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해외참전 다뤄 ‘눈길’… 지나친 상업성 ‘눈총’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12.01 17:01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게임포털인 게임나라는 지난 5일 1인칭 슈팅게임인 ‘파병’을 서비스한다고 밝혔다. 볼트소프트가 개발한 이 게임은 국군 최초의 해외파병 전투라 할 수 있는 월남전을 다루고 있다. 베트남으로 파병된 군인이 적군과 전투를 벌이는 게 이 게임의 스토리.

게임 개발사측은 “최초의 해외파병 전투인 월남전을 통해 당시 활약했던 우리군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게임이 기획됐다”며 “월남전에 사용됐던 실제 작전과 무기들을 고증을 통해 재현함으로써 국군의 살아있는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병’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은 배경이 베트남인 것을 제외하면 국내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때문에 이라크 추가파병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을 노리고 게임을 출시한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걸프전 2(Gulf War Ⅱ)’의 경우 이라크의 상황을 섬뜩하리만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게임은 게이머가 참모들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아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그러나 게임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재의 이라크 상황과 너무나 비슷하다. 미국이 전쟁 초기에 이라크를 제압하자 이라크에서는 각종 시위나 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미국을 증오하는 반테러단체가 핵탄두를 입수하게 된다는 게 이 게임의 주요 내용이다.

이같은 게임들은 최근의 상황을 게임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의적절한 마케팅 전략으로 매출을 올리는 것은 어찌보면 기업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다. 그러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는 현지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 적지 않은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상태.

한 네티즌은 “한쪽에서는 자신의 시간을 쪼개 파병반대 캠페인이나 반전운동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있다”며 “남의 불행을 소재로 게임을 만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전쟁 특수’를 노린 게임업계의 상술은 이번만이 아니다. 게임업계는 올 초 이라크전 발발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사 게임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소재로 한 PC게임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은근슬쩍 언론에 흘려 게이머들의 궁금증을 자극한 것. 심지어 ‘전쟁보다 더 재미있는 전쟁게임’ 등의 선전문구를 동원해 공공연하게 게이머들의 발길을 유혹하기도 했다.

사상 최악의 참사로 일컫는 ‘9.11테러’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이 시중에 잇따라 선보였다. 9.11테러가 발생할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이 비인기 종목에 속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관련 게임의 판매가 급증했다.

EA코리아가 유통한 ‘유리(Yuri)의 복수’가 대표적인 예. 전략시뮬레이션게임인 ‘레드얼럿2’의 확장판인 이 게임은 펜타곤과 세계무역센터가 납치된 비행기로 인해 공격받는다는 주제를 설정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게임 개발사인 웨스트우드사의 경우 한때 미국 게이머들의 공격을 받아 홈페이지가 마비되기까지 했다. 물론 이같은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은 단순한 게임으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해당업체들은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며 “게이머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도한 ‘전쟁게임’이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전쟁관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어기준 컴퓨터생활연구소장은 “전쟁 게임을 즐긴다고 해서 무조건 폭력성향이 짙어진다고는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이같은 게임에 지나치게 심취할 경우 생명경시나 전쟁미화 풍조가 팽배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어 소장에 따르면 영화의 경우 주체가 수동적이기 때문에 폭력물이라고 해도 행동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게임의 경우 게이머 스스로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폭력성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쟁게임의 경우 청소년에게 잘못된 전쟁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최근 전쟁게임인 ‘C&C:제너럴’에 대해 17세 미만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이라크를 연상시키는 지구해방군(GLA)과 미국간의 전투를 벌이는 게 이 게임의 주요 스토리. 국내의 경우 이 게임이 몇 주간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독일측은 폭력 묘사가 지나치게 자세하고 전쟁 미화 요소가 다분하다는 이유로 판매제한 조치를 내렸다. 이로 인해 독일에서는 이 게임의 TV광고나 홍보는 물론이고, 매장에 진열조차 할 수 없게 됐다. 게임 판매도 17세 이상의 성인이 제품이름을 대고 요구할 때만 판매를 허락했다.

한 게임 평론가는 “정부의 규제도 중요하지만 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을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폭력 게임에 대한 부작용이 적지 않은 만큼 정부와 업계의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경향게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