 게임 길드워의 배경 스토리는 어떤 것일까?

■ 번영의 아스칼론
그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침햇살..초가집, 밥 짓는 연기, 사랑스런 자작나무 숲... 아침 나절의 따뜻한 산들바람... 내 조국 아스칼론은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그날도 여느 때처럼 돌아다녔다. 봄날의 들판을. 이제 곧 폐허로 변해버릴 세상을.

데보나는 일단 아스칼론 시 주변을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스칼론의 선택 받은 자’라는 유명한 길드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아버지가 차르에 대항해 싸우다 죽은 후 아버지와 같은 위대한 워리어가 되리라 다집하며 살아온 그녀였다. 당시에는 그저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지만 이제 그녀는 24살의 처녀가 되었고, 처음엔 두 손으로 들기조차 힘들었던 무거운 해머를 자유자재로 휘두를 만큼 강해졌다.

얼마전 그녀의 고향인 린에 ‘위대하신 아멜베른 국왕의 칙령에 따라 싸울 수 있는 모든 건강한 시민들은 아스칼론군대에 입대하라’는 방이 붙었을 때 그녀는 내심 반가운 마음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와 더불어 자신이 진정 위대한 워리어가 되었는지를 검증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였다.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훈련소를 찾았을 때 교관은 말했다. “각오는 되어 있나? 한번 훈련소에 들어가면 제군의 모든 것은 제군의 것이 아니게 된다. 친구나 가족 역시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이다.

다시 한번 심사숙고한 후 확실히 결심이 서거든 다시 오도록 하라.” 이미 모든 것을 버릴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공기를 음미하고 싶어 나선 길이었다. 시내 구경이나 하면서 마음 정리를 하려고 나오긴 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어디로 가야할 지 막연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쾌 귀티 나게 생긴 여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데보나는 근처 어디에 볼 만한 연극 무대라도 있는 지 물었다.

“아스칼론 시는 처음이신가 보죠? 저는 신느라고 해요. 수미아 출신이죠. 제 아버지께서는 수미아의 공작이신데 아멜베른 국왕 폐하를 알현하러 가셨어요. 전 이참에 아버지를 따라 친구를 만나러 왔구요. 친구 몇 명이 여기 살거든요. 멘로라고 신학을 공부하는 사제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잿빛 여울 마을에 있는 성당에서 지내죠. 귀공녀 열시아도 있어요. 그녀는 직접 대본을 쓰길 좋아하죠. 아, 연극을 보고 싶다고 하셨죠? 아마 야외 무대로 가면 있을 거예요.”

나이가 비슷한 둘은 몇 마디 대화에 금세 친해졌다. 신느가 아예 직접 마을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나섰다. 아침에 피리를 잃어버렸다며 울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 피리를 찾아준 일이 있었는데 어느 결에 그 소녀가 나타나 자기도 따라가면 안 되냐고 졸라댔다. 그웬이라는 아이였다. 셋이 함께 연극무대로 향했다.

신느의 친구라는 앨시아는 신느 만큼이나 예쁜 여자였다. 데보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흠...루릭 왕자님의 연인이라더니 과연 대단한 미모군. 하긴 저 정도의 미모에 가문까지 좋으니 왕자님과 사귀겠지.’ 아쉽게도 지금은 공연을 하지 않고 앨시아가 ‘플레임시커의 예언’이라는 연극 대본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훈련소에 입소하면 이제 다시는 연극 관람을 할 수 없겠다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많았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내려가니 아름다운 숲과 그 숲을 가로지르며 투명하게 흐르는 강이 나타났다. 오곡이 무르익고 산과 들이 온갖 색으로 물든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산책하기에는 정말 더없이 좋은 날씨군.’ 아름다운 가을날을 한껏 즐기던 데보나의 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처 농가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아이고, 난 망했네! 어떤 천벌을 받을 놈이 돼지 우리를 열어놔서 돼지들이 몽땅 달아났지 뭡니까. 하루 종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아직 한 마리도 못 찾았습니다. 이러다가 영영 못 찾는 게 아닐지. 누군지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라. 아주 혼쭐을 내 줄 테다!” 잔뜩 벼르는 농부의 고약한 말투까지도 데보나에게는 왠지 정겹게만 느껴졌다.

그웬은 쉼 없이 재잘대는 귀여운 소녀였다. 산과 들을 온통 맨발로 뛰어다니는 이 소녀는 자기의 엄마 아빠 이야기, 데보나의 머리카락이 무척 예쁘다는 이야기, 메스머들의 옷이 너무 예쁘다는 이야기 등 쉬지 않고 조잘대며 따라다녔다. 데보나가 찾아다 준 피리를 불기도 했는데, 데보나와 신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진지하게 감상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멋진 연주 솜씨였다. 천진난만해 보이기만 하는 그웬에게도 상처는 있었다. 알고 보니 그웬의 아빠는 훌륭하나 전사였는데 그웬이 겨우 6살 때 돌아가셨단다.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전사가 될 거예요.”

그웬의 야무진 다짐을 들으며 데보나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약간 깊은 숲으로 들어가자 우락부락하지만 사람좋게 생긴 사냥꾼들이 조촐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한 명은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했는지 달큰한 술 맨새를 풍기며 딸꾹질을 해대고 있었다. 옆에서 친구처럼 보이는 다른 사냥꾼이 말했다.

“우리는 이 근방에서 꽤 유명한 사냥꾼이라오. 벤톤이 한창 때에는 내가 한 잔 들이키는 사이에 곰을 잡아오곤 했지. 정말 귀신같은 솜씨였어. 아니, 근데 이 친구, 자네 겨우 이 정도로 뻗은 거야? 누가 벤톤 좀 깨워 봐.” 아스칼론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낚시터까지 두루 구경한 다음 데보나와 신느는 요기도 할 겸 주점을 찾았다. 벌써 늦은 저녁이었다. 합석하게 되니 남자가 힘주어 말했다. “만나서 반갑네.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지? 북쪽에 있는 차르 놈들 때문에 세상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아네. 하지만 아스칼론은 티리아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왕국이네. 결코 차르에게 무너지지는 않을 걸세. 안 그런가?”

술집에서 오가는 말에 불과했지만 입소를 하루 앞둔 데보나에게는 이 말이 크나 큰 의미로 다가왔다. 다음날, 데보나는 훈련소를 다시 찾았다. “교관님, 차르에 맞설 준비가 됐습니다. 용기야말로 아스칼론을 지키는 힘이죠. 저너 그렇게 믿고 있어요. 차르에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저도 워리어의 길을 걸을 겁니다.” 턱이 유난히 강인해 보이는 교관이 말했다.

“그래, 좋아. 훈련소에 온 것을 환영한다. 타이더스 경이 이미 말했겠지만 조만간 차르 부대와 전투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제군의 전투 능력을 시험해 보겠다. 잠시 후에 관문이 열리면 다른 부대원과 싸워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라. 실전과 다름없는 전투다.”

어릴 때부터 해머술을 비롯 검술까지 완벽하게 익힌 데보나에게 아무리 실전과 다름없는 전투라지만 연습으로서의 전투는 식은 죽 먹기였다. 가뿐하게 시험을 통과했을 때 마침 훈련소를 시찰하러 나온 루릭 왕자가 데보나에게 친히 다가왔다. “자네 모습을 보니 한시름 놔도 되겠어. 자네를 아스칼론 선봉대로 추천하려 하네. 선봉대는 아스칼론의 최정예 부대라네. 티리아 대륙에서도 최고지. 선봉대원은 다른 부대보다 앞서서 싸워야 하니 무척 힘들 걸세.”

설립이래 최고의 훈련생이라는 찬사와 함께 훈련을 마쳤을 때 데보나에게 갑자기 특명이 떨어졌다. 얼마 전 강철 턱 바틀라우가 이끄는 차르 부대가 성벽 뒤쪽의 낡은 참호에 있는 것이 목격됐는데, 루릭 왕자와 함께 놈들을 물리치라는 것이었다. ‘최근 차르의 출몰이 부쩍 느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미심쩍은 마음을 뒤로하고 데보나는 속히 루릭 왕자를 따랐다.

부대의 우두머리 격인 바틀라우는 과연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하지만 루릭 왕자의 불칼과 데보나의 린 블레이드 아래 한낱 고깃덩이가 될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놈을 처치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뭔가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거대한 불덩이였다. 이 마법의 불길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아스칼론 시 위에, 소박한 농가의 지붕 위에,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들판에, 산과 들에 떨어졌다.

아스칼론 전역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아스칼론, 크리타, 오르. 이 세 개의 인간 왕국이 길드 전쟁에 정신이 팔린 틈을 이용해 북쪽에서 서서히 힘을 키운 차르가 한꺼번에 대대적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벌써 천 년도 넘은 오랜 옛날, 종족간의 마법 전쟁을 중재하고 신들이 타리아 대륙을 떠난 후 인간 왕국은 다시금 평화를 되찾았다.

아스칼론, 크리다, 오르 왕국은 인간 왕국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왕국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지자 각 왕국에서는 작은 세력집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를 ‘길드’라 불렀다. 길드들은 차츰 세력을 키워갔고, 어느 순간부터 왕을 능가하는 실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법을 제정하고 땅을 다스리는 왕과 국가기구가 명백히 존재했지만, 법을 집행하거나 또는 집행하지 않는 것은 모두 길드가 결정했다. 길드들의 세력이 커지자 자연스럽게 영역다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때마침, 오랜 세월 동안 조용히 잠자던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다섯 개의 블러드스톤을 뱉어냈고, 블러드스톤의 영향력으로 인간들의 마음 속에 억눌려 있던 탐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일어난 것이 길드전쟁이었다.

길드들이 전쟁을 이런 소모적인 전쟁을 일으켜도 왕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각 나라의 정규부대보다 더 강한 길드의 군대를 막을 만한 힘이 왕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길드 전쟁은 60년간 길고도 지루하게 계속되었고, 점차 국가전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세 나라는 오직 전쟁에만 몰두하느라 차르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 대가를 츠르게 된 것이다. 혹독한 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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