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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게임업체 '따라하기' 열풍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12.2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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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기업 변화’의 특징은 단순한 ‘흉내내기’ 차원을 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 열풍이 한창일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벤처기업의 자유분방한 시스템을 본따 복장을 자율화하는 등 정형화된 관습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한 그룹 관계자는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며 “일부 임원의 경우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채 회사에 출근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실속도 없는 벤처 따라하기’라는 투정 섞인 비아냥거림이 터져나왔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단순한 흉내 차원을 넘어 기업의 시스템을 재조정하는 등 근본적인 변화에 나서고 있다.

오리온 그룹이 대표적인 예. 제과기업에서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탈바꿈을 준비중인 오리온 그룹은 요즘 조직 유연화에 부쩍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담철곤 회장이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직원들과 대화에 나서는 등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모습들이 속속 연출되고 있다.

얼마전에는 김상우 오리온 대표이사가 이사들과 함께 서울 압구정동의 한 포장마차를 찾기도 했다. 젊은이들의 ‘트렌드 따라잡기’ 차원에서 마련된 이 행사에는 김 대표 뿐 아니라 머리가 허연 이사 6명이 동석해 눈길을 끌었다.

오리온 박재능 과장은 “주소비층인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체험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며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주소비층인 젊은층의 생각을 알아야하기 때문에 매주 이같은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조만간 온라인게임 제작현장과 보드게임 카페를 견학할 예정이다. 박 과장은 “다음주 수요일 보드카페를 방문하고, 이후 온라인게임 제작현장도 둘러볼 예정이다”며 “원래는 지난주에 게임 개발현장을 체험할 예정이었으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연기됐다”고 귀띔했다.

다국적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의 경우 최근 온라인 게임을 통해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이색 이벤트를 벌였다. ‘이-스트레트 챌린지4’가 그것. 올해로 4회 째를 맞고 있는 이 행사는 토익이나 학점 위주의 채용 방식에서 탈피, 경쟁을 통해 회사에 필요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를 위해 로레알은 미국의 게임 전문회사인 ‘스트레트엑스’(STRAT X)사가 개발한 비즈니스 시뮬레이션 게임을 도입했다. 가상의 기업 CEO가 돼서 기업의 마케팅, 재정, 위기관리 등 실제 비즈니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게 게임의 요령이다.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은 로레알에 특채로 입사하게 된다.

로레알코리아 홍보팀 정다정씨는 “이-스트레트 챌린지는 제한된 조건에서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좋은 게임이다”며 “학생들은 입사 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미리 체험해볼 수 있고, 기업은 자사에 필요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고 말했다.

로레알은 이미 지난 11월까지 전세계 대학생들을 상대로 신청자를 받았다. 접수 결과는 상상 이상이다. 전세계 유명 대학에서 1만여개 팀이 접수를 신청했다. 국내의 경우 3명 1조로 2백5팀이 지원을 했다.

정씨는 “대회 참가 신청서를 낸 팀중 1천여팀을 선발해 오는 1월부터 지역 예선을 벌이게 된다”며 “7주간의 경쟁을 통해 최종 선발된 14개 팀은 내년 4월 파리 본사에서 임원들이 보는 앞에서 자웅을 겨루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로레알코리아측은 이같은 채용 시스템이 우수 인재 발굴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정씨는 “토익 점수나 학점, 자격증만으로 인재들을 평가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며 “숨가쁘게 변화된 기업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인재 발굴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국내의 경우 연세대를 졸업한 전현민씨(26)가 이 대회를 통해 로레알코리아에 입사했다. 전씨는 “스트레트 챌린지는 주어진 예산과 포트폴리오만으로 최적의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기업을 운영하는 게임이다”며 “게임을 통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로레알코리아측은 조만간 ‘이-스트레트 채린지’를 통해 채용 규모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로레알코리아 이선주 부장은 “대회 자체가 외국 대학의 학기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국내 학생들에게는 불리한 게 사실이다”며 “향후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국내 대학생들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SK그룹이 현재 종로 본사 사옥 36층에 게임방을 마련하고 있다. 게임방 이용시간은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이후. SK측은 “직원 사기진작 차원에서 지난 2000년초부터 게임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며 “이같은 시스템을 자회사에도 확대할 방안을 마련 중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의 변화를 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다. 최근 ‘컴퓨터게임과 내러티브’(현암사)를 발간한 류현주 부산외대 교수는 “온라인 게임이 잇따라 대박을 거두는 등 게임업체가 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다”며 “덩치가 큰 대기업들이 검증된 게임업체의 시스템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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