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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몰래 게임족' 단속 돌입

  • 이석 프리랜서
  • 입력 2003.11.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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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기업에 근무하는 배모씨(38). 배씨는 이른바 ‘간 큰 남자’로 통한다. 직장 컴퓨터를 이용해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 때문이다. 배씨가 게임에 접속하는 시간은 주로 점심시간.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도박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배씨를 은밀히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직원들의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관리하는 감시 솔루션을 이용해 배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체크하고 있었던 것. 결국 배씨는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한 이유로 징계를 받아 외근직으로 발령이 났다. 관리직이었던 배씨에게 있어 외근직은 일종의 ‘사형선고’와도 같다. 때문에 배씨는 지난 8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에 앞선 지난 7월에는 김포의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최모씨(40)가 파면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씨의 징계 사유는 근무 시간에 온라인 게임을 하는 등 교사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학교 관계자는 “사적인 컴퓨터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학교에서 설치한 보안 감시 프로그램을 삭제한 것이 1차적 파면 이유다. 그러나 최 교사는 평소 업무용 컴퓨터를 이용해 만화를 보거나 도박 게임을 하는 등 근무 태도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중징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물론 최씨는 학교측의 이런 태도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끔씩 게임 사이트에 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점이 파면의 사유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씨는 교사의 허락도 받지 않고 감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학교측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결국 최씨를 대신해 이 학교 교장 탄모씨를 비롯한 재단 관계자 6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렇듯 게임에 접속하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기업들이 ‘게임족’ 색출에 나섰다. 인터넷 리서치 업체인 메트릭스코퍼레이션이 최근 인터넷 사용자 1만5천7백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직장에서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말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20%. 이중 절반 이상(53.1%)이 오락이나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게임을 이용하는 인구는 작년 하반기 대비 8.1%까지 상승할 정도로 직장 내 게임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

사정이 이렇자 기업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 최근의 특징은 기업들이 직원 개개인의 모니터를 폐쇄회로 TV처럼 체크할 수 있는 감시 솔루션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솔루션을 이용할 경우 직원들이 업무시간에 게임에 접속하는지 여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에서 게임에 접속할 경우 관리자의 모니터에도 동일한 화면이 뜨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문제의 화면을 캡처하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원격지에서도 실시간으로 감시가 가능하다는 게 보안 솔루션 제조업체측의 설명이다.

보안용 감시 솔루션을 개발해 기업에 제공하고 있는 N사의 한 관계는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근무 시간에 게임에 접속하는 것을 업무상 배임 행위로 간주해 징계 사유가 되고 있다”며 “이 솔루션을 잘만 활용하면 직원들의 근태 관리는 물론, 기업 기밀의 유출을 막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게임을 좋아하는 직장인들은 비상이 걸렸다.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사용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외국계 대기업에 근무한다는 서모씨(33)는 “회사측에서 보안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직원들의 컴퓨터 사용 내역을 감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며 “때문에 요즘은 게임은 커녕, 메신저를 이용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도 겁난다”고 토로했다.

물론 해당 솔루션을 설치한 기업들은 관리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중요한 기밀이 외부에 유출됐을 경우 회사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업무 환경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있는 만큼 업무 효율과 기밀 유지를 위해서라도 감시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기업들의 이같은 대처가 엄연한 사생활 침해라고 지적한다. 기밀 유출 및 근태 관리를 빌미로 직원들의 사생활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감시 근절을 위한 연대모임’(이하 노동자 연대) 이은우 자문변호사에 따르면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기업의 전산 담당자가 기밀 보호를 위해 직원 메일이나 문서 유통 경로를 감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직원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상당수의 기업들이 직원들의 동의가 아닌 일방적인 공지로 이같은 절차를 대신하고 있다”며 “이 경우 해당 직원이 문제를 제기하면 기업에 대한 처벌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아예 입사 때 작성하는 서약서에 이같은 내용을 은근슬쩍 끼워넣기도 한다. ‘직원은 회사 컴퓨터를 업무 이외의 용도에 사용하지 않는다. 회사는 자산인 시스템을 수시로 열람할 수 있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해 뒤탈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직원들은 불합리한 조항이 있더라도 사인을 안할 수가 없다.

실제 노동자 연대가 지난 7월 자체 조사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7개 사업장 중 89.7%가 비슷한 방법을 동원해 직원을 감시하고 있다. 직원 감시에 동원되는 장비도 평균 2.5가지로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 변호사는 “중요한 정보의 유출과 직원들의 사적인 컴퓨터 사용을 막기 위해 일정한 통제장치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구체적 동의 절차와 어디까지 규제해야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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